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보고 싶다는 말 (2)
나는 누운 채로 가습기에서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아까 아이를 보러 갔더라면, 아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면,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저 보고 싶다는 말만 입 안에서 맴돌았다.
2015.07.22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보고 싶다는 말 (1)
아이가 태어났으니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가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엄마도 할머니네. 이미 할머니의 나이지만 첫 손자가 생겼으니 정말 할머니가 되었구나.
2015.07.15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를 만나는 날
안녕, 아가. 냉정한 엄마라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지금 배가 너무 아프구나.
우린 앞으로 오래 볼 사이니까 조금만 이해해줘.
그런 텔레파시를 보내는 동안 나는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2015.07.08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를 만나기 하루 전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드디어 내일이네, 내일이면 만나겠네, 라는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금세 들이닥칠 것처럼 가깝기도 하고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2015.07.02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를 만나기 이틀 전
작은 방의 책장은 철수했고 베란다에서는 아이 옷이 보송하게 말라갔다.
아, 이곳으로 정말 새 사람이 오는구나, 이제 세 식구가 되는구나,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2015.06.24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를 만나기 3일 전
너도 이 안에 있는 게 편하구나. 익숙해진 방에서 나와서 낯선 세상의 방으로 옮겨가는 게 두렵구나.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낯섦과 두려움의 상황에 놓이는구나.
2015.06.17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를 만나기 일주일 전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움직임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조금 아득해졌고,
이 균열로 인해 내 삶의 비포(before)는 깨지고
애프터(after)만 남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냉정해졌다.
2015.06.10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
나는 다리만 좀 더 길 뿐 펭귄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뒤뚱거리며 출산을 향해 걸어갔다.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보면서.
2015.06.03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는 자라고 나는 넉넉해진다
물론 읽고 쓴다는 핑계로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나름대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산책하고
밤에도 한 시간씩 걸어 다녔는데 늘어나기만 하는 몸무게가 야속했다.
그래도 양수가 충분해서 아기가 잘 놀고 있으며
머리나 배 둘레는 당장 낳아도 문제없을 정도로 크다는 얘기를 들으면
모든 억울함과 걱정이 사라졌다.
2015.05.27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누구나 자기 복을 가지고 태어난다
무슨 일을 하게 될까. 결혼하는 걸 볼 수 있을까.
상상은 걱정으로 바뀌고 그 속에서 나는 훌쩍 일흔 살 여든 살이 되었다.
늙은 엄마의 염려가 키를 높일 때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떠올렸다.
걱정 마라. 다 자기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
2015.05.20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준비됐나요? (2)
아기를 낳는 게 두려우면서도 기다려지고 육아가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가도 미궁에 빠졌다. 그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배에 넣고 다니는 한 몸의 시간을 충분히 누려볼 생각이었다.
2015.05.13
서유미(소설가)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준비됐나요? (1)
아기가 쓰는 물건들은 이름이 정답고 따뜻해서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세상에 나와서 쓰기에 적당한 물건이 어느 정도인지,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며 가족들이 무엇을 준비해놓고 환대하면 좋을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15.05.06
서유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