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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먹는 날들

애꿎은 포테이토칩을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오늘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부디 누군가의 믿음이 그들의 절대자를 배반하는 일이 없기를, 후대에 와서 우울한 코미디로 기록되지 않기를."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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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그들 중에는 감자를 두고, ‘태초의 두 사람이 먹은 금단의 나무 열매’다. 따라서 이것을 먹은 자는 그 누구든 신을 저버리고 성서를 모독하여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자도 있었다. 대개 러시아 북부에서는 무가 전통적 주요 작물이며 거의 18세기가 지나도록 감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없었다.

-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중 『빵과 소금』 재인용

 

17세기 말 러시아에서는 기근을 막기 위해 황제가 각 지방에 감자를 재배하라고 칙령을 내릴 정도로 감자 보급에 열심이었지만, 사람들은 굶어 죽을지언정 무섭게 생긴 뿌리식물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구교도들은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난 원인이 된 금단의 열매는 사실 감자였다며 감자를 '악마의 열매'라고 불렀다. 악마의 열매를 먹으라는 황제는 악의 축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감자를 먹으라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감자의 반란'이라 불리는 폭동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맥도날드에서 감튀를 먹는 시대의 사람들이 들으면 그저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는 서로를 죽고 죽이는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최근 모든 일이 지지부진하거나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방은 더러웠고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으며 뱃살이 늘었다. 마음을 좋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겠다고 게이 데이팅 앱을 깔고 군인을 유인해 정보를 캐낸 다음 표적 수사로 구속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표적 수사를 지시했을 거라는 정황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현재 육군참모총장은 한국기독교군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집에 들어와 애꿎은 포테이토칩을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마음을 좋게 먹으려고 해도 들리는 소식이 이래서야 뱃살을 빼기는 틀린 것 같다.

 

너희 모임 쪽에 있는 사람들이랑 혹시라도 네가 조사받은 거에 대해서 연락을 하고 그러면 절대 안 된다 (중략) 절대 연락하지 말고 연락했다가 오히려 너한테 우리가 너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너한테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절대 연락하지 말고 그냥 평상시처럼 생활하면 되는 거야
- 육군중앙수사단 수사관 실제 통화 녹취 중

 

'절대'라는 말을 계속 쓰는 수사관의 말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는 죄책감이 없다. 어떻게든 거슬리는 사람들을 감자 뿌리 뽑듯 줄줄이 엮어내겠다는 의지만 강렬하다. 증거 속에서 누군가는 명령했고 수사관은 상부의 명령이라는 면죄부를 가지고 휴대폰 속 정보를 검출하고 동성애 행위를 했다는 자백을 강요한다. 누군가 나를 붙잡아서 '너 한국인이지? 마지막으로 김치 먹은 게 언제야? 치맥을 먹었다고? 누구랑 같이 먹었어? 법률 위반이다!' 하면서 감옥에 보내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농담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17세기 러시아에서 '종교적 지도자'들이 감자를 금단의 열매라고 말한 건 황제령에 저항하기 위해 댄 핑계였을 수도 있다. 동성애가 죄라고 믿는 믿음이 진실한지, 혹은 적절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든 믿음은 나름의 목적과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앞의 문장은 바꿔 말하면 ‘모든 믿음은 정치적이다’.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믿음은 더럽고 문란한 '저 게이들'과 비교해 내 도덕성을 높이고, 누군가에게는 승진을 안겨준다.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여군들도 싫으면 의사표시를 하지 왜 안 하냐"고 말할 때는 적용되지 않는 믿음이다.


내 믿음은 별 거 없다. 어떨 때는 외국인 노동자가, 또는 장애인이, 어느 형태로든 다시 ‘악마의 열매를 먹는 자들’이라는 꼬리표는 나타난다. 나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내 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을 내버려 두면 이제까지 이뤄놓은 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 나빠진다. 정당한 이유 없이 편견과 꼬리표로만 사람을 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언제쯤 공동의 믿음이 되나.


감자가 식재료로 인정받는데 삼백 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이 깜깜하다. 하기야 여성 참정권을 일궈 낸지도 백 년이 될까 말까에 아직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부들거리는 사람이 있으니, 성소수자 인권이 당연해지기까지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동안 대선 후보는 표를 의식해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을 지향하겠다"라든가 "동성애 비판의 자유를 억제하는 법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는 답답함을 속으로 삼키고 또 하나의 포테이토칩 봉지를 뜯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부디 누군가의 믿음이 그들의 절대자를 배반하는 일이 없기를, 후대에 와서 우울한 코미디로 기록되지 않기를." 앉아서 기도만 하면 안 된다는 목사님 말씀도 있었으니 행동도 해야겠다. 군인권센터에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https://socialfunch.org/lgbtarmy)를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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