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미디언 문상훈이 『스윙스엔 뭔가가 있다』의 추천사를 쓰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의 추천사만큼이나 좋아합니다. 울산의 다문화 리틀야구단 스윙스에 관한 책을 만든 서진영 작가와 어떤책의 김정옥 대표는 문상훈에게 추천사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냅니다. 그가 LG 트윈스 유튜브 채널에서 유소년 야구단을 만드는 게 개인적인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죠. 아마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문상훈의 추천사가 도착합니다. "어린이들이 딱 고맘때 잘 배워 두어야 할 사랑과 우정, 환희, 좌절, 헌신, 겸손과 같은 감정들. 그것들을 한 단어로 줄이면 그것은 야구."라고 시작하는 추천사 하단에 ‘코미디언’과 ‘리틀야구단 구단주 지망생’이라는 그의 소개가 나란히 적힌 채로.
스윙스 역시 경찰서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 당시 다문화라는 접점을 공유했던 울산남부경찰서 오주원 경사가 울산남구종합사회복지관 이상민 대리에게 우연히 업무상 연락을 하면서 말입니다. 코미디언과 경찰과 사회복지사. 살아온 궤적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은 어쩌다 스윙스에 망설임 없이 마음을 열게 된 것일까요? 창단 13년 차 스윙스와 함께 한 아이들과 어른들은 훨씬 많은데 그건 또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지금으로선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윙스엔 정말로 뭔가가 있다고 말입니다. 취재를 위해 스무 차례 이상 울산을 방문하며 스윙스의 한 시즌을 고스란히 함께 통과한 서진영 작가의 다음 문장도 건네고 싶습니다. “이 책은 야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야구보다 넓은 이야기이기도 하다.”(242쪽)
눈 내리는 4월의 스윙스
『스윙스엔 뭔가가 있다』가 출간되었는데, 그동안의 인터뷰와 취재가 물성이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온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혹시 스윙스의 후기를 접하셨는지도 함께 여쭤봅니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책은 취재원이 대부분 아이들이라 좀 더 떨렸어요. 올해 초에 원고를 스윙스 밴드에 올리고 부모님이든 당사자든 누구든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했어요. 아이들에게 너가 몇 쪽에 나온다는 걸 다 표시해서 줬어요. 보통 자신의 말이 텍스트화되는 경험이 잘 없잖아요. 스윙스 친구들도 자신이 말한 게 글이 되고 책이 된다는 걸 되게 신기해했어요. 이 책이 스윙스에게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긴장되고 떨리는 기분이에요.
이번 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재작년인 2024년에 스윙스가 창단 10주년을 맞았어요. 한겨레신문 주성미 기자님이 스윙스의 10주년 성과보고회를 기사로 다뤘고, 어떤책의 김정옥 대표님이 그 기사를 보신 거죠. 김 대표님이 야구를 되게 좋아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야구단이길래 1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생기신 거예요. 그래서 주성미 기자님을 통해 오주원 경감님과 이상민 과장님(책을 쓸 때는 과장님이셨는데 올해 부장님이 되셨어요.)을 뵈러 가면서 인스타그램에 울산의 어느 야구단을 만나러 간다고 남기셨어요. 제가 어떤 야구단인지 궁금하네요, 라고 댓글을 달았고요. 사실 다른 프로젝트를 하면서 롯데정밀화학이 사회공헌 활동으로 다문화 어린이 야구단을 후원한다는 걸 알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서, 설마 거기인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윙스가 맞았던 거예요. 김 대표님은 제가 남긴 댓글을 보는 순간 ‘저자를 찾았다!’ 라고 생각하셨대요. 한 달 뒤에 대표님과 함께 울산에 가서 스윙스를 처음 만났어요. 그게 작년 4월입니다.
제안받으셨을 때 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어떤책이 제가 워낙 좋아하는 출판사이고 편집자들에 대한 믿음이 컸어요. 김정옥 대표님도 눈이 밝은 편집자이셔서 첫 책을 쓰는 저자들과 작업을 많이 해오셨고 좋은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분이라고 생각해 왔고요. 그래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처음 스윙스 취재를 시작했을 때 이건 꼭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던 내용이 있을까요?
처음 스윙스를 만나러 울산에 갔을 때 4월이었는데 눈이 내렸어요. 시즌 초라 실력도 실력이지만 애들이 막 적극적이진 않았거든요. 하기 싫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책에 쓴 것처럼 동행했던 주성미 기자님이 이상민 과장님께 “애들 왜 이렇게 잘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상민 과장님은 “그렇죠?” 이러면서 뿌듯해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야구를 더 못하는데 두 분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저랑 김정옥 대표님은 당황한 거죠. 그래서 제가 지금 잘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주성미 기자님이 “그럼요! 처음에는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했다니까요. 이제는 애들이 공을 치잖아요!”라는 말을 그때 하셨어요. 첫날의 그 장면이 재밌었어요. 물음표가 생기더라고요. 10년 넘게 야구단이 계속된 거잖아요. 도대체 뭐지? 실제로 경기를 보고 나니까 궁금증이 더 커졌어요.
이후 20차례 넘게 울산을 방문하셨죠. 총 46명을 인터뷰하셨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큰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정옥 대표님은 제가 스무 번 이상 울산에 간 걸 더 크게 생각하셔서, 제가 그 정도도 안 가고 어떻게 책을 쓰냐고 반문하거든요.(웃음) 처음엔 세 달 정도 원룸을 구해서 울산에 살려고 했어요. 단기 방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울산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대구의 고향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한 시즌을 지냈어요.
첫 정식 인터뷰는 오주원 경감님과 울산 남부경찰서에서 했어요. 스윙스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5월까지는 오주원 경감님과 이상민 과장님 두 분을 계속 인터뷰했어요. 이후에 스윙스 단원 20명, 학생 코치 6명, OB 멤버들, 관계자분들과 상대팀 감독님을 만났어요. 아이들의 일상이 궁금해서 부모님들도 인터뷰하고, 오랜 기간 스윙스를 지원해 준 기업이나 야구협회 관계자분들도 만났고요.
ⓒ 표기식
‘우리의 스윙스’가 되기까지
대화 중 책 제목이 등장하는 순간이 있어요. 선수 출신 외국인 코치였던 이와모토 세이야 코치님이 “(스윙스에) 뭔가가, 사실 저도 지금 그게 뭐라고 딱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진짜 뭔가가 있을 거예요.”(98쪽)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세이야 코치님이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세요. 지금은 구마모토에 계셔서 보이스톡으로 인터뷰를 여러 번 했는데, 마지막 인터뷰 때 스윙스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코치님이 스윙스에 뭔가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하기 싫더라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걸 원고에 그대로 실었죠. 나중에 원고를 검토하실 수 있도록 보내 드리고 나서 코치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작가님, 그 ‘뭔가’를 다른 말로 해볼까요?”라고 하셔서 제가 그럼 같이 찾아보자고 했죠. 다른 후보로 ‘가치’ 같은 단어들이 나왔는데, 세이야 코치님이 마지막에 “그냥 ‘뭔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이 에피소드를 울산의 책빵자크르에서 김정옥 대표님, 사진 작업을 해주신 표기식 작가님과 담소를 나눌 때 들려드렸어요. 그때 한창 책 제목을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제가 세이야 코치님 흉내를 내면서 “뭔가가 있다”라고 했는데, 책빵자크르 대표님과 표기식 작가님이 그걸 제목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처음엔 모호한 제목이 아닌가 싶었는데 다들 좋아해 주셨어요. 그렇게 ‘스윙스엔 뭔가가 있다’라는 제목이 나왔습니다.
‘뭔가가 있다’는 말 외에도 세이야 코치님과 나눈 대화가 작가님께 인상 깊게 남은 것 같았어요. 어떤 점에 이끌리셨나요?
기본적으로 세이야 코치님이 말씀을 재밌게 하시는 분이고요.(웃음) 코치님이 엘리트 야구를 쭉 해오다가 진로상 중요한 시기였던 고등학교 때 부상 때문에 야구를 접으셨어요. 야구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이 많아서 그땐 야구가 너무 싫어졌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스윙스 아이들을 만난 뒤로 본인의 어린 시절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나도 야구를 정말 좋아해서 좋은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 좋았던 꿈은 다 어디로 가고 야구를 미워하게 됐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야구가 다시 좋아지셨대요. 지금은 야구한테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세요. 그렇게 오사카의 한신 타이거스를 좋아하고, 오타니를 응원하는 한 사람의 야구팬으로 살아가는 거잖아요.
한 사람이 인생에서 얻은 큰 깨달음인데, 저는 저마다의 야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각자의 실패나 포기의 순간들이 있겠죠. 하다못해 공부만 하더라도 모두가 전교 1등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하며 주저앉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최선을 다한 순간은 그냥 그 순간대로 좋은 경험치가 되어 삶의 또 다른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많이 와닿았어요. 제 조카가 야구를 하는데 제가 조카에게 이렇게 말해요. 지금 네가 야구를 좋아해서 계속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만약 야구를 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것 또한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제일중학교에 입학했던 산이 이야기와도 닿는 것 같아요.
산이는 야구를 좋아해서 선수가 되고 싶어 했던 친구인데, 우리나라 엘리트 야구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산이도 중간에 진로를 변경하고 한동안 야구가 꼴도 보기 싫었다고 해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선, 스윙스 친구들이 훈련하는 걸 도와주러 가고 싶고 어른이 되면 꼭 사회인 야구단을 할 거라고 말해요.
지금 한국은 선수할 친구가 아니면 야구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적이나 생활기록부에 도움 되는 게 아니면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죠. 스포츠도 학원에 가서 배우고. 자연스럽게 또래 집단에서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어떤 시스템 안에 들어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스윙스 친구들은 물론 경기에서 자주 지지만, 그 와중에 말도 안 되게 놀라운 순간들이 있거든요. 구멍이었던 친구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으면 다른 분들은 웃으시는데, 저희는 그게 너무 감동적인 거예요.
작년 4월 처음 스윙스를 만났을 때, 주성미 기자님이 기뻐하던 장면 속으로 작가님이 들어간 거네요.
네 맞아요.(웃음) 신학기에는 진짜 못 하거든요. 그런데 11월이 되면 봄이랑 되게 달라져요. 이 친구들이 야구를 새롭게 배우면서 하는 거잖아요. 민관이라는 친구가 처음엔 공을 못 잡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와서 이번에는 60번이나 잡았다고, 자기가 속으로 샌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게 놀라운 일이고, 너무 멋있다고 말하게 되는 거죠. 어느 날은 투수를 하는 다은이가 “우리 이번에 덜 깨지지 않았어요?” 라고 해요. 지긴 졌는데 좀 덜 졌다는 말과 개의치 않는 태도에 저도 감화가 돼요.
“우리의 스윙스”(184쪽)라는 대목이 짧지만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윙스와 ‘우리’라는 감각이 생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처음에는 애들이 인사를 잘 안 했어요. 유소년 엘리트 야구에서는 예의나 규칙을 정말 중요시해서 운동장에 어른이 있으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자를 벗고 단체로 인사를 해요. 근데 우리 애들은 그렇진 않았어요.(웃음) 아는 얼굴이니까 제가 운동장에 가면 멀리서 관심은 보이지만 다가와서 인사를 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애들이 슬금슬금 와서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하고 아는 체를 하기 시작했을 때 나를 우리라고 인정해 주는구나 생각했죠.
ⓒ표기식
일요일의 루틴엔 뭔가가 있다
스윙스가 첫 무승부를 기록한 경기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이후 첫 우승은 그 정도로 자세히 다뤄지진 않아요.
저는 무승부의 순간에 애들이 무승부인지도 몰랐다는 게, 그만큼 야구를 잘 모르고 승패에 관심이 없었다는 게 스윙스의 캐릭터 같다고 느껴졌어요. 비슷한 장면이 있어요. 책에도 나오는데 밀양 레인보우와 게임을 할 때 학생 코치인 선우가 작년에는 31 대 0으로 졌다고 말해요. 제가 그게 가능한 점수 차냐고 물으니 과장님이 옆에서 “무슨 31 대 0이야, 우리 12 대 0으로 졌어”라고 말하고 선우는 “그거밖에 안 졌어요?”라고 하거든요. 이런 순간이 스윙스 아이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작가님이 느낀 모습대로 스윙스를 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구성이었군요.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해 주는 어른들의 말을 학습하기도 했겠지만, 실제로 애들이 우승했다는 걸 별로 대놓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특별히 우승의 순간을 극적으로 그릴 생각이 없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매번 아이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어봤는데 대부분이 야구 끝나고 간식이나 햄버거 먹을 때라고 답하더라고요.(웃음) 아이들에겐 일요일마다 함께 모여서 야구를 하고 간식을 먹는 루틴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모습을 잘 담고 싶었어요.
일요일의 루틴이 10년 이상 지속됐죠. 공동체를 유지하는 건 생명체를 돌보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둘 다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드는 일인데, 곁에서 보셨을 때 스윙스가 유지될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라고 느끼셨어요?
저도 스윙스엔 정말 뭔가가 있다(웃음), 그게 뭘까 생각해 보게 돼요. 기본적으로 스윙스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각자 나한테 맡겨진 역할이 있고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더 힘들어지잖아, 그럼 내가 나가야지, 이렇게 다들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포지션이 역할인 거죠. 아이들도, 감독님도, 과장님도, 학부모 회장님도 모두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해내려고 하는 게 스윙스 안에서는 굉장히 큰 동력이지 않을까 해요.
역할이라는 건 애정과 책임감이 섞인 무언가일까요?
음, 저에겐 사회적인 역할이 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늘 있어요. 저는 오주원 경감님이나 이상민 과장님처럼 공동체 안에 직접 들어가서 어떤 역할을 맡는 일에는 조금 서투른 사람이에요. 대신 글을 써서 기록을 하는 게 저의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스윙스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스윙스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죠.
실제로 아이들이 스윙스의 어른들에게 굉장히 고마워해요. 나도 저분들처럼 커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스승이 되는 건 되게 좋은 일인 것 같다는 말을 해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는 거죠. 그러면서 그럼 나는 스윙스에서 1루수니까 1루수의 역할을 잘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매주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거든요. 울산 전역에서 와요. 부모님이 데려다 주거나 혼자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오기도 하고 지각하더라도 매번 오는 친구도 있어요.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게 스윙스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은 야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야구보다 넓은 이야기이기도 하다”(242쪽)라고 하셨어요.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결로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작가님께는 스윙스가 야구 이외에 또 어떤 이야기로 남아 있나요?
저는 이 책이 로컬이라는 말을 한 번도 안 썼지만 이상적인 로컬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로컬이라는 단어가 좀 오염되어 있는 것 같아요. 로컬이라고 하면 트렌디한 콘셉트나 브랜딩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자기가 사는 지역이 다 로컬이잖아요. 스윙스가 보여주는 건 한 지역의 삶이기도 해요. 이렇게 다들 각자 사는 곳에서 서로의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면서 재밌게 살 수 있겠죠. 스윙스는 저에게 그런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다른 분들도 자신의 곁에 있는 작은 운동장을 찾아보게 되는 디딤돌 같은 책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표기식
계속하기, 기억하기
표기식 사진작가님이 스윙스를 담은 사진 27컷이 실려 있어요. 사진 작업은 처음부터 생각하셨던 걸까요?
사실 처음엔 사진이 들어가는 게 맞을까 고민했어요. 아이들의 얼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날것의 사실적인 장면이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는데, 김정옥 대표님이 사진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대표님께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의 댄스스포츠 동아리 학생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를 말씀드렸어요. <땐뽀걸즈> 포스터를 표기식 작가님이 작업했거든요.
<땐뽀걸즈>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이 주인공인데, 포스터를 보면 그 친구들이 무대 위의 소녀시대처럼 반짝거려요. 그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스윙스의 아이들도 그렇게 담길 수 있을까, 단순히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모습 자체로 예쁘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두 이야기가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서툰 아이들이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빛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이고 곁에는 좋은 어른들이 있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은 있지만 과장된 감동은 없다는 점에서요. 표기식 작가님이 스윙스 작업에서도 그 결을 정말 잘 구현해 주신 것 같아요.
책에 있는 각주들도 인상적입니다. 가령 스윙스의 여자 투수 중 한 명이었던 수진이의 이야기는 한국 여자야구의 계보를 담은 각주로 끝나는데(202쪽), 상상해 볼 수 있는 다른 버전의 작은 엔딩처럼 느껴졌어요. 여러 각주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애정이 느껴졌고, 실제로 각주가 책의 레이어를 두텁게 만들어줘요.
다문화 관련해서 각주가 좀 많은 편이에요. 우리는 지금 다문화 사회를 살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를 다문화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들 얘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취재 베이스의 글을 써오다 보니 저에겐 익숙한 방법론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제가 문장가가 아니잖아요.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게 아니니, 데이터와 팩트 기반으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더욱이 다문화는 오해의 영역이 많기 때문에 데이터와 정책의 흐름을 함께 짚고 싶었어요.
모든 인터뷰는 인터뷰어에게도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이번 취재는 작가님께 어떤 흔적으로 남았나요?
지금 시점에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진짜 뭔가가 있을 텐데(웃음), 그 뭔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드러나지 않을까 해요. 분명히 기존 작업들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지만, 저에게도 또 다른 결을 가진 작업이었거든요.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스윙스를 지탱한 것은 대단한 한 장면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반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240쪽)는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능보다 ‘꾸준히 계속하기’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작가님도 꾸준히 작업을 해오고 계신데, 계속 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돈 안 되는 걸 왜 자꾸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얘기를 스스로 해요.(웃음) 그런데 당장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했을 때 너무 좋다는 감정이 드는 일이 있잖아요. 첫 단독 저서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을 쓸 때 전국을 다니며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선생님들은 반백 년 이상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신의 일을 해오신 분들이잖아요. 그때 제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선생님 중 누구도 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어요. 다만 선생님들의 삶을 통해 제가 전달받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소반장 김춘식 선생님을 되게 좋아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무슨 일을 하든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잠을 설치며 일 해본 적이 있는지 물으셨어요. 과연 어떤 일이 본질적으로 재밌고 좋아서 그렇게 빠져들어 본 적이 있나 싶더라고요. 그냥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칭찬받기 위해서, 아니면 성공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선생님들과의 만남이 주는 감동이 있었어요. 삶이나 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 세상은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하고 지난주에 유행했던 게 이번 주에는 낡아지는 시대가 됐죠. 그런 흐름 속에서도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들, 하지만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그런 맥락에서 그동안 문화유산이나 노포와 로컬에 관한 책(『하루에 백 년을 걷다』, 『또 올게요, 오래 가게』,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을 써왔고, 스윙스를 포함해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보기엔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이런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게 힘이 돼요.
ⓒ표기식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스윙스엔 뭔가가 있다
출판사 | 어떤책
하루에 백 년을 걷다
출판사 | 21세기북스
또 올게요, 오래가게
출판사 | arte(아르테)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출판사 | 온다프레스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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