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당신, 있습니까?
그동안 독자가 되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2024.10.08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당신을 닮은 그 유령의 이름은?
‘첫’을 기념하는 북토크나 전시, 공연에서 돌아온 날 밤이면 나는 어째서인지 매번 같은 책을 펼치고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였다.
2024.09.24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침묵은 어떤 색으로 누출되는가?
살고 싶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는 다 징그러운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엄마. 이번에는 멈춰 서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엄마가 말했다.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징그럽지. 징글징글하지.
2024.09.10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우리가 11시 59분에 놓고 온 것은?
콰쾅, 또는 쩌억, 아니면 스르르 절망적 위기의 순간. 쓰기는 그 순간을 잠시 붙잡고 있다가 파열되고 분해되고 사라진 몸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2024.08.27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그것은 왜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의 의미가 쓰기와 연결되자 은근히 무겁다. 모든 글은 “그것이 내게는 중요했다”라는 고백이 아닐 수 없으므로. 그렇다면 읽기는 당신에게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귀 기울이는 일.
2024.08.13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그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까?
어떤 기억과의 관계에서 자기 연민에 안온하게 빠지지도 못하고, 이성과 논리로 임시적인 보호를 시도하지도 못하는 여자를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딘가 늘 아프다.
2024.07.30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살아왔으니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라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살아가는 자신과 쓰는 자신의 간극을 둘은 꽤 다른 방식으로 감수한다.
2024.07.16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거울을 깨버리면 안 되나?
우리가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여전히 어떤 것은 알 수 없어서였다.
2024.07.02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엄마를 어떻게 하지?
새벽 2시 45분 엄마의 전화. 있잖아. 내가… 내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2024.06.18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나는 왜 나를 방해하는가? ②
쓰지 못하는 이유야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중 가장 유혹적인 건 쓰지 않으면 형편없음을 들킬 근거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쓸 이유가 수백수천의 쓰지 않을 이유 위로 떠오른다.
2024.06.04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나는 왜 나를 방해하는가? ①
18, 19세기 여성의 정당한 자서전 형식으로 간주되던 일기는 각 시대의 ‘여성적’인 구조 및 관점과 관계하며 여성적 장르로 발전한다. 주류 담론과 재현의 틈, 그 빈 공간이 여성의 언어가 태어나는 장소라면 일기는 여성에게 그 장소 같은 백지를 제공한 셈이다.
2024.05.21
김지승
김지승의 끔찍하게 민감한 질문들
[김지승 칼럼] 미치고 펄쩍 뛰기의 언어로 쓸 수 있을까?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무엇은 대개 오랜 분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곧잘 슬픔이나 무기력으로 위장하는 그것. 무식하고 교양 없고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너무 시끄럽고 과장할까봐 쓸 수 없는 그것.
2024.05.07
김지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