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의 책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다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10권의 책으로 아버지를 기억하다 이제 아버지의 책 중 특별한 10권을 선정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책 10권에 아버지의 인생과 내 젊은 날의 방황이 담겨있다고 말하면 나 스스로 손발이 오그라들리라. 그저 뭔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10권이다. 이야기가 있는 10권이다.

2012.09.27

고경태
아버지는 왜 이런 ‘위험한’ 책을 샀을까?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아버지는 왜 이런 ‘위험한’ 책을 샀을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더 이상 한 곳에 모여 살 수 없었다. 새 집은 좁았다. 형편껏 돌봐줄 새 주인을 찾아야 했다. 입양을 가기도 했다. 결국, 절반은 타향으로 떠났다. 나와 형제들의 운명이 아니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다…

2012.09.24

고경태
황영조 마라톤 금메달, 한국인 기억 속 가장 감격적인 장면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황영조 마라톤 금메달, 한국인 기억 속 가장 감격적인 장면 황영조가 8월10일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도 한국인 손기정이 금메달을 땄지만, 그는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은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감격적인 장면의 하나로 남을 쾌거였다…

2012.09.13

고경태
사상 최악의 콘서트 참사…  1992년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공연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사상 최악의 콘서트 참사… 1992년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공연 아버지의 스크랩 제25권을 펼친다. 1992년은 선거의 해였다. 2012년처럼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있었다. 내가 고향집을 찾아 아버지의 첫 승용차를 만난 것은 3월 총선으로부터 한 달여 지난 4월 중순이었다. 나는 직장생활 2년차였다. 만 스물다섯이었다. 1500cc 은색 엘란트라는 그 여유의 소박한 상징이었다. 하필 비극의 그림자는 이럴 때 들이닥칠까. 1992년은 나에게 먹먹한 흑빛 이미지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스크랩 25권을 다 채우지 못했다.

2012.09.11

고경태
대한민국 마지막 사형수는 ‘여의도 묻지마 살인’의 원조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대한민국 마지막 사형수는 ‘여의도 묻지마 살인’의 원조 아버지의 스크랩으로 1987~1991년을 뜯어보았다. 각 해의 대표 키워드를 내맘대로 정해본다. 1987년은 기대와 절망, 1988년은 5공청산, 1989년은 방북과 공안, 1990년은 3당통합, 1991년은 분신정국이다. 민주주의가 ‘개뿔’이라는 폄하를 당하던 시대였다. 1960~70년대 박정희 독재의 칠흑 같은 어둠과 80년 광주의 비극을 지나 이제는 좋은 날이 올 것만 같았다.

2012.09.05

고경태
전두환 백담사로 가던 날, 이순자는 울고…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전두환 백담사로 가던 날, 이순자는 울고… 시간은 신의 채찍이다. 주름은 채찍의 상처다. 아버지의 노래한 시간의 허무함은, 다른 말로 ‘채찍의 아픔’이다. ‘시간은 주문받지 않고도 흐른다…숨겨진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면 벗겨진다’는 당연한 말씀. 권력은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권불십년),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화무십일홍)는 말에도 토를 달 여지가 없다. 그저 1988년 스크랩에서 주인공을 찾아볼 뿐이다. 이순자라는 여인.

2012.08.31

고경태
악마가 대통령 당선? 상상할 수 없는 비극!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악마가 대통령 당선? 상상할 수 없는 비극! 박종철이 죽었다. 긴장과 숨죽임 속에 맞은 1987년이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연초부터 다가온 폭풍의 조짐이었다.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 정부와 시민의 대결이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던 때였다. 한 젊은이의 충격적인 죽음.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1987년 1월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와 수배 중이던 선배 박종운의 거처를 대라고 물고문을 당하며 추궁 당하던 그였다.

2012.08.29

고경태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을 뒤흔든 역대 3대 탈옥 사건의 전말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을 뒤흔든 역대 3대 탈옥 사건의 전말 시사주간지 에서 ‘쾌도난담’이라는 대담 코너를 담당하던 2000년 3월, 교도소에서 나온 지 1년3개월 된 조세형씨를 직접 섭외했던 적이 있다. 그는 전화 한 번에 흔쾌히 응했다. 대담 자리에 와서는 비상한 기억력과 방대한 독서량이 엿보이는 지식,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를 바라보며 ‘대도’에 대한 존경심까지 품었던 기억이 있다.

2012.08.13

고경태
63빌딩이 물에 잠긴다고? 대국민 사기극의 전말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63빌딩이 물에 잠긴다고? 대국민 사기극의 전말 1986년은 ‘폭풍 전야의 고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쓰나미 전야의 폭풍’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권력집단은 기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온갖 명분을 끌어대며 살기등등하게 나왔다. 저항세력 역시 체제를 바꾸기 위해 절박한 몸짓으로 대들었다. 두 집단의 쉼 없는 쟁투 속에서 1986년 내내 폭풍이 몰려왔다 지나가기를 반복했다. 이는 1987년의 대격변이라는 쓰나미로 이어졌다.

2012.07.31

고경태
“춤바람 난 아내를 처벌해 주오” - 제비, 강간범, 춤바람 마녀, 그리고 사랑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춤바람 난 아내를 처벌해 주오” - 제비, 강간범, 춤바람 마녀, 그리고 사랑 아버지의 스크랩 제16권(1984년)과 제17권(1985년)을 다시 편다. 한국인들의 가정과 가족을 거덜 낸 사건들을 중심으로 두 권을 훑어본다. 주제어를 하나로 잡는다면 ‘가정’이 될 지 ‘가족’이 될지는 헷갈린다. 둘 다 하기로 한다. 덤으로 사랑까지!

2012.07.17

고경태
살인, 방화, 강간… 10대는 원래 옛날부터 무서웠다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살인, 방화, 강간… 10대는 원래 옛날부터 무서웠다 아버지의 스크랩 15권(1983년), 16권(1984년), 17권(1985년)을 편다. 고2~3때와 대학교1학년 때다. 아버지는 50대 중년의 고지를 넘고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서슬 퍼런 제5공화국 군사독재가 중후반부로 치달았다. 날이면 날마다 대학생들의 시위였다. 아버지의 스크랩엔 대학생들의 각종 ‘과격행동’ 을 전하는 신문기사들이 도배돼 있다. 그런 가운데서 탈선한 10대들의 기사들이 읽는 이를 화들짝 놀래킬 만한 강도로 박혀있다.

2012.07.03

고경태
만취한 경관 소총 난사 56명 사망한 사건… 기억나세요?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만취한 경관 소총 난사 56명 사망한 사건… 기억나세요? 전투기가 넘어온 1983년 8월7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내가 중공 전투기 귀순을 이웅평의 것으로 착각했나? 그럴 리 없다. 숨가빴던 ‘실제상황’ 사이렌 소동이 이웅평 귀순 때였음을 수많은 자료가 확인해준다. 그렇다면 한 해 전이었나? 1982년 기사가 담긴 스크랩 제14권을 뒤적여봤다.

2012.06.19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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