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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데모, 강의, 소설, 공부! 그리고 마감까지 (G. 정보라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29회) 『아무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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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할 때는 계속 집에 있으니까 글쓰다가 잘 안되면 빨래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글이 안 나오면 집이 점점 깨끗해지는 효과는 있어요. (2023.02.23)


나는 남성 주인공이 체념하고 순응하는 태도나, 그의 아내인 여성 주인공이 나무가 되는 처벌을 받아 길거리에 심어져서 움직일 수 없게 된 채 성범죄의 표적이 되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전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비인간적인 처벌을 받고 길거리에 고정된 채 범죄에 노출된다면 나는 밤낮으로 곁에서 그 사람을 지키고 온 힘을 다해 세상에 저항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에게 중요한 사람이 나무로 변하고 주인공이 복수하는 이야기를 썼다. 어쩌다 보니까 나는 본의 아니게 복수 전문 작가가 된 것 같은데 많은 경우 화가 나서 글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인간은 역동적인 존재이고 역동적인 존재여야만 한다.

정보라 작가가 쓴 『아무도 모를 것이다』에서 작가의 말을 읽었습니다. 이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정보라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에 어떤 식으로든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입니다. 화가 날 때 소설을 쓰는 작가, 뭔가 불살라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는 작가, 그리고 『저주토끼』를 쓴 작가이기도 하죠. 정보라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황정은 : 반갑습니다. 작가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정보라 : 안녕하세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정보라입니다.

황정은 : 마감을 앞두고 계시다고요. 

정보라 : 네, 호러 단편을 써야 돼요.

황정은 : 이미 많이 쓰셨다고...

정보라 : 그런데 아마 3월까지는 계속, 계속 써야 될 것 같아요.(웃음)

황정은 : 책이 곧 나오겠군요?

정보라 : 그럴까요...? 언제 나오죠...?(웃음)

황정은 : (웃음) 작년에 많이 바쁘셨죠?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인터뷰도 많이 하시고, 그리고 원고 약속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올해는 어떤가요?

정보라 : 그때 약속했던 원고의 마감이 지금 전부 다 닥쳐오고 있습니다.(웃음)

황정은 : (웃음) 그렇군요. 요즘에 원고 마감 말고 또 뭘 하며 지내세요?

정보라 : 원고 마감 말고 제가 뭘 하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 집회에 갔었고요. 서울시청 앞에서 분향소 만들어야 되는데 그걸 하지 말라는 분들이 몰려오셔가지고, 천막 기둥 붙잡고 있었고요. 그리고 집에 가서 마감을 열심히 했고요. 그렇습니다. 

황정은 : 저도 그날 거기 있었습니다.

정보라 : 반갑습니다.

황정은 : 재작년에 연세대학교 강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셨는데요. 강의, 공부, 집필을 병행하던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정보라 : 강의를 할 때는 시간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서, 무슨 요일에 뭘 하고 몇 월부터 몇 월까지는 뭘 하고 그러면 계약한 작품들은 언제 쓰고 이런 걸 계획을 할 수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제가 굉장히 서투른 것 같다는 기분도 들고요. 어쨌든 원고를 할 때는 계속 집에 있으니까 글쓰다가 잘 안되면 빨래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글이 안 나오면 집이 점점 깨끗해지는 효과는 있어요.(웃음)

황정은 : (웃음) 네. 그렇다는 얘기는 바로 어제 마감을 하셨으니까 지금 집의 상태가...

정보라 : 굉장히 반짝반짝하죠.(웃음)

황정은 : 저희가 이렇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게 오늘이 처음이기는 한데, 저는 작가님을 전에 뵌 적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여하는 농성장이나 행사장에서 상당히 자주 뵀어요. 멀리서 봤을 때는 뭔가 되게 화려하고, 그리고 매우 바쁘고 대단히 강인해 보여서 눈에 확 띄었어요. 그래서 되게 인상이 깊게 남아있는데, 알고 보니까 브루노 슐츠하고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소설을 번역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번역하는 정보라를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데모하는 정보라 작가를 만난 거죠. 작가님을 인터뷰한 글들을 읽어보면 '데모하는 정보라'와 '소설 쓰는 정보라' 사이의 어떤 관계를 묻는 질문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번역하고 데모하고 소설 쓰는 정보라, 이 셋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이 있는지 그게 좀 궁금하기도 했어요.

정보라 : 번역을 하면 소설 쓰는 법을 굉장히 많이 배워요. 제가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국문과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문예 창작 수업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서, 제가 아는 소설 쓰는 법은 다 번역하면서 배웠거든요. 나도 이 작가처럼 쓰고 싶다, 나도 이런 상상력을 갖고 싶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굉장히 많이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고요. 데모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주로 20세기 작가들을 많이 번역을 했는데요. 얼마 전에 나온 고리키의 『어머니』는, 고리키도 한때는 데모꾼이었고요. 나중에 권력자가 되고 나서 완전히 변절했지만. 진짜 그러고 살지 말아야지. (웃음) 

그런데 플라토노프는 체제에 내놓고 저항하지는 않았는데 본질적으로 소련 찬양하는, 틀로 찍어낸 것 같은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너무 뛰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다 어딘가 좀 반골이고, 원했든 원하지 않든, 다 어딘가 약간 규격화된 사회에서 벗어난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을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황정은 : 많이 배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작가에게서 많이 배웠는지 궁금해요. 방금 말씀하신 작가들 말고도.

정보라 : 미하일 불가코프 작품이 진짜 재밌는데요.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정말 방대하거든요. 그 방대한 이야기가 일관성 있게 유지가 됐다가 마지막에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완벽하게 결말이 나요. 그건 제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작품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이런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황정은 : 데모하는 정보라와 소설 쓰는 정보라 사이는 어떻습니까? 자주 넘나들 것 같아요.

정보라 : 제가 강의를 할 때는 어떻게든 둘을 분리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근데 데모 현장에 있다 보면 굉장히 강렬한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잖아요. 마음에 깊이 남는 이야기들도 많이 듣게 되고, 그런 분들을 많이 보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면 저런 분들에 대한 이야기나 내가 겪은 이 강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깔끔하게 분리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이미 버린 몸이기 때문에 굳이 분리해봤자... (웃음) 그래서 그냥 막 살고 있습니다.(웃음)

황정은 : 저희가 대화 나눴다시피 정보라 작가님은 데모도 하시고, 번역도 하시고, SF도 쓰고 환상 문학도 쓰는 작가인데요. 오늘은 작가님의 작업 중에서 무서운 이야기, 호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퍼플레인에서 지난달에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셨어요. 열 개의 단편이 모였습니다. 책을 보니까 뒤에 '초기 걸작선'이란 이름으로 소개가 되어 있기도 하더라고요.

정보라 : 걸작 아니에요... (웃음)

황정은 : (웃음) 왠지 그렇게 말씀하기도 하실 것 같았는데. 그렇지만 이 소설들이 최근에 쓴 소설들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전에, 『저주토끼』에 실린 소설들보다 먼저 쓴 소설들인 거죠?

정보라 : 비슷한 시기에 썼던 작품들이에요.

황정은 : 다시 봤을 때 어떠셨어요? 교정지 다시 받으셨을 것 아닙니까. 

정보라 : 다시 보고 싶지 않았죠.(웃음) 너무 창피하니까 '빨리 보고 보내버리자' 하는 게 절반이었고요. '내가 이런 걸 썼나?'가 10% 정도였고 '이거 뭐지? 왜 이런 낯선 작품이?' 그런 게 10%였고요. 그리고 약 40% 정도는 '내가 썼지만 재밌다'가 좀 있었어요.(웃음)

황정은 : 그거 읽으면서, 이미 지나온 세계 아닙니까, 이미 지나왔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여전하지는 않던가요?

정보라 : 쓴 사람이 일단 여전하고요. 근데 변한 것도 많이 있고요. 제목 『아무도 모를 것이다』가 책에 있는 단편 중에 나오는 노래 가사를 가지고 제목으로 썼는데요. 그 이야기는 러시아가 배경이거든요. 근데 제가 그걸 쓸 때까지만 해도 러시아를 배경으로 러시아 사람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거에 대해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고요.

황정은 : 전쟁 때문에요?

정보라 : 네, 조금 있으면 (발발한 지) 1년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가 변했고요. 

황정은 : 외부적인 것 말고, 이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 벌써 이랬구나' 싶은 면은 없었나요?

정보라 : 예전에 글을 더 잘 썼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왜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정보라 : 그때는, 특히 데모하기 전에 쓴 글들을 보면 약간 불확실한 분노들이 있거든요. 불확실한 분노와 두려움들이 있는데,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 불확실함이 좀 더 환상적이고 호러일 경우에는 좀 더 무서운 측면들이 있어요. 불확실하니까요. 모르는 게 더 무섭잖아요. 제가 불안하고 무서우니까 글도 더 불안하고 더 무서워서, 글로 읽기에는 예전이 더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정보라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대학에서 러시아와 SF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일대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F와 환상 문학을 쓰기도 하고 번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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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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