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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여류 작가가 바라본 ‘백화점에 관한 모든 것’ - 『백화점』 조경란

그녀가 백화점에서 빅뱅 음반을 구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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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구매하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공간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 그것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요.


“어떤 것을 구매하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공간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 그것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언제부터 이 도시에 생겨나게 되었을까 궁금해지고, 시장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지더군요. 이 책은 백화점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이자 도시 삶에 대한 예찬이에요.”


조경란이 산문집 『백화점』을 냈다. 작가가 도서관이 아니라 백화점 예찬을 했다. 사람들의 소통과 관계, 고독을 들여다보고 감각적인 문체로 풀어낸 소설들 『나의 자줏빛 소파』, 『풍선을 샀어』, 『혀』, 『복어』 등의 작품들을 보자면 이상할 것도 없다. 사람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쩍이는 작가에게는 무거운 침묵과 사색이 감도는 도서관보다 층층마다 다른 욕망이 들끓는 백화점이 훨씬 흥미로운 공간이었으리라. 조경란 작가는 특유의 예민함을 살려 백화점의 구석구석을 문장으로, 단어로 훑어 내려갔다.

『복어』를 쓰고 나서 힘들었어요. 주제도 무겁고 다루기도 쉽지 않았거든요. 다음 작업은 쓰는 나도 즐겁고 읽는 독자도 즐거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평소 백화점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바로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2년 전부터 이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시기적으로 심리적으로 잘 맞은 셈이죠. 어느 날 아침에 눈뜨고 일어났는데, 날씨도 좋은데, 피크닉 한번 가볼까. 싶은 날 있잖아요. 그런 명랑한 마음으로 썼어요.”

조경란 작가가 백화점에 들어선다. 그녀는 1층을 먼저 둘러본다. “중요한 디스플레이 장식은 정문에 하니까요. 제가 백화점에 가는 건 무언가를 보고 어떤 감각을 느끼러 가는 거거든요. 1층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건 마치 책을 사고 맨 앞장을 보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비슷해요.”

그녀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의 시야에 포착되는 것은 혼자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 특별히 애정을 기울이는 사물인 시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백화점이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일하는 직원들이다. 그 여자, 조경란 작가가 최근에 구매한 것은 음반과 구두라고.

“닐 다이아몬드 음악과 빅뱅 신보를 샀어요. 닐 다이아몬드가 고전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서 만든 앨범이라면 빅뱅은 신디사이저와 새로운 리듬감을 접할 수 있는 앨범이에요. 저는 이렇게 늘 두 가지 것을 접하려고 해요. 호기심이에요. 호기심이 없으면 생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구두는 인터뷰 할 때 신고 가려고 샀어요.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상징적으로 샀어요.(웃음)”





“이걸 사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예민한 감수성의 작가의 백화점 기행은 흥미롭다. 그녀는 혼자라는 손님을 벽 쪽이나 실내를 등지고 앉는 자리로 안내하는 종업원에게 가운데 넓은 자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아뇨. 이쪽 말고 저쪽에 앉을 게요.”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노트에 이렇게 쓴다고.

‘백화점에 이런 식당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p.304) 사색과 경험, 그리고 백화점에 관한 풍부한 취재가 버무려진 기록은 ‘백화점’이라는 키워드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취재가 쉽지는 않았어요. 요청하면 사람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쓸 지 모르니까요. 그런 사람들을 설득해서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죠. 하지만 백화점에 대해 쓰면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을 보지 않고 쓰는 것은 직무태만처럼 느껴졌어요.

구두 수선실이나 집배실, 폐점 후 불이 꺼진 백화점 안에서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뜻밖에 노동의 가치,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 깨닫게 되었어요. 얼핏 보면 휘황찬란하고 으리으리하고 욕망의 전시장 같이 보이는 이 백화점도 저들의 노동이 없이는 이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겠구나. 나도 얼른 내 책상 앞에 앉아서 신성한 노동을 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불완전하며 부족한 나는 결코 사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 즐거움의 순간이 아무리 짧을지라도 그것은 확실하고 분명한 즐거움이다. 나는 구매했다. 여기에 필수적인 요건은 '나는 선택했다'라는 감정이다. 나는 선택했고 그것은 즐거움으로 남는다. 소비에 당위성은 없다. 소비의 이유도 소비의 기쁨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 우리는 행복했다.”( p.97)

쇼핑의 핵심은 선택이다. 생필품처럼 단순한 필요에 의한 쇼핑, 지름신에 이끌려 충동적인 쇼핑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품에 가치를 발견하고 선택하는 데에 조경란 작가가 말하는 쇼핑의 매력이 있다.

“늘 아이러니 하지만 백화점에는 우리가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이 훨씬 많잖아요. 내 수입이 또래 여성의 평균 수입에 미치지 못해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저것들을 다 갖는다고 해서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질문하죠. 이것을 사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이성적으로 질문하고, 그것을 사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돌아설 때 약간의 쾌감이 있어요. 어떤 상품에 선택 당했다는 기분이 아니라, 내가 욕망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는 쾌감이죠.”



백화점, 조경란 작가의 성장기


취향과 기호가 상품마다 세분화되어 있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사는 행위는, 그 사람의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눈에 자기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몇 번이나 고민 끝에 같은 공간을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 브랜드 매장부터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실용적인 세일 상품 매대에 먼저 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백화점은 신상품 진열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A/S매장이기도 하다. 백화점에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백화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경란 작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6년 동안 소설로 쓰지 못했지만, 작가로서 경험했던, 의미 없지 않은 일화들이 있더라고요.” 이야기 속에는 검은 옷을 즐겨 입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던 20대 소녀의 모습, 자기 취향을 발견하고 존중할 줄 아는 여성이 된 작가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예전에 백화점은 저 같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남대문로에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었는데, 늘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만 했죠. 그때 저라는 한 사람은 이 세계에서 소외되어 있고, 미끄러져 있다는 느낌에 휩싸였기 때문에 선뜻 어디에도 발걸음을 내밀지 못했어요.”

물론 지금은 다르다. 단지 직업이나 처지가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향적이예요. 다만 꿈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향해 머뭇거릴 때와 달려갈 때는 분명히 다르거든요. 지금은 무엇에도 흔들림 없는 꿈을 갖고 있고,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 거죠.”

조경란 작가는 “이 책이 한 권의 성장기로 읽혀서, 자기만 제자리 걸음을 걷는다고 한탄하는 젊은 독자에게 힘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정말 이랬어? 이런 사람이었어? 정말 다양한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꿈도 없고 부적응자였던 여자 아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의미 있는 사물과 접촉하면서 지금 이러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사물은 물론 책이죠. 책 때문에 지금의 인생이 가능했다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제 삶 근처에 책이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문득 궁금해진다. 책 외에 나를 변화시킨 것은 무엇인지.’(p.198)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가족입니다. 조카들 네 명이 있는데, 두 아이들은 함께 산지 7년이 넘어가요. 저는 예민한데다 시니컬하고 냉소적이고 잘 웃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두 아이들은 그런 저를 변화시킨 생명체들이에요.

임신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아이들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겪었고, 육아에 대한 경험은 감히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문학적으로 길게 놓고 보아도, 지금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민하지만 잘 웃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고 그 에너지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노인 된다면 멋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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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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