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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작품이 번역될 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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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내 이름이 외국인들한테는 제일 어렵다. Chang Kang-myoung……. 오 마이 갓. 하이픈 포함해서 16자나 된다. 그리고 이걸 한 번에 읽는 외국인은 국적을 막론하고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힘들어 한다. 흑

이내(일러스트)

지금까지 해외에서 출간된 내 소설은 모두 여섯 권이다. 출간 계약을 하거나 번역을 마친 상태로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품도 몇 권 있다. 단편소설도 몇 편 해외 잡지에 실렸다.

그러면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번역가들과 번역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는데, 이게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국어로 글을 쓸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나의 사고(思考)가 얼마나 한국어라는 틀에 갇혀 있는지를 깨닫는 일화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연작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에 있는 첫 번째 단편 「박쥐 인간」에는 ‘황금 두꺼비’라는 존재가 나온다. 환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듯한 상태의 주인공에게 나타나서 인간의 언어로 묘한 설명을 해주는 수수께끼의 동물이다. 그런데 번역가로부터 난데없는 질문을 받았다.

 “이 두꺼비는 수컷인가요, 암컷인가요?”

“넹? 그…… 그건 저도 잘 모르는데…… 어, 그냥 수컷으로 하시죠.”

같은 단편에는 어느 여성이 핸드백을 들고 택시에 타는 장면도 나온다. 그 핸드백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해당 언어로는 크기에 따라 여성용 가방을 부르는 단어가 달랐다. 이때도 질문을 받고서야 문제의 핸드백 크기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고, 즉석에서 그 크기를 정했다.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나마 두꺼비의 성별과 핸드백의 크기는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게 제목과 관련이 되면 매우 곤란해진다. 금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단편 「당신은 뜨거운 별에」를 영어로 옮기던 번역가와 나는 함께 한참 골치를 썩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한국어 ‘별’을 ‘빛을 관측할 수 있는 천체 가운데 성운처럼 퍼지는 모양을 가진 천체를 제외한 모든 천체’라고 풀이한다. 즉 스스로 핵융합을 하는 태양 같은 항성과 그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 지구로 떨어지는 작은 운석인 유성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금성을 ‘뜨거운 별’이라고 불러도 된다.

그런데 영어로는 항성은 ‘스타’, 행성은 ‘플래닛’이라고 꽤 엄격하게 구분한다. 별똥별을 ‘슈팅 스타’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고 한다. 그러니 ‘당신은 뜨거운 별에’를 영어로 직역하면 영미권의 잠재 독자들은 한국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태양 표면처럼 엄청난 빛과 열이 끓어오르는. 영어에서도 금성을 ‘모닝 스타’라고 부르는 표현은 있다. 그러나 행성은 항성들에 비하면 온도가 턱없이 낮다. 그러니 금성은 ‘뜨거운 별’은 될 수 있어도 ‘뜨거운 스타’는 될 수 없다.

실제로 책 제목이 바뀌어 출간되기도 했다. 『표백』의 프랑스어판 제목은 ‘B 세대’이고, 『한국이 싫어서』 중국어판 제목은 ‘한국을 걸어 나가다’이다. ‘B 세대’라는 프랑스어판 제목을 듣고 나는 속으로 히죽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출판사도 ‘표백’이라는 제목이 어렵다며 다른 제목을 열심히 궁리했었고, 마지막까지 검토했던 후보가 ‘표백 세대’였다. 그런데 ‘표백 세제’로 들릴 것 같다고 채택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표백’이라는 한 단어 제목이 좋은데, 끝내 프랑스에서 ‘세대’를 만났구나.

한편 『한국이 싫어서』 중국어판 제목이 그리 된 것은 출판사가 중국 정부의 검열을 신경 쓴 결과라고 전해 들었다. ‘중국이 싫어서’도 아니고 ‘한국이 싫어서’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북한 붕괴 상황을 가정한 내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중국에서 출간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한 걸까?

사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을 진짜 우려한 것은 일본어판이었다. 혐한들이 제목만 듣고 좋아하면 어떻게 하나, 혹시 혐한 서적 코너에 꽂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뜻밖에도 이 작품은 일본에서 페미니즘 소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인공 계나가 착한 딸, 얌전한 며느리, 사랑 받는 아내의 역할을 거부하는 대목을 각각 공들여 넣은 나로서는 그런 반응이 무척 반가웠다. 한국에서는 헬조선 현상 덕에 주목을 받았지만 그 외의 측면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는 아쉬움을 남몰래 품고 있었다. 문어체를 전혀 쓰지 않은 서술이 다른 나라 언어에서는 어떻게 소화되었을지도 궁금하다.

해프닝도 있었다. 단편 「알바생 자르기」에는 알바생이 다니는 회사 사장이 직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해 회식을 자주 가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대목을 두고 독일어 번역가와 일본어 번역가가 똑같은 질문을 해 왔다. 사장이 직원들의 몸을 만졌느냐는 것이다. ‘스킨십’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피부의 상호접촉에 의한 애정의 교류’라고, ‘살갗 닿기’나 ‘피부 접촉’으로 순화하라고 나와 있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같은 단편에는 별 설명 없이 ‘소폭’이라는 단어도 나온다. 이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두 가지 뜻이 나오는데, ‘환율이 소폭 올랐다’고 할 때 쓰는 그 ‘소폭(小幅)’과, 작은 폭포라는 뜻의 소폭(小瀑)이라는 단어다. 나는 그 두 가지 뜻이 아니라,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의 준말인 소폭(燒燒)을 쓴 거다. 한국인 독자라면 다들 알아들을 테지만 외국인은 사전을 봐도 헷갈릴 것 같다.

언어를 막론하고 모든 번역가들이 어려워하는 글도 있었다. 중편소설인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인데, 이 소설에는 주요 등장인물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작품 안에서는 남자, 여자, 아주머니라고만 불린다. 특히 그 ‘아주머니’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느냐를 두고 번역가들이 힘들어 했다.

아예 이름을 그냥 붙여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있었는데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을 이름 없는 사람들,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로 정한 의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이 소설에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은 게 확실한 캐릭터는 단역이라도 이름이 나온다.


이내(일러스트)

아주머니를 영어로는 어떻게 옮겨야 할까? 혈연관계가 아니니 언트(aunt)도 아니고, 레이디도 이상하고……. 정슬인 번역가의 아이디어가 탁월했다. 아주머니를 ‘어머니(mother)’로 번역한 것이다. 정 번역가는 이 번역으로 GKL 번역문학상을 받았다.

이리하여 직역이냐, 의역이냐 논쟁 근처까지 왔다. 내 단편 「되살아나는 섬」에는 긴몰개, 새홀리기, 나그네새 같은 명사들이 나온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사전에 나오지만, 사실 상당수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을 단어다. 그 알듯 모를 듯한 느낌을 노렸다. 이걸 영어로는 어떻게 옮겨야 할까? ‘Ginmolgae’? 학술명 같은 ‘Korean slender gudgeon’? 아니면 뜻을 너무 알기 쉬워 감흥이 사라지는 신조어 ‘Smallfish’? 영어 번역자들이 궁금해 했는데 나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단편은 한강의 밤섬이 중요한 배경인데, 외국인도 아닌 부산 독자 두 사람이 밤섬을 몰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외국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표백』 프랑스어판을 읽은 프랑스 독자들은 고시원이 뭔지 이해했을까? 그들의 이해도를 상상할 수 없기에, 소설을 쓸 때는 그냥 외국 독자는 생각지 않고 쓰기로 했다. 긴몰개는 긴몰개고, 고시원은 고시원이고.

다만 어느 에이전트의 조언은 의식한다. 대다수 외국 독자들에게는 한국 사람의 이름이 대단히 어려우니, 인물들의 이름을 쉽게 읽고 발음할 수 있게 지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이름이 외국인들한테는 제일 어렵다. Chang Kang-myoung……. 오 마이 갓. 하이픈 포함해서 16자나 된다. 그리고 이걸 한 번에 읽는 외국인은 국적을 막론하고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힘들어 한다. 흑.



한국이 싫어서 (워터프루프북)
한국이 싫어서 (워터프루프북)
장강명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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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강명(소설가)

기자 출신 소설가. 『한국이 싫어서』,『산 자들』, 『책 한번 써봅시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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