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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특집] 개그맨 황영진 - 예의 있게 웃기는 법

<월간 채널예스>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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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고 기자인 ‘개기자’ 황영진을 만났다. 이전에는 남을 깎아 내리는 개그를 하던 그는 지금은 누구보다 예의있게 말하고 신사적으로 웃긴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웃음도 말이다. 웃기려는 말보다 먼저 웃는 얼굴이 예의 넘치는 말이 된다. (201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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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유머라도 상처를 주면 안됩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어요.


처음 제안이 왔을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양성평등’에 관한 주제로 강사들을 모았는데 다른 분들이 작가, 국회의원, 교수님들 뭐 이랬죠. 저는 그 정도의 커리어도 안 되고 어차피 잘난 체를 해봤자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자고 생각했죠. 제가 소위 남을 까는 개그를 많이 했거든요. ’사전 MC’라고 하잖아요. 바람잡이를 오래 했는데, 그걸 하면 관객과 소통을 할 때 얼굴이나 외모를 비하하며 웃기곤 했어요. 제가 지금 개그맨 16년차인데 10년 넘게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감추고 성평등을 외치는 것보다, 오픈하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사과하고 시작하자 한거죠.

 

남을 웃기는 말하기에서 외모비하는 흔한 소재죠.


맞아요. 젤 쉬운 개그가 남을 까는 개그고. 가장 먼저 들어오는 얼굴로 그러는 게 제일 쉽거든요. 신인 시절에는 그런 개그가 트렌드이기도 해서 할 수 밖에 없던 면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어요. 강연에서도 그런 개그로 시작을 하니까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야유를 보내더라고요. “제가 이런 개그를 했습니다”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자 그제야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방송에서도 언급은 하셨지만 남을 상처 주는 유머에서 전환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이전엔 뚱뚱한 여자분들을 놀리는 개그를 많이 했거든요. ‘괴물한테 먹히는 스타일이다’ 이러면서 장난을 쳤었죠. 그런데 한 번은 ‘웃?찾?사’가 끝나고 어머님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사인을 요청하셨는데, 딸이 팬인데 황영진씨가 매일 놀리던 뚱뚱한 여자다. ‘지금은 직접 오면 놀림 당할 까봐 못 오고 나중에 살 빠지고 예뻐지면 올 거다’라고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많이 놀랐어요. 남들을 웃기려고 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걸 알았죠. 고민과 방황을 시작했어요. 내가 왜 그랬을까, 당장 방송에 들어갈 수 있는 코너를 만들어도 그걸 안 하게 되고, 1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않았어요.

 

그 결과 만들어진 게 ‘홍하녀’인 거죠?


네. 사실 ‘홍하녀’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있어요. 집주인이 하녀에게 전형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 같은 것을 하죠.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보복과 응징을 당한다는 내용을 추가했어요. 메시지 있는 코너를 처음 했는데, 반응이 웃기다는 것뿐만 아니라 계속 기억에 남는다. 통쾌하다고도 하시더라고요.

 

자격증을 따서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로도 활동 하시잖아요.


제가 신입시절에 선배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던 피해자이기도 해서, 나중에 내가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이 문화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우연하게 한국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추천한 뮤직비디오를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계기가 됐어요. 자격증 시험은 굉장히 어려웠어요. 시험 전날 날새고 공부해서 겨우 턱걸이 점수로 합격을 했어요. 교육을 통해서 저도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고요.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하는 반성도 많이 했어요.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강연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지루할 수 있는 강의라 초반에 웃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도움이 되긴 해요. 레크레이션이나 심리테스트 같은 걸 해서 유도를 하는데, 개그맨이 하니까 웃기는 것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무조건 재밌게 하고 싶진 않아요. 제 목적은 웃음이 아니라 예방이니까요.

 

개그맨은 남을 웃기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있잖아요. 웃기는 말하기에 공식이 있을까요?


공식이라기 보다 트렌드는 있죠. 슬랩스틱이 유행할 때도 있고, 제가 데뷔했을 때처럼 비하개그가유행할 때도 있고 바보 개그 같은 게 먹힐 때도 있고 변해요. 하지만 내가 웃기려고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웃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웃을 거야 하지만 안 웃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에도 개그맨이 웃겨야 한다는 건 숙명이죠. 사람들이 웃는 모습에 개그맨들이 희열을 느끼는 건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하는 거에요.

 

어떤 개그를 하고 싶으세요?


저는 흐름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 ‘미스터 빈’을 보면, 누굴 비하하지 않고 상황 자체가 웃겨요. 찰리 채플린의 개그도 좋아하는데 깃발을 들고 흔들었을 뿐인데 뒤에서 사람들이 따라오고. 그런 상황들이 너무 재미 있어요. 대사가 없어도 상황 하나를 가지고 재미있게 가는 거죠. 요즘은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혼자 나와서 만담 식으로 웃기는 게 많아요. 사연도 그런 식이잖아요. 혼자 나와서 혼자 얘기하는. 그런 개그에 찬성 해요.

 

개그맨을 꿈꾼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부모님이 지방에서 일을 하시느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살았어요. 일종의 유학이었는데,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혼자서 도시락을 싸고 학교 가고 집에 와서 혼자 밥 먹고, 부모님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생활을 했어요. 힘들고 외로웠죠. 그때 유일한 낙이 혼자 밥 먹으면서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거였어요. 개그맨의 말 한 마디에 TV 속 사람들도 웃고 저도 웃으면서 그 시간만큼은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어요. 그러면서 개그맨을 동경하고 꿈꾸고 그랬던 것 같아요. 웃으면 견딜 수 있으니까요. 그건 지금도 그래요.

 

웃음의 힘을 느끼셨네요.


웃음이 정말 필요해요. 일반 성인이 하루에 열 번 정도 웃는데 그 중 7번이 비웃음이래요. 3번은 유쾌한 웃음이고요. 그만큼 안 웃는다는 건데. 늙어가기 때문에 웃음이 그치는 게 아니라, 웃음이 그치니까 늙어가는 거죠. 저는 억지로 웃으려고 노력해요. 개그맨들이 그래서 동안이 많아요. 억지로 웃으니까. 젊게 사시는 분이 많거든요. 저는 억지로라도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웃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기도 해요.


웃음의 효과가 몰핀의 열 배래요. 어떤 사람은 마취를 하지 않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수술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이게 천연 진통제예요. 저 역시 일부러라도 많이 웃으려고 노력을 해요.

 

노력이 필요한가요? 굉장히 밝아 보이는데요.


사람들은 ‘너는 원래 밝잖아’라고 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노력을 하죠. 예를 들어 처음에 들어가는 곳이나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을 만나기 전이면 들어가기 직전에 손을 올려 입꼬리를 올리고 들어가요. 가장 행복한 기억이나 가장 재미있었던 영상 같은 걸 떠올리면서요. 그 상태로 웃으면서 인사를 해요. 습관은 타고난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웃게 하는 말하기에 나만의 비결이 있다면 뭘까요?


웃기려는 사람들은 먼저 많이 웃어줘야 해요. 웃음이 없으면 못 웃겨요. 시작할 때 내가 먼저 웃기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웃음에 반응을 크게 해주는 게 먼저죠. 그러고 나서 제가 유머를 하는 거예요. 또 웬만하면 존칭을 써요. 그러면서 물 한잔 먹는 것도 참 잘 먹는다고 칭찬을 하죠. ‘그러셨어요? 정말 멋져요!’ 저는 존칭과 칭찬을 유머 코드로 활용해요.

 

유머를 말할 때는 표정이나 몸짓도 중요하잖아요. 강연 때 보면 제스처를 크게 하시는 것 같아요.


네 크게 하는 편이에요. 근데 처음부터 그러는 건 아니고요 오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엔 안 웃기려는 것처럼 조신하게 말해요. 제스처가 클 땐 하나밖에 없어요. 리액션! 웃어주면서 너무 ‘재밌다! 최고야!’ 이런 반응만으로도 사람들이 웃어요.

 

남들 앞에서 웃기는 말하기를 하는 직업, 여전히 좋나요?


저는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말을 좋아해요. 어떡하든 웃으려고 노력하죠. 제가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왔을 것 같아요. 멘탈이 약하거든요. 그나마 이 직업 때문에 건강한 것 같아요. 굉장히 놀랍게 생각해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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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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