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메 스튜디오
"내가 이걸 본다는 걸 누가 혹시라도 알까 두려워 핸드폰에 사생활 보호 필름 사서 붙였다." 메메 스튜디오의 유튜브 시리즈 <하우스 오브 피스>에 달려 있는 농담스러운 댓글 중 하나다. 비슷한 내용에 단어만 조금씩 바뀔 뿐 <하우스 오브 피스>를 본다고, 심지어 좋아한다고 대외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댓글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30분간의 유튜브 러닝타임 내내 등장인물들은 시X, 미친X, 존X 멍청하네, 헛뚱뚱이 X 등 여성 혐오적인 욕설을 적나라하게 반복하고, 이성이 출연하는 순간 오직 성애적인 관계로 해석하기 바쁘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이자벨(백진경)도, 59세 여성 잭클린(유병권)도 세대·나이를 불문하고 오직 섹스만이 존재 이유인 것처럼 집착한다. 뜬금없이 고성을 지르거나 무례한 말을 툭툭 내뱉는 일도 다반사.
그러니 <하우스 오브 피스>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나,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보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시청자들이 재미로 남긴 댓글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홍보할 수 없다는 내용인 것도 여기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나마 너그러운 관심을 장착하고 여성에게 금기시 되어온 언어를 자유롭게 발화하는 콘텐츠로 받아들이기에도 블랙코미디 속 인물들의 언행은 과하다. 그렇다면 <하우스 오브 피스>는 그저 유해함을 오락 삼는 콘텐츠일까? 우리는 많은 영상이 뒤섞인 유튜브의 바다에서 잠시 <하우스 오브 피스>를 뜰채로 건져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욕설, 성애 집착, 무례함을 정면으로 통과한 <하우스 오브 피스>의 세계관에는 기존의 여성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2020년대 콘텐츠의 속성이기도 하다.

ⓒ 메메 스튜디오
좋은 여자 나쁜 여자 따로 있나
<하우스 오브 피스>는 유튜버 '명예영국인'의 본체인 백진경이 1인 2역(59세 그레이스, 20세 이자벨)을 맡고, 故김수미 배우의 성대모사로 활약해 온 유병권이 잭클린을 연기하는 하숙집 시트콤이자 페이크 다큐다. 그레이스와 잭클린은 오랜 친구 관계. 그레이스의 대저택에서 잭클린은 시급 1,0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원래 6,000원을 받았으나 자꾸만 일을 성실히 하지 않아 시급이 500원까지 떨어졌다.) 그레이스의 딸 이자벨은 ‘이모(emo) 키드’로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화장, 검은 입술을 한 채 반항적인 태도로 삶을 대한다.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세 여성에게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게스트가 찾아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제목이 명시하듯 세 여자는 하우스라는 공동 생활권 안에서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하숙집 특성상 금남 구역은 아니지만, 이곳은 각자의 결핍이 있는 여성들이 이룬 외딴섬처럼 보인다. 이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았거나 남편을 버린 적 있는 중년 여성들과, 기본적으로 남자를 불신하는 동시에 흠모하는 어린 여자의 합집합이다. 세 가족구성원은 에피소드마다 일종의 루틴을 반복한다. 곁에 있다가, 질투하고, 험담하다가, 싸우고, 끝내 다시 만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하우스 오브 피스>가 이 평화의 집 자체를 순결한 연대의 공간으로 이상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항상 서로를 지지하거나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이상적인 자매애도 없고, 그렇다고 서로를 온전히 적대시하며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지만 짜증 나고, 돕지만 시샘하고, 욕하지만 결국 다시 화해하고 만나는 복잡성이 현실을 닮았다. 이를테면 조회수 195만 회를 달성한 ‘박화영 2’(신기루 편)에서 잭클린은 이자벨과 신기루에게 쌍뻐큐를 받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놓고도, 잭클린을 지키기 위해 신기루를 돌려보낸다. 심지어 전 재산 13,000원을 몰래 건네기까지 하며. "내가 아무리 이모여도 자벨이를 오랫동안 딸처럼 키워서… 내가 부탁할게. 내 비상금 턴 거거든. 이거 가지고 그냥 남자 친구 집에서 지냈으면 좋겠어." 이어지는 이 에피소드의 화룡점정. 비상금과 스팸을 받고 결국 집을 나가던 신기루는 씁쓸한 혼잣말을 남긴다. "부럽다, 가족 있는 거. 나도 가족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하우스 오브 피스>는 딱히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지만, 세상이 잠시 잊어 온 인간적 미덕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모인데", "그래도 친구인데". 한때 우리에게 당연하게 존재했던 무수한 '그래도'들. 자극적인 사이다썰과 참교육 감성에 젖어 들어 져주는 법을 잊어온 세상에서 세 여자는 희한하게도 (정말 희한하게도) 그런 마음을 지녔다. ‘주민자ㅈ회’(큐영, 보리, 제롬 편)에서 독서회 회원들이 잭클린을 자꾸만 무시하고 공격할 때 비겁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그레이스는 사교장에 술을 뿌리며 난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소리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무시를 당하고 사느냐고! 내가 언제까지 너를 보호해 줘야 하는 거야. 진짜 너 때문에 못 살아. 너가 너무 미워죽겠어!" 그날 밤 잭클린은 자신에게 남겨진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내 친구 잭클린. 늘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우리 우정 영원히.' 그래도 같이 사는 처지인데, 그래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데, 그래도 친구인데. 혼자 사는 삶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가치를 낡아버린 옛날 감성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기에는 온기가 너무도 따뜻하다. 햇볕에 몸을 말리는 고양이처럼 인간은 온기를 따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메메 스튜디오
본능적인 불쾌감, 요인은 무엇일까
그러나 인간다움은 동시에 <하우스 오브 피스>의 불편함으로 작동한다. 세 인물의 성욕과 욕설로 드러나는 원초적 욕망이 궁극적으로 '추잡하고 무례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우스 오브 피스>의 핵심은 '노골적인 욕망'에 있다. 20살 이자벨은 어떻게든 남자 친구를 사귀어 섹스를 하고 싶어 한다. 그게 42살 차이가 나는 아저씨여도 상관없다.(‘29금 코미디’(김경욱 편)) 연애를 하고 싶은 나머지 이상한 남자들을 만나 헛발질도 여러 번 하고(‘첫 남친 공개’(조나단 편), ‘키스하수꽈’(뭐랭하맨 편)), 남자 친구를 데려온 친구에게 집을 대실해 주기도 한다.(‘환뚱연애’(신기루, 이희태 편)) 잭클린 할머니도 만만찮다. 어린 남자를 상상 속에서 탐하거나(‘아임 드러우닝’(우즈 편)), 외간 남자와 기묘한 관계를 갖는다.(‘옆집 섹퍼트’(이선민 편)) 모범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세 여성은 지독하게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심지어 그 욕망이 고상하지도 않다. 섹스하고 싶고, 돈 받고 싶고, 귀찮은 일 하기 싫고, 화나면 소리도 내지르는 모습은 남성의 욕망을 아름답게 충족시키는 여성의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날것의 무언가로 존재한다.
오늘날 SNS와 프로필에 업로드되는 타인의 노골적인 노출 사진에 불쾌감을 느끼는 건 본래 벌거벗고 다녔던 영장류가 문명 발달에 따라 사회적인 수치심을 DNA화한 결과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름답게 각색되지 않은 여성의 욕망은 적나라할수록 필연적인 불쾌감을 줄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반대로 <하우스 오브 피스>의 여성들은 편집하지 않은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이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몫으로 자연스레 남는다.) 인간이라면 사실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을 가감 없이 그대로. 잭클린을 연기한 남성 유튜버 유병권이 캐릭터의 탐욕을 생생히 묘사하면서도 장년층 여성의 행동을 희화화하지 않은 건 유머로 눙쳐져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구별했기 때문이다. 웃음의 영역은 본능과 욕망만이 남은 '인간상'이지, 여성의 재현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그는 알았다.
여전히 <하우스 오브 피스>를 좋아한다고 대외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과 동의하는 마음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 중독적인 맛은 도대체 무엇일까. 잭클린과 이자벨, 그레이스의 관계망에서 우리는 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걸까. 불편하다는 말 하나로 모든 것을 퉁쳐버리기에는 이곳에 다채로운 시도가 있다. 그렇기에 불편함의 다양한 층위를 계속 구별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자연
가족들이 일터로 떠난 빈집에서 텔레비전과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덧 대중문화 비평을 말하는 어른이 됐다. 페미니즘 미디어 비평서 『어제 그거 봤어?』를 썼고,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씨네21》>의 영화 기자로 활동 중이다. 목동불주먹이자 <슬램덩크> 사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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