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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정고양이들아." 김진경의 『고양이 학교』 시리즈 완간

사람들 곁을 떠난 고양이들이 자립한 고양이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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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많은 판타지 동화와 『고양이 학교』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다른 판타지들이 모험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라면, 『고양이 학교』는 모험을 통한 회복의 이야기다.

2001년 여름, 어린이들에게 신비한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사람들 곁을 떠난 고양이들에게 자립한 고양이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고양이 학교’에서 보낸 초대장이다. 『고양이 학교』에 따르면 열다섯 살이 된 고양이들은 사람들 곁을 떠나 제2의 삶을 시작한다. 민준이네 고양이 버들이도 우체통 고양이를 따라 고양이 학교에 오게 된다. 러브레터, 메산이와 한 반이 된 버들이는 신비한 수정 마법을 배우는 수정 고양이반 학생. 이 세 고양이를 중심으로 신비한 모험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국 판타지 동화의 새 장을 열다

“처음 다섯 권짜리 판타지 동화를 낸다고 했을 때, 전 솔직히 ‘출판사가 더 용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고양이 학교』는 이전 한국 동화들과는 달랐고, 낯선 장르였으니까요. 서양 판타지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줄까 고민이었고… 어린이 책은 엄마들이 좋아해야 베스트셀러가 된다는데, 엄마들은 공부에 도움을 주는 책을 좋아하는데 제 책은 판타지잖아요. 작품의 성공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어요.”

『고양이 학교』 3부(전 3권)
그러나 『고양이 학교』의 성공은 눈부셨다. 어린이들이 먼저 책의 재미를 알고 부모들을 졸랐고, 책이 담고 있는 깊이 있는 동양 신화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부모들에게도 인정받았다. 한국 어린이들만 『고양이 학교』의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니다. 프랑스와 중국, 대만, 일본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어, 일러스트레이터 김재홍과 함께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아동문학상인 앵코륍티블 상을 수상했다.

“앵코륍티블 상을 받은 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몰라요. 거의 없는 나라로 여기죠. 일전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다녀왔는데, 리셉션에서 유럽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 한국이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더군요. 중국어나 일본어를 쓰는 줄 알았다는 거예요. 우리 문학 작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봐야죠. 앵코륍티블 상은 어린이들이 주는 상인데, 아마 어른들이 주는 상이었으면 못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고양이 학교』의 저자 김진경

『고양이 학교』의 인기에는 김재홍의 삽화도 큰 몫을 했다. 털 한 올 한 올이 살아 있는 고양이들은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글 작가의 상상력을 그림으로 옮겨 판타지의 세계를 코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글과 그림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아동문학계답게 앵코륍티블 상은 글 작가와 그림 작가 모두에게 주는 상이다.

쟁쟁한 유럽 작가들과 경쟁해서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동화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더욱더 의미 있는 상이다. 1부의 성공에 힘입어 2부가 나왔고, 작년 12월 『거울전쟁』을 새롭게 고쳐 쓴 3부로 수정 고양이들의 모험은 일단 막을 내렸다. 독자들에게는 아쉽게도 말이다. 4부를 쓸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이만큼 길게 썼으면 됐지 뭘 더 써요. 3부 11권으로 할 이야기를 충분히 다했으니까 이젠 다른 이야기를 해야죠.”


『고양이 학교』는 회복의 이야기다

『고양이 학교』의 시작은 지극히 동화적인 상상력에서 시작되었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버들이가 죽으려고 집을 나가자 둘째 아이의 상심이 컸다. 맞벌이 부부 밑에서 자라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딸아이였다.

“딸아이에게 ‘버들이는 죽은 게 아니라 고양이들만의 세계로 살려고 간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 주면서 고양이 학교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고양이들은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혼자 조용히 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고양이들이 죽는 게 아니라 어디 딴 곳에 가서 공부도 하고 모험도 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죠.”

정말 동화만이 할 수 있는 이런 상상이 『고양이 학교』의 한 변이라면, 동양 신화는 또 다른 한 변이며, 인간과 자연이 서로 상생할 수 없는 오늘날의 삭막한 현실은 또 다른 한 변이다. 이 세 선이 이어져 만들어진 거대한 삼각형이 바로 『고양이 학교』다. 동화적인 상상을 실은 배가 동양 신화라는 거대한 이야기 바다에 띄워지고, 생명 존엄성의 파괴라는 차가운 풍랑이 거칠게 날뛴다.

『고양이 학교』 2부
(전 3권)
그 풍랑을 지혜롭게 다스려 모든 생명이 존중되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상 한 번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는 과거와 모든 생명이 꿈꾸는 미래를 회복하고 싶은 염원을 담았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많은 판타지 동화와 『고양이 학교』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다른 판타지들이 모험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라면, 『고양이 학교』는 모험을 통한 회복의 이야기다.

“1부에서 3부로 오면서 점점 인간 주인공들의 비중이 커집니다. 또, 점점 구체적인 현실 이야기가 드러나죠. 1부에서는 전 인류적인 문제였다면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나오는 2부와 외국인 노동자 차별 문제가 나오는 3부는 한국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니까요. 1부에서는 주변 인물이었던 민준이와 세나가 2부에서는 수정 고양이들의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3부에서는 모험의 주역이 되죠. 뒤로 갈수록 수정 고양이들의 비중이 적어진다고 서운해 하는 어린이들도 있더군요.(웃음)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판타지 동화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고양이 학교』는 어린이들에게 뭔가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 쓴 이야기예요. 어린이들도 현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건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판타지보다 현실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또, 신나는 모험을 통해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놀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동네에서 다 같이 어울려 놀면서 자랐어요.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배우고, 사는 법도 배우고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 특히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빡빡한 일정에 갇혀 살잖아요. 친구도 없고, 오락거리라곤 게임기 정도고. 요즘 아이들이 판타지물에 열광하는 건 아마 이야기를 통해 놀이를 대리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다음 세대를 위한 동양 신화

김진경 작가가 동양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94년. 그 계기가 사뭇 흥미롭다.

“94년에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복직이 됐어요. 그런데 복직을 한 후에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 정신과치료를 받은 일까지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데 애들은 거기에 반응하지 않는 거죠. 선생님들이 거기서 큰 상처를 받았어요. 교단을 떠나 있는 십 년 동안 아이들이 크게 바뀌었어요. 도무지 소통을 할 수 없고, 아이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특히, 그 즈음 학생들의 염색과 피어싱이 크게 문제가 되었는데, 그 문제를 한 번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양이 학교』 1부(전 5권)
그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교육학, 사회학, 인류학을 거쳐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신화였다. “아이들은 사회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요. 미국의 경우를 보니 염색과 피어싱, 문신의 문제가 있더라고요. 가장 극단적인 게 문신인데, 문신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잖아요. 그래서 문신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고대에 문신은 신성한 종교적 행위였지만 국가가 생기고 나서 문신은 죄인이나 노예에게 하는 것이 되었다. “국가는 체제를 위해 몸을 억압하죠. 그래서 문신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거예요. 문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이성의 논리보다는 몸의 논리가 더 중요시되는 사회죠. 아이들의 변화는 우리 사회가 이성의 논리에서 몸의 논리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농담을 덧붙였다. “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남녀가 한 번 자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잖아요. 요즘처럼 몸이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경우가 없었어요.(웃음) 결혼을 하는 데 몸의 논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결혼뿐만 아니라 사회가 전부 그랬죠. 머리 쓰는 게 제일 중요한 일로 여겨졌잖아요. 몸으로 하는 일은 천하게 여기고. 그렇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죠. 연예인들이 청소년들의 선망을 받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우리 세대는 이성과 논리가 중요했지만 다음 세대에는 몸과 감성이 중요해요. 우리 세대가 가졌던 시각으로는 다음 세대를 살아갈 수 없어요. 우리 세대와 우리 자식 세대 사이에는 일종의 문명사적 변화가 있어요.”

그런 그에게 신화는 ‘오래된 미래’다. 다시 몸의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화는 해답의 열쇠를 건네준다. 특히, 그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흩어져 있는 동양신화에 주목한다.

“근대는 서구 중심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동북아에 대한 시점을 가져야 하는데, 그럴 때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 동북아의 신화일 것입니다. 신화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시베리아와 중국, 한반도가 하나의 신화권입니다. 근대국가 개념으로 신화를 제한하면 신화는 빈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우리의 건국신화를 예로 들었다. “국경을 기준으로 신화에 선을 그으면 우리는 우리의 건국신화마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세계화를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아닙니다.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반영된 거죠. 진정한 세계화는 우리의 문화가 동북아의 신화를 알고, 아시아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알아가면서 시작되는 거죠. 특히 『고양이 학교』 3부에서는 이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30권 연작의 판타지 동화 『잃어버린 것들의 도시』

작가는 작품을 헤어진 연인처럼 여긴다고 했던가. 고양이 학교 시리즈를 끝낸 김진경 작가는 새로운 작품과 연애를 시작했다. 7년 동안 11권을 써내며 작가적 역량을 모두 쏟아 부었던 『고양이 학교』에 이은 새로운 도전이다. 『고양이 학교』와 달리, 각 권의 주제와 주인공이 모두 다른, 판타지라는 형식만을 공유하는 연작 동화 형식으로 집필될 예정. 이미 첫 두 권은 원고 작업을 모두 끝낸 상태.

“제목을 ‘잃어버린 것들의 도시’라고 정했는데, 첫 두 권은 다 썼어요. 그림 작업이 끝나면 곧 출간되겠죠. 이번 연작 시리즈에도 고양이가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자기 세계가 있죠. 옆에 있으면서도 무심한 구석이 있고,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비밀스럽고… 현실과 판타지의 세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정말 세상 어딘가에는 고양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지 않을까, 지금 무심한 얼굴로 햇볕을 쬐고 있는 저 고양이가 수정 고양이가 아닐까, 내 동화 속에 나오는 버들이, 러브레터, 메산이가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모험을 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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