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의 나를 통과한 여자들
[김선형 칼럼] 심연을 응시하는 용기로부터 ─ 조앤 디디온 | 예스24
내 삶에서 세계와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생명줄 같았던 읽고 쓰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었다.
글: 김선형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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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가 그린 조앤 디디온 초상화 ⓒ 김선형


“중심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뉴저널리즘의 전기를 이룬 조앤 디디온의 취재기사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W. B.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산산이 해체된다. 중심이 버티지 못한다. 넓어지는 회오리, 매잡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매,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 물론 조앤 디디온은 한 세계의 붕괴를 보고 있었다. 반지성주의와 도덕적 자기기만, 감상적 낭만주의의 망상에 빠져드는 미국 사회를 불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문장들을 한 줄 한 줄 번역하던 그 시기를 돌이켜 기억하면, 나 또한 한 세계의 붕괴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느낀다. 나라는 세계. 그때는 분명 나의 중심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는 분명 나의 의식이, 나의 세계가, 산산이 해체되고 있었다.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내 삶에는 처음부터 언제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커먼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시로 삭제되는 기억,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시간들, 어떻게도 제대로 헤아리거나 공명할 수 없는 타인의 심중. 친구들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화 중에 눈치 없는 말을 불쑥 뱉기 일쑤였고, 무엇보다 농담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책이든 만화든 음악이든, 어쩌다 무언가에 빠지면 까맣게 세계를 잊었다. 부지불식중에 시간이 뭉텅이로 흘러가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일상을 기억하는 능력이 엉망진창이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 우리 집과 내 방의 모습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늘 마음속 깊이 결격의 인간이라는 수치심을 품고 살았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히려 철저히 완벽하게 세계와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고 맞추려 발버둥을 쳤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나의 능력은 너무나 기복이 심했다. 나의 인성도, 나의 감정도, 나의 지능도, 고저의 차이가 너무나 심했다. 사람들은 나를 쉽게 좋아했다. 하지만 금세 멀어졌다. 이따금 아주 짧은 시간에 꽤나 놀라운, 누군가는 천재적이라고 말해줄 법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성과를 꾸준히, 정기적으로 반복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불안감에 마비되곤 했다. 영수증을 챙기거나 제때 연락에 답하는 것 같은, 턱없이 쉬운 어떤 일을 이따금 죽어도, 정말로 죽어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오히려 완벽주의자가 되려 애썼고 일중독에 빠졌다. 가족한테, 직장에서, 친구들에게, 모든 기대에 맞추려고 애썼다. 칭찬을 받거나 승인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 데 지독하게 집착했다. 하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확신하고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분명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정확히 무언지 짚을 수 없는, 하지만 명확히 존재하는, 나의 결격이 언젠가는 반드시 내 발목을 잡고 실패의 구렁으로 끌어내리리라, 늘 굳게 믿었지만 아닌 척, 의연한 척, 괜찮은 척 사는 데 도가 텄었다. 

 

하지만 2017년경부터 서서히 시작된 의식의 해체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결격과는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회오리는 넓어지고 매잡이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중심이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듣고 집에 오면 전혀, 아무 내용도 기억나지 않았다. 가벼운 농담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할 수가 없어졌다. 불면증이 심해졌고 감정 기복이 극도에 달했다. 무엇보다, 언어가 해체되고 있었다. 내 삶에서 세계와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생명줄 같았던 읽고 쓰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고 옮기는 일이 태산을 옮기는 듯 힘겨워졌다. 마감들은 도미노처럼 잇달아 무너졌고, 급기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밤이면 가슴에 바윗돌을 올린 듯 밭고 얕은 숨을 쉬며 가위에 눌렸다. 급기야 공황발작을 일으킨 어느 날, 나는 비닐봉지에 대고 숨을 몰아쉬며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게 아니면 미쳐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손발이 불수의적으로 덜덜 떨렸다, 콜라나 김밥 같은 간단한 어휘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 때나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얀 컴퓨터 화면 앞에 앉으면 그대로 숨이 막혔다. 드디어 항복 선언을 하고 일을 모두 그만두겠다 결심하기 전까지, 허우적허우적 늪 같은 시간을 꽤 오래 통과하면서,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의식을 부여잡고, 어찌어찌 필사적으로 옮긴 책들이 몇 권 있다. 그 마지막 즈음에 조앤 디디온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가 있다. 조앤 디디온은 이 책을 쓴 동기를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글쓰기가 무의미한 행위고 내가 아는 세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일하려면 반드시 무질서와 화해해야 했다.”(10쪽)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만물이 해체되는 세계, 원자화하는 무질서의 혼돈, 그 심연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이다. 베트남전쟁과 히피문화, 마약이 만연한 1960년대 미국의 혼란상, 이 세계에서 해체되고 있는 것은 사회성원이 공유하는 정확한 언어의 전통, 오로지 언어의 통달로만 가능한 독자적인 사유의 품격, 만연한 망상에 맞서는 정직한 현실 인식, 비딱하더라도 한 ‘성격’ 하는 강직한 캐릭터다. 뉴저널리즘의 신기원을 이룬 이 기사들을 얼핏 보면 조앤 디디온이 삭막할 정도로 감정을 배제하는 글쓰기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카메라의 눈도 아니”고 “내게 흥미롭지 않은 글을 쓰는 데 취미도 없어서” 자신의 글이 무조건 “간혹 불필요하리만큼” 자기가 “느끼는” 바를 반영한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고 또 그렇게 고백한다. 하지만 조앤 디디온의 감정은 조앤 디디온의 윤리, 조앤 디디온의 관점이 그러하듯, 어디서도 명확히 짚어내기가 어렵다. 조앤 디디온의 논고는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쉽게 편을 들거나 쉽게 판단하지도 않고 쉽게 느끼지도 않는다. 조앤 디디온의 감정과 사유는 이름 높은 ‘스타일’로 구현되어 ‘분위기’를 이룬다. 지각되는 현실의 세부를 정확한 언어로 배치하고 조합하는 독보적인 스타일은, 캘리포니아의 일상적 풍경을 뜨겁고 숨 막히는 광기의 지옥도로 바꿀 수 있다. 

 

조앤 디디온은 지옥도를 그려내는 데 비범한 재주가 있다. 그의 섬뜩한 스케치들은 “대지”로부터 시작된다. 풍경과 날씨 속에서 인간적 비극과 재앙이 잉태된다. “산맥 너머 모하비 사막의 유령에 시달리고 시속 100마일로 산을 타고 내려와 유칼립투스 방풍림에서 신경을 긁으며 울부짖는, 뜨거운 샌타애나 바람이 부는 더 혹독한 캘리포니아”의 10월은 “바람이 좋지 못한 달이라서 숨 쉬기가 힘들고 언덕이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오른다. 4월 이후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모두 비명으로 들린다. 바람 부는 곳 어디나, 자살과 이혼과 따끔따끔한 두려움이 성행하는 계절이다.”(19-20쪽) 부자연스럽게 높은 “옹벽을 따라 우거진 레몬숲은 푹 꺼져” 있고 “눈을 들면 지나치게 푸르르고 불안하리만큼 번들거리는 악몽 같은 녹음을 똑바로 대면”하게 된다. 그런 곳에서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황량한 배경”을 등지고 “상상 속의 좋은 삶”을 찾아 나선 여자는 “벨라비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에 앉아 새 전망창 너머 공허한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바라보며 남편을 폭스바겐에 태워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꿈을 꾼다. 조앤 디디온의 캘리포니아는 “뉴욕에서 다섯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포장마차를 타고 서부로 오던 도너 파티가 시에라네바다의 겨울에 갇혀 친족의 인육을 먹는 원초적 죄악을 저지르고 다다른 땅. 제이호커스가 몰살한 후 데스밸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대지. 미치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는 밤의 사막에서 몸 없는 이야기가 여행하는 곳이다. 네바다 선의 웅덩이 속에서 잠수부들이 사체를 수습하려 한다. “익사한 한 청년의 아내가 거기 나와 있다. 열여덟 살이고 임신을 했고, 구멍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열흘째 잠수 중이지만 동굴 바닥도 시신도 시신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 밑으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32도 수온의 시커먼 물. 종류를 모르는 투명한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을 뿐이다.” 잠수부는 기어이 미친다. 그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차가워지지 않고 오히려 뜨거워지는 물, 물속에서 깜박거리는 불빛, 마그마, 지하 핵실험에 대해 말했다.”(225쪽) 나는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며, 조앤 디디온이 내내 죽도록 겁에 질려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막을, 밤을, 광기를, 죽음을, 자기 안의 심연을, 끝내 응시했음을 알겠다. 조앤 디디온은 2004년 남편과 사별한 후에 자신이 겪은바 애도의 내면적 효과에 대해 쓴 『상실』에서 세계가 아니라 자기 안으로 침습한 지옥을 응시한다. 의식을 해체하는 “자기연민”과 “마술적 사고”에 맞서 흩어지는 언어들을 결사적으로 붙들어 맨다. 심연을 바라보는 용기로부터 비로소 삶이 태어난다는 걸, 그럴 용기가 없는 자는 자기연민과 감상적 망상에 빠져 세계와 유리된다는 걸,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조앤 디디온의 그 문장들이 나를 거쳐 가지 않았다면, 조앤 디디온의 그 문장들이 내 안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나는 무작정 다 내려놓고 두 달간 떠났던 여행에서 나의 하데스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과 하루 종일, 며칠씩 내내, 캘리포니아와 유타와 애리조나의 황량하고 광활한 대지를 자동차로 달렸다. 망망한 국도에는 대체로 우리밖에 없었고, 360도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였다. 그때는 영원히 유리 돔에 갇히는 벌을 받은 기분이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물의 필터가 있는 느낌이 늘 들었다. 까마득히 멀리, 일렁이는, 낯선 풍광의 세계 속에서 부표처럼 곁에 있어준 남편을 꼭 붙잡고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아주 많이 보았다. 사람들이 미치고 죽고 또 죽이는 조앤 디디온의 불안하고 삭막한 서부에 나의 하데스도 있었다. 조슈아 트리가 점점이 흩어진 사막에 해가 지고, 해가 떴다. 달리다 보면 컬럼비아 강이 흐르고 고도가 높아지면 사막이 금세 물러나고 초목이 우거졌다. 해가 지고 해가 떴다. 그때 그곳은 이세계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오랜만에 처음으로, 뭐가 어찌 되었든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을 때다. 

 

그 여행을 다녀오고 몇 달 후인 2023년 11월에 중증의 ADHD로 평생을 살아왔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내 삶의 모든 조각들이 맞춰졌다. 내가 자기연민을 타파하고 자존감을 되찾고 세계와 연결되기 위한 열쇠를, 내 자아의 핵심적인 앎을 손에 넣은 순간이었다. 조앤 디디온이 자존감의 초석으로 짚어낸 자질들, “분별하고 초연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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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mei

2026.09.15

대부분은 중심이 버티지 못하는 지점에서 멈추거나 나를 흔든 주변을 탓할텐데요. 저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은데 글에서 선생님은 고통을 두려워하면서도 돌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과정에 디디온이 있었네요. 번역은 직업 이상이군요. 업이면서도 구원이기도 한 작업이 신비롭습니다. 선생님께서 혼란의 원인을 찾고 치료 중이셔서 정말 좋습니다. 칼럼 감사히 읽었습니다.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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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조앤 디디온> 저/<김선형> 역

출판사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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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 영어권 문학을 연구, 강의, 번역한다. 메리 셸리, 수전 손택, 토니 모리슨, 비비언 고닉, 실비아 플라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디어 제인 오스틴: 젊은 소설가의 초상』과 『나만 아는 단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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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조앤 디디온은 뉴 저널리즘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글은 1960년대 반문화로 대중을 끌어당겼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녀만의 스타일로 특히 여성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녀는 1950년대 《보그》지에서 후원한 에세이 공모전에 우승하면서 잡지 편집자가 되었으며, 그렇게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64년에 당시 《타임》지의 기자였던 존 그레고리 던(John Gregory Dunne)과 결혼했다. 1966년에는 딸을 입양했는데, 퀸타나 루 던(Quintana Roo Dunne)으로 이름 지었다. 남편 존은 2003년 12월 30일, 독감에 걸렸다가 패혈증성 쇼크에 빠져 건강이 악화한 딸을 병실에서 면회하고 돌아온 후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딸 퀸타나는 존이 사망한 후에도 건강을 되찾지 못했으며, 결국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조앤 디디온은 2021년 타계하기 전까지 사회,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글뿐만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있는 그대로 대처하라(Play It as It Lays)』, 『푸른 밤』 등이 있다. 남편 존 사망 후 1년간의 회고록인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로 전미 도서상(2005년)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에는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