[북토크] 우리 비비언 고닉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비비언 고닉의 대표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여, 비비언 고닉의 책을 한국어로 옮긴 홍한별, 김선형, 서제인 번역가가 만났습니다.
글: 허정은 엘리 편집장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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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제공


현재 한국의 영미 번역 문학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한별, 김선형, 서제인 번역가. 미국 작가 비비언 고닉의 서로 다른 책을 번역한 것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였다. 2026년 8월 5일 말과활아카데미에서 열린 『연애 시대의 종말』 출간 기념 북토크 무대에 나선 세 번역가는 ‘비비언 고닉이라는 혀와 목소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대의 사랑’ ‘낭만적 사랑이 축소시킨 어떤 문제들’ ‘번역가를 통과한 비비언 고닉의 문장’ 등 흥미진진한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는 한국에서 비비언 고닉의 책을 처음 기획해서 선보인 박은아 북하우스 편집자가 맡았다.

 


박은아: 비비언 고닉이 회고록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다. 이를테면 홍한별 번역의 『연애 시대의 종말』은 비평, 서제인 번역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에세이, 김선형 번역의 『끝나지 않은 일』은 그 둘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세 번역가에게 비비언 고닉은 어떤 혀와 목소리를 가진 작가인가. 세 번역가가 그동안 수전 손택, 존 디디온, 리디아 데이비스, 시리 허스트베트 등 기라성 같은 여성 작가들의 글을 한국어로 옮겨왔기에 더 궁금하다.

 

홍한별: 비비언 고닉과 수전 손택은 공통점이 많다. 나이, 세대나 가족 관계 같은 것. 다른 점도 많다. 고닉은 노동계급 감성에 대기만성형 작가였고, 손택은 부르주아 감성에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됐다. 또 손택은 당사자성이 강한 퀴어적 하위문화와 암이라는 질병을 글로 가져오면서도, 전략적으로 선 굵은 보편의 목소리를 낸다. 개인으로서의 손택과 비평가로서의 손택을 완전히 분리해서 썼던 것. 비비언 고닉은 정반대다. 자기를 굉장히 드러내고 어떨 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둘 중 선택하자면 나는 고닉 쪽인 것 같다.

 

김선형: 나는 둘 다 아니다. 둘 다 무섭다.(웃음) 손택의 일기를 번역했는데, 그는 야심이 있었고 그것이 글과 사유의 크기와 넓이를 만든 것 같다. 고닉은 정직해야 했던 사람으로, 진실을 파들어갔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포커스를 점차 확산하는 것과 볼록렌즈를 들어 태우듯이 집중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고닉에게서 배운 것은, 세계는 안으로부터 구축된다는 것이다. 안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점에서 고닉은 내 인생을 바꾼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고닉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여겼다. 특히 고닉의 문체를 나의 한국어로 맞추어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고닉은 예리한 면도날처럼 가르는 문체를 지녔는데, 나는 좀 질척인다.(일동 웃음) 그래서 초역 후 거듭 잘라내고 명민한 편집자와 문장들을 함께 헤쳐 나갔다. 

 

서제인: 내가 번역한 리디아 데이비스와 비교해보고 싶다. 나에게 데이비스는 유희를 하듯 자유롭게 글을 쓰는 작가인 반면, 고닉은 책상 앞에다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쪽지를 써 붙이고 정자세로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쓰는 작가다. 정직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면죄부를 쉽게 주지 않는 작가다. 타인인 그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이 떠났든 아니든, 매서운 눈을 하고 부끄러운 지점까지 꿰뚫어본다. 하나만 보는 게 아니다. 그는 그 사람이 처해 있는 구조와 환경까지 보고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래쪽에는 갈망 비슷한 것이 있는 것 같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 연결을 갈망하는 외로움이 그 목소리, 문체에도 배어 나오는 것 같다.


홍한별, 김선형 번역가


박은아: 비비언 고닉의 평생 화두, 특히 이 책의 주제인 ‘실패할 수밖에 없는 낭만적 사랑의 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지금 시대의 사랑은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를까?

 

홍한별: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재산을 가질 권리도 없었고, 직업을 가지기도 어려웠던 시대에 여성에게는 낭만적 사랑밖에 없었다. 이상적인 여성의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결혼 이후에도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삶을 뜻했다. 그래서 모두가 낭만적 사랑을 추구했던 것이 아닐까. 그 환상이 19세기 후반에 오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 시기에는 여자 주인공이 망하거나 죽는 걸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가 많다. 비비언 고닉이 1970년대에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던 것을 이미 한 세기 전에 꿰뚫어본 소설들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서제인: 사랑에 접근하는 고닉의 마음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사랑에 관한 그의 태도는 의미심장하다. 낭만적 사랑에 의존하지 않는 여성의 독립적인 삶에 대해서 끝없이 곱씹으면서 글을 쓴 사람이면서도, 사랑과 애착으로 인한 근원적 괴로움을 덜지 못한 것 같다. 사랑을 극복했는데도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일의 괴로움이 계속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고닉은 예전 자료(소설)도 찾아보고 동시대 사람들과 비교도 해보고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만지작만지작댔던 것 같다.

 

박은아: 『연애 시대의 종말』에 “그런데 대체 여자들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뭘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저항하는 걸까? 내면을 둘로 나누는 선은 어디에 그어지며, 어떻게 해서 조건부 항복이 이루어지나?”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말로, 여자들은 정확히 뭘 원하는 걸까?

 

홍한별: 비비언 고닉과 그가 내세운 여성 인물들은 사랑에서, 여성 공동체에서, 일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했지만 못 찾았다. 뭔가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허상이다.

 

박은아: “독립을 갈망하는 지적인 여성의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함으로써, 다시 말해 상황을 첨예하게 만듦으로써, (…) 굴욕당한 무지한 자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에 잘 다가갈 수 있다. 그게 작가의 진짜 관심사이며 작가 자신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필패라는 고닉 세계관의 코어에 자리한 진짜 주제는 이 문장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자기 되기, 혹은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하지만 내가 되어간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김선형: 일단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서구의 사랑 서사의 전통에서 발현된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낭만적 사랑의 시대에 여자는 사적 영역 안에 갇혀 살았다. 고를 수 있는 것은 남자뿐, 반항도 다른 남자를 선택함으로써만 가능했다. 자유와 자기 실현을 위해 사랑을 했다. 이것이 무너졌다. 이것은 사랑에 내재한 분열이 아니라, 서구가 만든 사랑하는 방법이 분열한 것이다. 오늘날은 여자가 사랑이 아닌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의 시대다. 남성과 동등한 교육 기회가 주어지는 최초의 시대이기도 하다. 낭만적 사랑의 시대의 사랑 서사는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사랑의 시대가 끝났다고 뭉뚱그리거나 보편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홍한별: 나도 사랑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닌 것 같고, 플롯을 추동하는 목적으로서의 사랑이 끝났다는 이야기로 읽었다. 사랑이 서사에 중요한 요소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랑 말고 다른 선택지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인생 전부를 다 걸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로맨스는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서제인 번역가, 박은아 편집자


박은아: 나도 이 책이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서사의 실패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고통을 믿기가 어렵다. 일례로 자기 삶 속 여자들에 대해 몽상적인 태도를 일관하는 점이 설득력이 없다. 구원을 꿈꾸는 남자는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고닉은 이런 신랄한 면이 매력적인데, 번역 과정에서 매력적이었던 고닉의 면면이 있다면?

 

서제인: 고닉 책을 번역할 때 푸하하 웃곤 했는데, 평범한 남자 내면에서 원대한 자신감이 솟구쳐오를 때의 기이함, 평범한 남자가 우러름을 받을 때의 불쾌함 같은 것이 그대로 드러나서 재미있었다. 또 하나는, 외로움을 진솔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이들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바라며 커피 타임 제안을 기다리는 것을 솔직하게 쓰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 고닉은 그런 걸 다 쓴다. 또 내가 번역한 고닉 책에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 한 시절에 관해 쓴 글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쓸 수도 있구나, 나와 타인이 걸려 있는 위험한 지대로 자기를 이렇게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구나 싶었고, 그게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홍한별: 엘리자베스 하드윅 같은 작가들에 비하면 고닉은 신랄하지 않은 것 같다. 손택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알베르 카뮈에 관해 쓴 손택의 글을 보면, 어휴, 내가 카뮈였으면 울었다. 고닉은 다르다. 이 사람의 내면에는 기본적으로 애정이 깔려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고닉 같은 여자 지식인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 고민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김선형: 고닉이 사랑을 은유로 쓰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사랑을 일로 볼 수도 있고, 벼락같이 떨어지는 영감으로 볼 수도 있고, 이성애적인 것이 아닌 좀 더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

 

홍한별: 비평가가 작가와 작품을 전지적 시점에서 장악하는 척하는 글, 혹은 무조건 찬양하는 글을 보면 때때로 거부감이 든다. 그런데 고닉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소설 속 서술을 병치시켜버린다. 경험적 레벨과 맞춰서 작품을 분석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공감하기 쉬웠다.


박은아: 비비언 고닉은 자기만의 문체가 확고한 저자다. 압축적이고 정확한 어휘, 첨예하고 간결한 문체가 특징이다. 비비언 고닉의 글을 번역하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홍한별: 어떤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문체나 표현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막연히 기대한 것과 어긋나는 것을 맞닥뜨릴 때다. 그런데 번역과 편집은 그 도드라지는 느낌을 깎아내고 다듬는 과정이기도 해서, 거듭 읽으며 고쳐나가다 보면 그런 특징적인 부분이 많이 휘발된다. 나도 매번 고민이다. 무슨 글을 번역하든 좀 더 쉽게 이해되게 전달할 것인가,

 

내가 느낀 충격을 전달할 것인가. 결국 선택을 하지만, 어떻게 선택을 하게 되는지 설명하기는 무척 어렵다. 비비언 고닉은 그런 고민을 특히 많이 하게 한 작가다. 의외의 표현이 너무 많았다. 그것이 재미있기도 했고.

 

서제인: 고닉의 문체에는 노래하듯 흘러가는, 특유의 음악적인 리듬이 있다. 그런 면면을 잘 옮기고 싶었는데…

 

김선형: 단어나 문장 안에 두세 가지 뜻이 들어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 모든 것을 감각하게 하면서 문장이 작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됐다. 그러고 보면 고닉이 한창 활동했던 시기에는 대단한 여성 문장가들이 나왔던 것 같다.

 

박은아: 마지막으로, 옮기는 사람이자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 안에서 산다는 것은? 내가 언어를 가지고 하려는 것은?

 

홍한별: 나는 작가가 아니고, 번역가 정체성을 고집하고 싶다. 번역은 정말 재미있다. 25년 전에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여전히 재밌다. 번역 생태계도 나도 안 망하고 계속했으면 좋겠다.

 

서제인: 나는 언어 안에서 살고 있지 않다. 언어는 물론 중요하지만, 언어 안에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언어와 접속해서 살고 싶다. 언어와 접속함으로써 세상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번역을 좋아한다. 알지 못하지만 세상에 다른 게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일이. 독자분들에게도 번역을 통해 이런 새로운 세상을 전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김선형: 번역가라는 정체성과 오래 싸웠다. 나에게 이 일은 취미일까? 일일까? 모든 방향으로 자아 분열을 일으키며,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일을 오랫동안 원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슨 일이든 안 되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못했다. 지금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진심으로 사랑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시간을 들여 단어, 작가, 독자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작정하고 해야 하는 일인지를 안다. 이런 걸 깨달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라면, 최선을 다해서 할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참 안 읽는다지만, 읽는 분들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읽는다. 피드백들도 섬세하고 자세하다. 이 안에서 이제 드디어 행복하다. 이도 저도 못하고 패닉에 빠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런 시기를 겪어야 비로소 사랑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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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은 엘리 편집장

엘리 편집장. 문학, 교양, 학술 도서 편집자를 거쳤다. 그동안 W. G. 제발트, 프리드리히 키틀러, 발터 벤야민, 클리퍼드 기어츠,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 주디스 루이스 허먼, 제인 오스틴, 루이자 메이 올컷,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 헨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럴라인 냅, 폴 윤, 다와다 요코,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배명훈 등의 책을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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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

미국의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회고록 저자. 우크라이나 출신 노동자 계급 부모의 딸로 1935년 뉴욕에서 태어나 좌파 공동체 안에서 성장했다.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문학 학사 학위를, 뉴욕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미국 최초의 대안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 기자로 활동하면서 미국 페미니즘 운동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그 외에도 〈뉴욕 타임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타임〉 〈애틀랜틱 먼슬리〉 〈네이션〉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나갔다. 주요 저서로 『성차별적 사회의 여성』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사나운 애착』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연애 시대의 종말』 『상황과 이야기』 『내 인생의 남자들』 『오래된 꿈』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끝나지 않은 일』 『멀리 오래 보기』 등이 있다. 구겐하임 펠로십, 윈덤캠벨상 논픽션 부문, 로버트 B. 실버스 문학비평상 등을 받았으며, 다수의 작품으로 전미도서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더뉴스쿨, 하버드대학교, 아이오와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쳤고,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연애 시대의 종말』에서 고닉은 사랑의 신화가 종말을 맞은 오늘날의 시대를 자신만의 날카롭고 생생하며 지적인 문장으로 포착해 보여준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 이디스 워턴, 케이트 쇼팽, 진 리스 등이 쓴 20세기 탁월한 문학작품을 들여다보며 사랑과 결혼, 이별과 배신의 장면들을 탐구해, “그렇게 그들은 결혼해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출간 당시 〈뉴욕 타임스〉 〈뉴요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스턴 리뷰〉 〈커커스 리뷰〉 등 수많은 매체에서 비평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으며, 그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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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 『도시를 걷는 여자들』, 『하틀랜드』, 『우먼 월드』, 『먹보 여왕』, 『밀크맨』, 『온 컬러』, 『권력과 테러』, 『자라지 않는 아이』, 『위대한 생존』, 『오카방고 숲속의 학교』,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나무소녀』, 『네모난 못』, 『자유 방목 아이들』, 『밴버드의 어리석음』, 『식스펜스 하우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사악한 책, 모비 딕』,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웃런』, 『바다 사이 등대』, 『달빛 마신 소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 『가든 파티』 등이 있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과 『미스테리아』 등에 글을 실었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한때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무리한 설계를 하기도 했으나 첫째를 가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래도 세 살 터울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번역 일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둘 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반일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을 하려면 아이들을 종일반에 맡겨야 하는데, 엄마들이 와서 반일반 아이들을 데리고 간 다음에 남아 있는 아이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에는 양육자들이 운영을 나눠 맡아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 같이 아이를 키운 사람들이 친구로 남은 것만은 분명한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하루에 여덟 시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일할 수 있다고 해서 꼭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글을 쓰고, 대학원에서 학생 들에게 번역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