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승패 없는 원반던지기와 같습니다 | 예스24
상대가 던진 것을 정성껏 받고, 상대가 받기 쉽게 다시 던져줍니다. 점수도 승자도 없지만 즐겁습니다. 내일부터의 삶도 그렇게 플레이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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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西範直

『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독일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30여 년간 선(禪)을 수행하고 안타이지 주지까지 지낸 뇔케 무호의 저작 중 국내에 소개되는 첫 책이다. 서양 철학도, 기독교도 답을 주지 못했던 삶의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불교에서 찾는다. 저자는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게임에 비유해 어려운 불교 텍스트를 자기만의 관점으로 쉽게 해석해 냈다. 뇔케 무호가 소개하는 불교는 현실 도피가 아닌 승패의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의 삶을 새롭게 플레이하는 '쓸모 있는' 불교다. 무한 경쟁과 비교에 매몰된 각자도생의 시대에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 돕는 명쾌한 통찰을 제시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선불교를 공부하고, 이후 안타이지의 주지가 되기까지 독특한 삶의 궤적을 걸어오셨습니다. 고향을 떠나 전혀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그리고 돌이켜봤을 때 그 선택은 작가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요?

결정적인 계기는 7살 때 어머니를 여읜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죽는데 왜 사는 걸까’라는 물음이 어린아이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환점은 16세 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좌선(참선)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한국 독자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에게 좌선을 가르쳐 준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라 독일인 선생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서구권에서는 1960년대 이후 큰 ‘선(Zen) 붐’이 일어났는데, 그때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한 이들이 주로 일본의 선승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가르침임에도 불구하고, 서구권에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어 발음인 ‘Zen’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같은 선(禪)에 중국의 ‘선(Chan)’이 있고 한국의 ‘선(Son)’이 있다는 인식이 저희 서양인들에게 닿은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즉 당시의 저에게 ‘선(禪)을 배운다’는 것은 ‘일본에 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좌선을 접하고 불교 서적을 읽는 동안 석존의 출가라는 삶의 방식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출가하여 ‘Zen’을 배우고 싶다’는 꿈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일본행은 우연이라기보다 당시 서양에서 선을 받아들이던 방식이 이끌어준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 선택이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독일에 있던 시절의 저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산속 사찰에서 밭을 일구고 좌선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깨달은 것은, 답은 장소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도달한 결론은 ‘진정한 고향은 자신의 발밑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먼 길을 돌아간 것이 헛수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발밑을 알아차리기 위해 일본까지 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왜 서양 철학이나 기독교가 아닌 불교에서 찾은 것인가요? 2,500년 전 시작된 불교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왜 사는가’를 생각하게는 해주었지만, 답은 머릿속에서 겉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답을 ‘믿을 것’을 요구했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불교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먼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16세에 처음 좌선을 했을 때, 저는 제 자세와 호흡의 존재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까지 저에게 ‘나’란 머릿속에서 계속 물음을 되새기는 어떤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앉아보니 척추가 있고 숨이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의 물음에서 의식이 툭 벗어났을 때, 창밖에서 새가 지저귀고, 바람 소리가 나고,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등 세상이 훨씬 전부터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물음으로만 꽉 차 있던 공간에 약간의 바람이 통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불교에는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으며 석존과 옛 선승들의 삶의 방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인생에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제가 숨 막히게 느끼고 있던 그 ‘게임’에서 완전히 하차해 있었습니다. 하차했는데도 조금도 메마르지 않고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실제로 가능하단 말인가’ 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삶의 방식, 그것이 철학책 안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2,500년 전의 가르침이 왜 지금도 유효한가. 그것은 인간의 고통의 구조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시대의 사람이나 현대의 우리나 ‘더 갖고 싶다’, ‘남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괴로워합니다. 도구가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 꽉 쥐고 있는 손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손을 펴는 법을 설한 불교는 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불교 해설 방식 대신 현대적인 ‘게임’이라는 비유를 선택해 이야기를 풀어내신 특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 가지는 불교 서적을 집어 들지 않는 분들에게도 닿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성제’, ‘팔정도’라고 쓰면 정확하겠지만, 그 순간 많은 독자들은 책을 덮어버립니다. 또 다른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의 팍팍함 자체가 이미 ‘게임적’이기 때문입니다. 내신 등급, 연봉, 팔로워 수, ‘좋아요’ 수.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점수를 다투는 게임에 강제로 참가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게임은 스스로 룰을 선택한 기억도 없는데 하차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클리어했다고 생각하면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원서 제목에 ‘망겜(쿠소게)’라는 거친 표현을 쓴 이유는 그것이 많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사실 이 게임의 구조를 2,500년 전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게임이라는 비유는 현대적인 옷인 동시에 불교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최단 루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입시, 취업, 재테크, 결혼, 승진, 출산, 육아… 등 정해진 순서가 있고 수행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 일본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또,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데 불교의 가르침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본도 완전히 똑같습니다. 입시,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승진 등 과거 일본에는 ‘인생 주사위 놀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이며, 레일을 벗어나면 ‘낙오자’로 취급하는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종신고용이 무너지며 레일 자체가 망가지고 있는데도, 서로 비교하는 압박감만은 SNS를 통해 오히려 강해지고 있습니다. 레일은 없는데 경쟁만 남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전보다 더 가혹합니다. 한국 분들의 답답함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불교가 도움이 된다면 우선 ‘그 레일은 누군가가 나중에 그어놓은 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꿰뚫어 보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당신 삶의 가치는 순위표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레이스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불교는 ‘이겨라’라고도 ‘노력하지 마라’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루 중 10분 만이라도 좋으니 승패가 없는 시간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그 10분이 나머지 23시간 50분을 달려가는 방식을 바꾸어 놓습니다.

 

일본 안타이지의 주지를 지내시며 수십 년간 좌선을 수행하셨고, 지금도 오사카성 공원에서 대중과 함께 좌선하고 계십니다.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바쁜 직장인이나 청년들이 하루 단 10분이라도 좌선과 호흡을 통해 삶의 통제권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실천 팁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좌선을 ‘또 하나의 과제’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無)의 상태가 되었는가’, ‘집중했는가’라며 채점을 시작하면 그것은 게임의 연장이 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의자여도 바닥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척추를 곧게 펴고, 눈은 감지 않고 가볍게 내리뜬 채 숨을 천천히 끝까지 내쉽니다. 그다음은 호흡이 저절로 드나들도록 내버려둡니다. 잡념이 떠오르면 없애려 하지 말고 알아차린 순간 다시 호흡으로 돌아옵니다. 그것뿐입니다. 양치질과 같아서 잘하고 못하는 게 없습니다. 매일 아침 10분이 어렵다면 출퇴근 전철에서 한 정거장 동안 심호흡 세 번을 해도 좋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좌선이란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무언가를 내 뜻대로 조절하려는 것을 멈추는’ 시간입니다. 10분 동안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면 자신이 평소 얼마나 점수나 알림에 통제당하고 있었는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핸들을 꽉 쥐는 것을 멈췄을 때, 실은 자기 발로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좌선의 신비입니다.

 

불교는 게임에서 완전히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새로운 태도로 삶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가 내일부터 마주할 현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했으면 하시나요?

친구와 공원에서 하는 프리스비(원반던지기)를 떠올려 보세요. 거기에는 승패가 없습니다. 잡았다고 이긴 것도, 떨어뜨렸다고 진 것도 아닙니다. 상대가 던져준 원반을 내가 가능한 한 잘 받고, 이번에는 상대가 받기 쉽게 다시 던져줍니다. 단지 그뿐인데도 끝없이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점수도 나지 않고 승자도 없는데 그렇게나 즐겁습니다. 내일부터의 현실도 그 프리스비처럼 플레이해 주셨으면 합니다. 눈앞의 사람이 던져온 것을 정성껏 받습니다. 내가 던질 때는 상대가 받기 편하게 던집니다. 일도, 가정도, 파고들면 결국 그것뿐일지도 모릅니다. 불교는 게임으로부터의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회사에도 가고, 집안일도 하고, 시험도 봅니다. 다만 ‘점수가 곧 나의 가치다’라는 단 한 가지만 믿는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져도 상관없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실은 가장 강합니다. 잃을 것을 세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일 만원 지하철을 탈 때, 마주하기 싫은 상대를 만날 때, ‘이것은 내 인생이라는 게임의 한 장면일 뿐이며, 나는 점수가 아니다’라고 딱 한 번만 떠올려 보세요. 화면은 같을지라도 플레이하고 있는 당신은 이미 어제의 당신이 아닐 것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오랜 시간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작가님 자신의 삶에서 불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를 읽는 한국 독자들이 어떤 도움을 얻어가기를 바라시나요?

단 한 번의 극적인 순간이라기보다는 소소한 순간들의 축적입니다. 스승님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눈 덮인 산사로 돌아왔을 때, 오사카성 공원에서 노숙하던 수행승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그래도 좌선할 곳은 있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아침에 앉아 그저 숨을 쉬고 있을 때 ‘아, 이 길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답을 찾아 세상을 방황하고 있었겠구나’ 생각합니다. 7살의 내가 품었던 질문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질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구원이었습니다. 앞서 서구권에서는 오랫동안 ‘선’이라고 하면 일본의 ‘Zen’만을 가리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국에 천 년이 넘는 ‘선(Son)’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저희 서양인들이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일본의 조동종도 한국의 선도 근원은 같습니다. ‘그저 앉아 있는 것’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저의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가닿는 것은 왠지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이 본래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듭니다. 

 

한국판 제목이 『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라고 들었습니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큰스승이신 사와키 고도 노사께서는 “좌선해서 뭣에 쓰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고 줄곧 말씀하셨었습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점수와 득실로 굴러가는 세상 밖으로 당신을 이끌어내 줍니다. 그것이 불교의 가장 훌륭한 ‘쓸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이 한국 독자 여러분께 꽉 쥐고 있던 손을 툭 펴는 계기가 된다면, 저자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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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인생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뇔케 무호> 저/<심지애> 역

출판사 | 페이지2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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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