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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의 거장 옌롄커를 만나다

마오쩌둥의 사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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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발간 2주 만에 재판을 찍었다. 표지부터 요염한 이 책은 2004년 중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으로 초판 3만 부가 전량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출판, 및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이 금지되었다.

흔히 일본을 두고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하지만 문학과 관련하여 보면 중국이 그러하다. 중국의 고전문학은 우리 고전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20세기 이후의 중국 근?현대 문학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21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한국어로 번역되고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발간 2주 만에 재판을 찍을 만큼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표지부터 요염한 이 책은 2004년 중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으로 초판 3만 부가 전량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출판, 및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이 금지되었다.

무슨 내용이기에 이런 조치를 당한 것일까?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성불능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롄이 취사병 우다왕을 자신의 침실로 유혹한다. 그녀가 우다왕을 유혹하면서 하는 말이, 마오쩌둥의 그 유명한 정치구호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다. 중국 정부가 발끈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오쩌둥의 사상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 내에서 집계되지 않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세계 17개 이상의 국어로 번역되었다. 작가 옌롄커는 단숨에 국제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글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에게 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문학 포럼 2008>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옌롄커를 만났다.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한 그는 좀 전에 호텔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을 방문하고 온 참이었다.

한국은 첫인상은 어떤가요?

좀 전에 서점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한국 독자들의 수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책들이 분야별로 잘 정리된 거대한 서가와 거기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일본문학, 남미문학, 영미문학 등 다양한 번역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게 부러웠습니다. 중국의 당대문학이 번역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거기에 비해 중국에서는 한국 문학을 많이 접할 수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작가로서 어떠한 압력까지 느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만 소개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문학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되어야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문학 책 중 번역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요?

30% 정도. 한국의 독자들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하고 있어서 그만큼 안목도 높을 것 같아요. 한국에 소개된 중국 작가들은 중국 문단에서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들입니다. 그런 책들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사람들의 안목과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을 즐겨 읽으시는지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소콜로프 같은 러시아 작가들을 좋아합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와 같은 남미 문학 작품들도 즐겨 읽고요.

일부 한국 독자들은 당신의 작품(『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을 애정소설 혹은 성애소설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정치적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이 작품이 5금(禁) 소설이 된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겉으로 보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성애소설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혁명(문화대혁명)을 해체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작가들이 성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느냐는 것은 천차만별입니다. 중앙선전부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5금(禁) 조치를 취한 것은 중국의 혁명전통을 희화화했다는 이유에서인데, 이 작품은 중국 문학의 유구한 전통인 비판(풍자)에 닿아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말살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인간 본연의 사랑과 애정으로 되살리려는 시도였습니다. 문혁이 있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문혁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으로 그 잔재를 없애고 싶었고, 동시에 문학이 지향해야 하는 건은 인간성,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인간 본연의 문제를 성애를 통해 그려낸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중국에는 많은 혁명이 있었습니다. 그중 인민을 해방시킨 진짜 혁명도 있었지만 문화대혁명처럼 미친 혁명도 있었지요.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거꾸로 가는 혁명이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인성(人性)에 대한 반동이었습니다. 문학은 이런 잘못된 혁명에 대해선 질의를 던지고, 해체하고 비판을 해야 합니다.

작품에서 문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단장을 성적불구자로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문화대혁명 전후 20년 동안 그 시기에 가장 통제되고 제한을 받았던 것이 인성과 애정이었습니다.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사단장을 인성과 애정에서 멀리 있는 인물로 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폭발할 수 있는 것인데 사단장은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어요. 류롄과 우다왕의 사랑은 인간 본연의 존엄을 억압하는 잘못된 혁명에 대항하고 해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만약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몇 십 년 전에 나왔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쓸 수도 없었겠지만, 30년 전에 나왔다면 총살당했을 거고, 20년 전에 나왔다면 감옥에 갔을 겁니다. 중국에서 이 작품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중국이 그만큼 개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품이 금서로 지정된 후, 마음고생을 하진 않으셨나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쓴
옌렌커(閻連科)
1994년에 『여름날 해가 지다(夏日落)』이라는 작품을 썼을 때 군대에서 쫓겨날 것을 각오했어요. (옌롄커 작가는 1978년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2005년까지 군인으로 살았다.) 그런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논란이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 정도는 중국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위라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5금을 당했습니다. 10년 전에 쫓겨날 각오를 한 적이 있어선지 위축되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5금(禁)을 당해서 덩달아 『즐거움』과 『물처럼 단단하게』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발표한 『딩좡의 꿈』도 일부 부분을 삭제한 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습니다.

조정래 선생님은 소설가의 존재를 ‘시대와 불화하는 자’라고 했는데, 이 작품을 쓴 옌롄커 선생도 시대와 불화하는 소설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에는 ‘번뇌와 분노가 시인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조정래 선생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해 회의하고 반항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작가는 뭔가 문제가 있는 자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회든지 작가에 대한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사회에서는 금지와 검열보다는 관용과 포용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완전한 관용까지 가기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중국 작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정부의 검열이나 외부적인 압력이나 제한이 아닙니다. 작가에게 자기 진실, 사회에 대한 자기 고뇌를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와 중복되겠지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자기가 느끼는 진심을 쓰려는 용기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중국 문단의 가장 큰 문제는 문단 외부 조건, 글을 쓸 수 있게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쓰려고 하느냐 쓰지 않으려 하느냐 하는 거예요.

지난 60년 동안 중국 문단의 가장 고질화된 문제는 자기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겁니다. 창작의 자유에만 얽매어 있었지 정작 작품을 쓰는 데 그 열정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자기가 무엇을 쓸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정말 좋은 작품을 쓰려는 내부 관리에 소홀했어요. 작가 자신이 ‘정말 내가 작가로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루쉰은 중국 작가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입니다. 그는 외부의 탄압이나 찬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낸 위대한 작가입니다. 중국 작가들도 루쉰을 닮아야 한다고 봅니다.


검열에 대한 중국정부의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국내에서 5금(禁)을 당했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이 작품을 찾아 읽을 수 있고, 해외로도 번역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에게도 좋은 소식인데, 중국 정부는 작가의 창작에는 100% 자유를 줍니다. 간섭하는 것은 국내에서의 출판, 기획에 대한 부분입니다. 해외 판권에 대해서도 자유를 줍니다. 어느 나라에 번역되건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볼 때 좀 위험하다는 작품이 나오면 중국 국민들에게 읽히지 않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작가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소설가는 ‘모든 소설가들의 은밀한 욕망이 자신이 쓴 책이 금서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자기 책이 금서가 되어 자기 지명도에 영향을 미칠 것을 바라기보단 자기가 쓰는 글에 대한 명징한 인식, 작품 자체에 모든 걸 걸고 써야 합니다. 그런 걸 기대하는 건 잘못이 아닐까요. 글쓰기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금서가 되어 책이 잘 팔리고 유명해지는 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겁니다. 미국의 어느 잡지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소개하면서 ‘중국에서 금서가 된 책 중 가장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했습니다. 단지 소재 때문에 화제가 된 책은 아니라는 거죠.

문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작가가 된 후 끊임없이 매진해 온 테마는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옌롄커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다.) 처음에는 비록 먹고살기 위해 문학을 했지만 지금은 문학에 내 생명이 있고, 문학 때문에 나는 존재합니다. 문학은 나의 생각, 사상,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내 작품은 독자를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위해 씁니다.

작가로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중국 최하층 사람들의 생존 문제입니다. 6000년을 이어온 중화민족의 고통에 대한 것입니다. 내 작품은 중원의 땅, 내 고향의 땅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 문학이 바로 거기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지 30년이 되었고, 거기서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작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이 혼란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의 사회주의는 20년 전의 사회주의와는 크게 달라요. 말은 사회주의지만 무수한 자본주의적 요소가 있죠. 중국 사회는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도농 간의 격차, 빈부의 격차, 남방과 북방의 격차…… 모든 갈등을 실은 채로 이 기차는 미친 듯이 달리고 있습니다. 이 모순은 갈수록 더 심해지겠지요. 생겨나는 모순들을 정부가 잘 해결한다면 이 기차가 요행히 잘 달리겠지만 해결하지 못한다면 탈선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었는데요. 이후 한국에 번역되길 바라는 작품은 어떤 작품들인지요.

30년 동안 글을 써왔는데, 『딩좡의 꿈』(번역예정), 『물처럼 단단하게』(번역예정), 『즐거움』 등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문학성에서 볼 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통역으로 수고하신 중국문학 번역가 김태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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