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

예스24

대중문화 곽민지의 혼자 쓰는..

크게 작게

가족이 없으면 외롭지 않나요?

곽민지의 혼자 쓰는 삶 3화

서로가 서로의 집은 아니지만 훌륭한 내 본진에서 지칠 때 언제든 떠날 호캉스 행선지가 돼주는 관계들에 감사한다. (2020. 06. 23)

곽민지 사진응켱(일러스트)

일러스트_응켱

일적으로 힘든 한 주를 보냈다. 일하면서 살다 보면 주기적으로 겪는 그런 일이었지만 유독 힘들었다. 집에 들어오면 누구와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고, 그럼에도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게 힘들기도 했다. 피로에 쩔어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일 필요가 없어 내 마음껏 힘들어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갖는 위안이기도 했다.

끝날 줄 모르는 일은 주말이 되어도 그대로였다. 금요일이면 한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현 상태를 요약해 이야기했다. 어차피 할 일이 있었으므로, 서울역으로 가서 가장 빠른 부산행 티켓을 끊었다. 그런 식으로, 급하게 친구들이 부산에 모였다.

모인 친구는 넷이었다. 둘은 프리랜서, 둘은 직장인이었다. 둘은 매운 걸 좋아하고, 둘은 싫어하고, 둘은 걷기를 좋아하고, 둘은 그렇지 않고… 여기서 말하는 ‘둘’은 계속해서 짝궁이 바뀌었다. 사람이 구에 가까운 다면체라면, 점점 아는 면이 넓어진다는 점은 오랜 인연이 주는 선물이다. 나의 삶과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친구들은, 어차피 일을 할 거라면 너희들에게 둘러싸여 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KTX에서, 친구의 차에서, 친구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그들을 내 작업실 소품처럼 채워두고 일을 했다.

토요일 저녁, 할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우리는 황령산에 올랐다. 가족 등산객 사이에 숨어들어 산 정상에 올라서 우리가 좋아하던 노래를 함께 듣고 따라불렀다. 1명의 부산 친구와 3명의 외지인이 부산 사람들의 일상적 공간에 있으니 우리도 가족인 것 같았다. 살다가 힘든 순간 곁에 있어주고, 부대끼며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쫄쫄이 하나 입고 동네 뒷산에 올라서 노래나 부를 수 있는 것. 사회는 이런 화목하고 다정한 이들의 조합을 가족이라 가르치지 않았던가. 혈연으로 묶여 있어도 이런 구도가 아닌 가족들이 많겠지만, 어쨌거나 그날 황령산에 있었던 나와 친구들만큼은 확실히 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비혼자로서, ‘그래도 늙어가는데 가족은 있어야 하지 않아?’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일단 나는 다행이 내 혈족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명백히 가족이 있다. 그런데도 ‘늙어가는 데 필요한 가족’이 없다고 하는 건 아마 성인이 되어서 누군가를 선택해 제도로 묶이고 출산을 하지 않는다면 고립된 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위기의 순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형태로 있어 주는 친구들을 가지게 된 건 내가 홀로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홀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하면 움직이고, 잠자리를 바꾸고, 필요할 때 함께하고, 버거울 땐 거리를 두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면서 지낸다. 서로를 겁주거나 미치게 하지 않으면서, 영원한 이별도 매일의 밀착도 없는 관계 안에서 안전감을 느끼며 산다. 우리는 기쁘게 결혼을 택한 기혼자들과는 성향이 다르므로.

친구들과 누워서 이야기를 했다. 4인 가족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커다란 평수의 아파트들은 분명 새로운 주인을 필요로 할 거라고. 20대에 만나 30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러고 살 텐데, 비혼자가 늘어가면 분명 우리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될지 모른다고. 60평대 아파트에서 각자의 방을 가지고, 공동회비로 세탁이나 청소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같이 늙어가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우리가 비혼자이면서도 유일하고 걱정하는 그것, ‘욕실에서 미끄러지면 누가 119에 신고해주냐’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모든 기혼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유사시를 위해 일상을 희생해 결혼한 사람들도 세상에 존재한다. 늙어서 외로울까 봐, 욕실 바닥에 미끄러질 때 신고해 줄 사람 없을까 봐… 노후를 위해 월급 절반 이상을 저축하라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고 흘리면서, 노후 유사시를 위해 매일을 걸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는데. 당장 오늘 나를 채우는 것은 개그 코드, 먹성, 대화 성향, 운동 여부 등 자잘한 일상이고 그것이 내일을, 또 내 삶 전체를 견인하는데 말이다. 그 각각의 필요를 채울 사람이 여러 명이면 또 어떻고, 만약 단 한 명이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일인가.

내 업무 피난처가 돼주는 사람들, 제철 해산물 메이트들, 상사 욕 동호회, 운동 인증 단톡방 친구들… 나를 쪼개어 지탱해주는 개미 떼 같은 배우자들에게 언제나 고맙다. 동시에 내가 지탱하는 당신의 조각을 인지해주고 각자의 삶에서 나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친구들에게도 항상 고맙다. 서로가 서로의 집은 아니지만 훌륭한 내 본진에서 지칠 때 언제든 떠날 호캉스 행선지가 돼주는 관계들에 감사한다. 두려움 없이 한 사람과 밀착하지 않는 삶을 택할 수 있었던 건 다 너희 덕분이다. 가족끼리 이런 말 낯간지럽지만 말이다.



*  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추천기사


코너 전체 보기

위로

Copyright ⓒ 2020 YES24.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