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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가 확실한 여인, 배심원들은 왜 무죄로 봤을까? -『확신의 함정』금태섭

정말 틀림없다고 확신하는가? 당신도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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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내린 첫날이었다. 악천후에도 한겨레 신문사 3층 청암홀이 가득 찼다.『확신의 함정』의 저자 금태섭 변호사는 살아온 이야기부터 꺼냈다.

지난 7월 26일,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내린 첫날이었다. 악천후에도 한겨레 신문사 3층 청암홀이 가득 찼다.『확신의 함정』의 저자 금태섭 변호사는 살아온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의 꿈은 탐정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탐정은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사법시험을 쳐서 검사가 되었다. 검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공안검사, 특수검사 등 많은 역할이 있음에도 굳이 살인 사건을 맡았다. 그렇게 해서 서울중앙지검에서 퇴직할 때까지 그는 12년 동안 범죄 수사를 했다.


“검사생활을 하던 중, 사람들이 ‘법’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이 국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한 권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기자들과 식사 중에 한 일간지에 생각했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검찰에서 싫어하리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나 글은 계속 쓰게 하지 않을까 예상했죠. 그 이후에 시골로 가지 않겠는가, 예상을 하기도 했고요.”

그는 끝내 연재를 끝맺지는 못했다. 지금도 그는 당시 연재를 정상적으로 끝맺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끝까지 써야 되지 않았나” 생각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검찰에 뼈를 묻고자 했으나, 실망한 부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을 나와서 보니, 더더욱 반드시 나의 생각이 옳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는 그는 “지난 사건과 변론 등을 돌이켜보며 성의를 가지고 성실하게 수사를 한 것도 틀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초임 검사 시절 한 피의자를 조사한 일도 ‘확신의 함정’이 숨어 있었다. 범죄 내용은 간단했다. 한 삼십대의 젊은 남자가 길에 주차되어 있던 고급차를 훔친 사건이었다. 피의자는 서울역 앞에서 문이 잠기지 않은 차가 주차되어 있던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탐이 나서 훔쳤다고 말했다. 그는 범행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고, 착각이거나 단순한 착오가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범죄 내용이 아니라 피의자 본인의 사정이었다.

삼십대 초반이었던 피의자는 십대 후반에 교도소에 들어가서 12년을 꼬박 복역하고 삽십대가 되어서야 출소한 사람이었다. 나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길에 고급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훔친 것이다. 피의자는 십대 중반부터 크지 않은 죄를 저질러서 교도소를 드나들다가 다시 5년형을 선고 받으면서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서 12년을 살게 된 것이다. 그 시절에는 3회 이상 죄를 저질러서 실형을 받게 되면 7년의 보호감호에 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피의자는 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민 끝에 그는 보호감호 청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몇 달 후, 신문을 보던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차에서 데이트를 하는 남녀를 상대로 여러 차례 납치강도를 저지른 일당의 신원이 드러나서 그 중 몇 명은 경찰에 잡히고 남은 한 놈이 쫓기고 있다는 뉴스였는데, 도망 다니는 놈의 이름이 바로 그 피의자의 이름과 같았던 것이다. 그가 보호감호를 청구하지 않자 판사도 피의자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피의자는 그 길로 나가서 계속 납치강도 행각을 벌인 것이다. 범행 수법도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검사인 그의 앞에서 말도 못 하고 하염없이 울던 피의자는 그런 놈이었다.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후회와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그는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선입견, 오만, 그리고 불성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누구나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항상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찰나의 순간이라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p.7)”와 같은 물음이 곧 ‘확신의 함정’이다.

“그때 당시의 저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보호감호처분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이렇게 최선의 판단이라는 생각이었으나, 그 판단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이 틀릴 수가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사형, 성매매, 아동 성폭력 문제와 같이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도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일단은 다른 말들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들로 인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처참한 시체, 범인은 누구일까.


그는 이어서 국내에 배심 재판이 막 들어왔을 때 모의재판을 벌였던 사건을 소개했다. 미국 사람과 결혼한 한국인 주부가 피고인이었다. 아이를 둘 낳고, 미국에 살다 우울증이 생겨서 한국에 혼자 오게 된 피고는 이모의 식당에서 일을 하며 지냈다. 이모의 권유로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시작했고, 손님으로 온 한 남자를 알게 되어, 그 남자와 연애를 하기 시작 되었다. 그 남자도 유부남이었다.

어느 날, 피고인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그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 서슴없이 찾아가기도 했다. 남자의 부인에게도 거래처 사람이라며 인사를 했다. 잦은 돌발 행동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와해된다. 남자는 피고인과 헤어지기로 하고 주고받은 선물을 반환하고 관계를 정리해 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남자의 부인이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먼저 남편을 찾았다. 남편에게서 혐의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 남자의 휴대폰에 단일 전화번호로 수 차례 걸려온 흔적을 확인했다. 피고인이었다. 그녀는 당일 미국으로 출국을 했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피고인의 이모를 만났다. 그녀는 살인 사건이 나던 날 점심에 피고인이 자신을 찾아와 ‘나, 어떤 여자랑 싸웠는데 그 여자가 크게 다쳤는지 몰라’하며, YTN을 보더라고 증언했다. 사람이 죽은 사건이 있나, 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는 것. 일 년 후에야 여자를 송환해서 재판을 하게 되었다. 이모가 나와서 법정에서 증언을 하게 된다. 현장에서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피고인이 무죄를 받을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모의재판이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저는 배심원들에게 ‘없는 증거를 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처참한 시체에 주목했죠. 아주머니가 피해자를 살해했다면 피고인이 온몸의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식당에 온전히 올 수 있었을까, 갈아입을 옷을 들고 갔겠는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겠는가를 집중적으로 배심원들에게 언급했습니다. 모의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건에서는 유죄였습니다.”

“우리가 과연 정확하게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그는 계속해서 진실의 이면과 편견의 덫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올 수 있고, 자유롭게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며, “터무니없는 생각을 듣고도 왜 터무니없는 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필요하지 않는가” 물으며, 강연을 마쳤다. 이제 독자들이 질문에 그가 대답할 차례.



거북이 두 마리, 도마뱀 네 마리를 키우신다고 하는데,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가요.

제가 거북이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큰 아이가 수의학과를 가겠다고 해서, 아이가 키우는 겁니다. 아이가 화를 내더라고요. 아버지가 키우는 것도 아닌데 저자 소개란에 마치 키우고 있는 것 마냥 썼다면서(청중 웃음). 거북이가 굉장히 큽니다. 냄새도 엄청나요. 자주 놀랍니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이 거북이 언제 죽냐’ 물었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말하더군요. ‘아빠보다 오래 살아요.’ (청중 웃음)

‘자식을 금치산자로 만드는 사회’라는 저자의 말에 무척 공감을 합니다. 제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인데 벌써 반항을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죽어도 못 쓸 책이 있다면, 그 책의 제목은 이럴 겁니다. ‘우리아이 이렇게 키웠어요’(청중 웃음). 저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둘 있습니다. 큰 애는 저보다 크고, 조금 전에 말했던 동물을 키우는 아이입니다. 아무리 어린 애도 말로 하면 알아듣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훈육이 된다, 라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둘째를 키우면서 절대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청중 웃음). 이런 일화가 있죠. 얼마 남지 않은 치약을 버리는 아들과 아무 말 하지 않고 그걸 계속 쓰레기통에서 꺼내 짜서 쓰는 아버지. 꾸짖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즐겁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이의 몫이니까요.


그동안 쓰신 글이나 이 책을 보면, 영화나 문학작품의 사례가 적재적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안에 이 작품,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 생각을 평소에 하는지요. 글로 쓸 때 어떻게 가지고 올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신 분 중에는 기록을 많이 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한동안 글을 실었던 시사주간지는 토요일 아침에 잡지가 나오기 때문에 목요일 오전까지 써야 했습니다. 삼 주 마다 한 번씩 연재하는 글이었지만 그 삼주가 금방 돌아왔습니다. 수요일 점심 때 까지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그 이후에 평소에 생각했던 주제와 관련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랐어요(웃음). 나중에 써먹어야겠다고 해놓고, 기억해두는 것도 간혹 있습니다. 미국드라마「웨스트 윙」에 나오는 링컨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그런 경우였어요. 링컨을 살해한 이의 다리를 치료한 의사와 그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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