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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표지 정하기

<월간 채널예스> 2020년 10월호

전업 작가로 살아온 지도 7년이 넘었고, 그간 낸 단독 단행본도 10권이 넘으니까, 그렇게 책 표지를 정하는 상황이 내게 낯설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2020.10.05)

장강명(소설가) 사진이내(일러스트)

일러스트_이내


지난 9월에 펴낸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겨우 책 표지를 정했다. 어느 정도로까지 마지막 순간이었느냐 하면, 홍보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무실에서, 홍보 동영상을 촬영하기 직전에 결정했다. 영상을 촬영하기 10분 전까지 내 등 뒤에 놓을 책 표지 일러스트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표지 시안은 여섯 장 있었다. 그 후보들을 테이블 위에 놓고 나와 편집자 두 사람, 마케터, 영상을 촬영하는 PD까지 다섯 사람이 둘러앉았다. 다들 입을 열기 조심스러워하는, 제법 심각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내 눈치를 살피는 게 분명했다. ‘어떤 시안이 좋다’고 자기 의견을 냈다가 그 말을 의식한 내가 자유롭게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해주셨던 것 같다.

조언을 들려달라고 요청하자 “1번 시안은 이런 장단점이 있고, 2번 시안은 이런 장단점이 있다”는 식의 말들이 오갔다. 그런 얘기를 듣는 동안 결정은 내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디자인 감각과 색채 감각 양쪽 모두 부족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외출하고 돌아온 나를 보고 아내가 “옷을 그렇게 입고 나갔단 말이야?” 하며 종종 놀란다(딴에는 고심해서 차려입고 나갈수록 그렇다. 행사에 갈 때에는 꼭 아내가 의상을 골라준다).

전업 작가로 살아온 지도 7년이 넘었고, 그간 낸 단독 단행본도 10권이 넘으니까, 그렇게 책 표지를 정하는 상황이 내게 낯설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최후의 순간에, 그렇게 여러 시안을 놓고, 전적으로 내 의사에 따라 표지를 정한 적은 처음이었다. 출판사는 이 ‘최후의 회의’ 전에 다른 시안 8장을 놓고 인터넷 공유 문서를 만들어 편집부, 영업부, 마케팅부의 의견도 취합했고 거기에도 나를 참석하게 해주었다. 그 역시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보통 원고 교정 작업을 마치고 표지를 정하게 된다. 몇몇 편집자는 아예 다른 시안 없이 “이걸로 결정하려 한다”며 디자인을 보내줬다. 그렇게 표지를 정한 책이 세 편이다. 결정된 표지와 탈락한 시안을 함께 알려준 이도 있었다. 상당수 편집자들은 표지 시안을 메일로 보내며 “편집부에서는 A안이 제일 반응이 좋아요” 같은 의견을 전해준다. 나는 몇 년 전까지는 대체로 편집부에서 정해주는 대로 따라갔는데 요즘은 소심하게 의견을 낸다. “제목 크기를 조금만 더 키워주세요” 같은.

편집자 출신이거나 출판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저자들이 이런 때 부럽다. 일단 어떤 표지가 좋은 표지인지 잘 모르겠다. 디자인 감각도 색채 감각도 모자란 40대 아저씨인 내 눈에 좋아 보이는 표지와, 서점에서 눈에 잘 띄고 독자들의 호기심도 자극하는 표지는 분명히 다를 텐데.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전에 나는 표지에 대해 목소리 내기를 가급적 꺼렸다. 까다로운 작가, ‘진상 저자’가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눈에 마음에 들지 않은 표지가 시간이 지난다고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 싶고, 나중에는 화가 나기까지 하는 표지도 있다. 심해지면 그 책 자체가 싫어진다. 내가 별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 중에 “이 책 표지 마음에 안 들어요” 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작가도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저자인 나로서는 내 눈에 좋아 보이는 표지를 고집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책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편집자와 디자이너, 마케터와 영업 담당자의 노력이 거기에 한데 있지 않은가? 출판사가 출간 비용을 댔지 않았는가. 그 책을 잘 팔아 벌은 수입을 우리가 나눠 가져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표지를 정하는 권리, 표지에 대한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 출판사 대표?

이 칼럼을 쓰면서 친한 편집자들에게 물어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편집자들도 견해가 다양한 것 같고, 출판사마다 태도도 다른 것 같다. 어떤 편집자는 “책 표지는 작가의 얼굴이니 작가가 정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다. 어떤 출판사는 작가 의견보다 마케팅 방향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기성세대 편집자들은 젊은 편집자들보다 에디터십을 고집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요령 좋은 편집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시안을 몇 장 먼저 고른 다음 그 중에서 작가가 선택하게 한단다.



일러스트_이내


작가도 천차만별이다. 표지 회의에 참석해서 자기 취향을 뚜렷하게 밝히는 작가도 있고, 참고 이미지를 수십 장 들고 와서 “이런 느낌으로 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있다.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이건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하면서 우물거리는 것보다 그렇게 정확하게 요구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례 중에는 아예 출판사에 자신이 아는 디자이너를 소개하고 “이 사람과 작업해 달라”고 말한 작가도 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대단히 좋았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최악의 작가는 막판에 가서 “다 아니에요” 하면서 시안들을 모두 폐기하게 만드는 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어찌나 찔리던지. 왜냐하면 나도 그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 시안들이 심하긴 했어……. 아내도 “이것들은 진짜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었다. 다음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책의 정체성, 내가 바라는 표지 디자인 분위기를 초기부터 편집부와 공유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다시 『책, 이게 뭐라고』 표지 디자인을 정하는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후보들이 다 마음에 들었다. 나, 편집자, 마케터, PD가 모두 좋아한 시안이 두 개 있었고, 솔직히 둘 중 어느 게 뽑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표를 했는데 놀랍게도 만장일치로 한 시안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게 현재의 표지다. 내 캐리커처가 한 손을 올리고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그걸 흰 바탕에 선명한 청색으로 그린.

요즘 표지 트렌드 하고는 좀 안 맞는다. 아, 요즘 표지 트렌드는 고개를 숙이거나 뒤를 보고 있거나 해서 얼굴 정면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 모습, 아니면 파스텔톤으로 그린 하늘 풍경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이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이 캐리커처에는 내 의견도 좀 반영돼 있다. 후보 상태일 때 캐리커처를 보고 내가 편집자를 통해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제 눈을 더 처지게 그려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 이렇게 똘똘하게 생기질 않았거든요”라고. 결과물을 보고 다들 나에게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이겠어요” 하고 말을 건넨다. 대단한 칭찬이다. 일러스트가 실물보다 훨씬 더 잘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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