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대화에 완전 정복은 없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으로서 그의 죽음이 무척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책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리버 색스가 흄을 언급했듯, 나 역시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6.06.29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웅얼거리고 마는 실패의 기록
웅얼거리고 마는 실패의 기록이 성공적인 이야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포스트휴먼이 되어서도 나는 문학을 하게 될 것인가. 문학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인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여전히 중얼거리는 문학을 하고 있지 않을까.
2016.06.15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농담을 했는데 누군가 웃지 않는다면
농담을 자주 구사하는 나 역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누군가 웃지 않는다면, 문제는 내게 있는 것이다. 웃지 않는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
2016.06.01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현재를 단정짓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단정해선 안 된다. 염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후회하면서 다음 발을 내딛어야 한다. 선량함을 믿으면서.
2016.05.18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인터뷰
말을 하다 보면,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내뱉은 말 속에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가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참혹해지고, 사소해진다. 나는 내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일 뿐이다.
2016.04.27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이야기를 시작하는 두 가지 방법
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매카시즘의 광풍 때문에 무려 11개의 가명을 카드 돌려 막듯 돌려 막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던 달튼 트럼보의 이력 때문일 수도 있고, 탁자와 소파와 욕조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는 그의 열정 때문일 수도 있다.
2016.04.14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휴대전화가 없는 세상의 이야기
문명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폴 오스터가 타자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나 역시 휴대전화가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좋아한다. 주인공이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이야기, 망망대해에 남겨져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 고립되어 수년 동안의 일을 알지 못한 채 살아남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2016.03.30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말하는 것의 반대는 ‘기다리는 것’
수많은 예술가들이 칸과 칸을 창조적으로 연결시킨 덕분에 우리는 갇힌 공간 사이를 훨훨 날아다닐 수 있게 됐다. 만화를 보면서 칸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현실을 파악하고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만화는 우리에게 선물해주었다. 나는 만화의 칸 속에 적힌 말들을 보면서 대화의 묘미를 알았다.
2016.03.16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세상에, 과정 아닌 삶이 있을까
학교에서는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학교 시설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을 것이고 훌륭한 선생님들도 훨씬 많아졌겠지만, 선생님들에게 『지각대장 존』을 권하고 싶다. 초중고등학교의 선생님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뭔가 가르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권하고 싶다.
2016.03.02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작가에게 초상화를 기대하는 순간
책만 읽고 대화를 하지 않는 것 역시 문제다. 책에는 반론이 없고, 피드백이 없다. 책을 무조건 신뢰하는 순간 벽에 갇히게 된다. 언어와 비언어 사이, 말과 글 사이에 인간들이 있다.
2016.02.17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대화에도 ‘정중한 거리’가 필요해
아마추어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입을 빌리지만 프로페셔널한 작가들은 등장인물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위해 자신의 두 손을 빌려준다.
2016.01.20
김중혁(소설가)
김중혁의 대화 완전정복
무엇을 만들든 두께가 중요하다
대체로 올바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소리를 내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2016.01.06
김중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