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문학을 담당하는 편집자라면, 매년 10월, 이 즈음에 각기 다른 이유로 노벨문학상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다. 자신이 소속된 출판사에서 관리하는 작가가 수상할 수도 있고, (비록 스웨덴 한림원에서 선정하긴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도 있으니, 공연히 마음속이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문학의 동향이라기보다 수상자를 선택하는 방식에 어떤 특정한 공식이, 암묵적으로 생겨난 듯한 인상이다.
애당초 노벨문학상 초기 수상자들만 보더라도 전부 유럽 작가인 데다 남성 중심주의적이었던 까닭에 첫 시상을 1901년부터 시작했음에도 1909년에야 여성 작가인 셀마 라겔뢰프에게 첫 영예를 안겼으며, 다음 여성 작가(그라치아 델레다)가 수상하기까지 십칠 년을 기다려야 했다.(1910, 1950, 1970~1980년대엔 단 한 명의 여성 작가도 수상하지 못했다.) 한편 여기서 노벨문학상의 취지를 굳이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문학 분야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낸” 인물에게 상을 수여한다고 못 박고 있음에도, 앞서 언급하였듯이 유럽중심주의적 ‘입맛’에 걸맞은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 국가, 그 언어의 문학적 위상을 고려했을 때, 스웨덴 작가에게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를 결정하는) 이 상이 여덟 차례나 돌아갔음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가장 광범위한 아시아의 모든 수상자를 합해도 여덟 명이 안 된다.)
사실 노벨문학상이 우리나라에서 범국가적 관심을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 관심 있는 이가 없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크게 사랑받아 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 가능성이 급부상하던 즈음부터 한강 작가의 영광스러운 수상으로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 동안만큼 이 상이 주목받은 적은 없었노라고 조심스럽게 발언하고 싶다. 어쨌든 국제적으로 가장 큰 문학 ‘축제’에 우리나라의 독자들도 마음 깊이 참여하게 되었음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며, 그 정도로 우리 문학의 위상이 크게 신장하였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으레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여러 언론 매체에서 올해는 과연 누가 수상할지를 두고 다양한 기사를 쏟아 낸다. 앞서 2020년대(2020~2025년)에 들어 ‘수상의 공식’이 거의 정설처럼 (물론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가설에 가깝지만) 받아들여짐에 따라, 미지의 수상자를 둘러싼 예언 같은 예측이 더욱 난립하고 있는 듯싶다.
예컨대, 2020년대에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수는 각각 세 명으로 동일하다. 만약 이게 하나의 법칙이라면, 지난해 남성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상을 받아 갔으니, 올해는 여성 작가의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는 것이다. 또한, 지역 안배가 정설이라면 지난 육 년 동안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서유럽, 북유럽, 아시아 동유럽이 제각기 상을 가져갔다. 물론, 유럽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음은 여전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독일과 스웨덴 등의 일부 국가가 상을 독식하던 초창기를 생각하면, 스웨덴 한림원이 나름대로 세계 문학의 균형추 역할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수백 명의 후보자 추천이 줄을 잇고, 유럽어권의 작품들과 그 유럽인들의 언어로 번역된 전 세계의 작품들이 스웨덴 한림원의 도서관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 어마어마한 선택의 기로에서, 여전히 ‘수상의 공식’은 유효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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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에 들어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지도의 빈 공간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윤곽이 드러난다. 일단, 2026년에 여성 작가가 수상하리라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이 한동안 빈손이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2010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와 2001년 V. S. 나이폴(트리니다드 토바고)이 해당 지역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장 최근의 예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때가 무르익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2024년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아시아 지역 전체(심지어 오세아니아까지)를 ‘퉁친 것’이 아니라면, 인도양과 중동의 여러 국가, 특히나 정치적 선택이 될 수 있어서 양날이 검이 되는 팔레스타인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랍어 작가에게 상이 돌아간 것은 1988년 이집트의 나지브 마흐푸즈가 유일하며, 벌써 삼십팔 년 전의 일이다.(인도는 그 문학적 위상을 고려할 때, 더 심각하게도 1913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유일한 수상자다.)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와 그의 대표작 『릴리아나의 불굴의 여름(El invencible verano de Liliana)』
다시 중남미로 돌아와서 수상자를 예측해 보자면, 역시나 올해는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멕시코)가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필자도 해당 작가의 작품을 서너 편 검토했고 비록 계약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주요 작품의 한국어판 판권이 이미 어느 출판사의 손에 들어갔음을 알고 있다. 대표작 『릴리아나의 불굴의 여름(El invencible verano de Liliana)』은, 1990년 전 애인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여동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멕시코에 만연한 페미사이드(femicide)와 가부장제의 폭력을 신랄하게 고발한 회고록이다. 가르사는 이 작품으로 멕시코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하비에르 비야우루티아상뿐 아니라 영어판으로는 퓰리처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밖에도 가르사는 『목화의 자서전(Autobiografía del algodón)』이라는 논픽션을 통해 조부모 세대가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이주와 노동의 역사를 재구성해 냈으며, 『아무도 내가 우는 걸 보지 못하리(Nadie me verá llorar)』 등 훌륭한 소설 작품도 다수 발표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사회 참여적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선뵈고 있는 가르사의 행보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으며, 한동안 산문 작가(2015년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더욱 주목할 만하다.
또 오랫동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 온 칠레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 마찬가지로 칠레의 시인 라울 주리타와 우루과이의 시인 이다 비탈레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런데 유럽에 속한 나라(그중에서도 미국을 포함해 12개국)를 제외하면 여태껏 세 차례 이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라가 없으니, 칠레 작가에서 세 번째 영광이 주어질지는 정말 미지수다. 한편, 20세기 현대 문학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친 보르헤스와 코르타사르,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등을 배출한 아르헨티나에 단 한 번도 상이 수여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세사르 아이라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리브해 지역에 상이 가야 할 차례라면, 저메이카 킨케이드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왼쪽부터 이사벨 아옌데, 세사르 아이라, 저메이카 민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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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해까지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헝가리)나 미르체아 커르터레스쿠(루마니아) 중 한 사람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가리라는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진심으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전 세계 독서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수상의 공식’이 깨질지, 아니면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지가 판가름 나는 해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1년 사실상 ‘수상 경력’이 전무한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선택하거나 미국의 위대한 작가들(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토머스 핀천, 필립 로스)을 전부 외면(무시)하고 밥 딜런에게 영광을 선사하기도 했다.(그레이엄 그린이나 존 밴빌처럼 장르 문학을 선보이거나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SF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도 박한 평가를 주는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냉전 시대의 과감한 선택에 비하면 굉장히 무사안일한 결정을 내리는 추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거물급 문학 에이전시에서 관리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놀라운 우연도 빚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선택은 열려 있고 그저 즐겁게 수상자를 축하해 주면 될 일이다. 지상 최대의 문학 축제를 즐기는 데에 무슨 철두철미한 전략이 필요하겠는가.
그럼에도 오늘 한 도박 사이트(왜 도박 사이트가 노벨문학상 후보자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됐는지는 미스터리이지만)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걸고 판돈을 불러들이고 있다. 중국의 작가 찬쉐,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멕시코의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가 순서대로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도박 사이트에서 1위 자리에 오르면 수상을 못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데, 이 또한 두고 볼 일이다. 아예 그 목록에 오르지도 않았던 한강 작가가 수상하던 순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유상훈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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