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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김남희의 서재 여행작가
“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일곱 살 때에요. 그 당시 저는 대구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집의 다락방에 아빠가 사다 놓은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이 있었어요. 30권짜리였다고 생각되는데, 한글을 막 배운 때여서 책이 읽고 싶었나 봐요. 다락방에 몰래 올라가 그 책들을 뒤적이던 기억이 남아있어요. '이 책은 아빠가 초등학생이 되면 읽으라고 사놓은 책이라서 지금 읽으면 안 되는 거야'이런 죄책감을 느끼면서요(웃음). 어두침침한 다락방에 숨어서 몰래 책을 훔쳐보던 그 시간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안경을 끼게 된 거라고 그 후 늘 주장해왔어요. 그 책들의 내용은 물론 전혀 기억이 나질 않죠.”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인어공주였어요. 아마도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인어공주를 읽고 난 후 한 일주일 정도는 자나 깨나 인어공주를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 할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의 운명이 너무 슬퍼서 머릿속에서 매일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바꿔가면서요. 중고등학교 때는 별로 책을 안 읽었어요. 고 1 때 학교 문예부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나왔어요. 선배들이 권위적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반에서 책 좀 읽는 아이들이 『사람의 아들』 이런 책을 들고 다닐 때 전 국어책 안에 하이틴 로맨스를 펴놓고 읽는 수준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되고 난 후였고, 그 당시 유행했던 사회과학 서적들이 위주였어요. 많은 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대학시절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 『전태일 평전』이었어요. 그 책을 읽고 부끄러움과 충격으로 한동안 몹시 어지러웠어요. 지금도 인생을 흔든 책을 꼽으라면 꼭 넣게 되는 책이고요.”

“20대 말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30대에는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책들이 특히 좋았어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깨달았죠. 나는 절대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것, 아마도 평생 이런 영혼을 부러워하며 살아가겠구나, 라는 것들을요. 『생의 한가운데』의 여주인공 니나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었고요. 그 후 남들과 다른 나만의 삶을 꿈 꾸게 되면서는 헬렌과 스콧의 삶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은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이야기에요. 세상에 나를 맞춰가며 살지 말고, 내 삶이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 그 자체가 되게끔 살아가자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어준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들이 우리 세대가 만들어놓은 이 가혹한 시스템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와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에요.”




서재, 앉아서 유목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

최근 쓰지 신이치 교수와 함께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을 펴낸 여행수필가 김남희.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게 직업인 그녀는 여행지를 선택하기까지 그 지역에 대한 책들을 꼼꼼히 살펴본다. 가장 최근에는 남미의 파타고니아로 떠나기 전에 루이스 세풀베다의 『지구 끝의 사람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을 읽었는데, 이 책들 덕분에 파타고니아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더 키울 수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알래스카도 일본인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의 책들을 읽고 마음 속의 여행지로 품게 됐다고. 김남희는 “여행 가기 전의 준비를 그 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점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니까 소설 같은 경우에는 '고전'이라고 불릴만한지를 좀 따지게 되는 편이고요. 다른 책들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책들 중에서 관점이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편이에요. 한마디로 편향적인 독서죠. 최근에는 환경과 생태, 건축이나 나무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이 가요. 특히 제가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어서 농사나 음식에 관한 책도 찾아 읽게 되고요. 『개발의 역설』, 『마음을 품은 집』, 『원자력의 거짓말』, 『도시 농업』, 『에코의 함정』과 같은 책들이 제 리스트에 담겨 있는 책들이죠.”

여행가 김남희에게 서재란, ‘앉아서 유목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이름을 붙인다면, ‘세계를 향해 열린 문’이 알맞겠다. 김남희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에 대한 정의는 신영복 교수의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김남희는 “책이야말로 가장 편하고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생각의 성을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주는 문’”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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