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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김한민의 서재 작가
“유년기는 두 개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어요. ‘그림과 동물’. 틈나면 그림을 그렸고, 동물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좋아했으니까요. 동물 보기, 그리기, 만지기, 찾아가기(가령, 동물원 가기), 직접 키우기(평범한 거북이에서 물뱀까지), 그리고 동물 책을 모으는 것도 좋아했죠. 청년기를 떠올려도 역시 두 단어가 떠올라요. ‘농구와 문학’이죠. 그래서 이 두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를 좋아해요. 틈만 나면 농구를 했고, 농구를 하지 않을 땐 책을 읽었죠. 물론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대학 입시와 무관하게 지낼 순 없었어요. 수능이 끝나던 날, 잔뜩 벼르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펼치면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감격에 책을 끌어 안고 잠든 기억이 나네요.”

“2004년에 첫 책, 그림 소설 『유리피데스에게』을 펴냈는데, 3대 그리스 비극 작가 중 ‘막내’인 유리피데스의 비극을 읽으며 구상한 작품이에요. 꼭 이렇게 직접적으로 소재를 얻진 않더라도, 책은 언제나 내가 작업을 하게 하는 동인이에요. 좋은 책은 언제나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자극해요. 결국 저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요즘은 은둔하며 책을 쓴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요. 그래서 모리스 블랑쇼의 책들을 읽고 있어요. 얼마 전에 베일에 쌓였던 J.D. 샐린저의 삶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는 데 언제 번역이 무척 궁금해요.”

“영화는 유럽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유럽 영화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 화가 날 지경이죠. 지루하다는 건, 정말 명백한 오해에요. 우리가 특정한 쾌락 기준에 익숙해 있을 뿐이죠. <The best of youth> (원제 La meglio gioventu)이라는 이탈리아 작품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어요. 한국에도 개봉했던 루치아노 비스콘티의 <백야>도 놓치지 않길 바라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무엇보다 주연 여배우가 발산하는 고전적 발랄함이 매혹적이에요. 요새 배우들에게선 이런 걸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죠.”



작가 김한민에게 서재는 ‘비 숲(Rainforest)’이다. 그는 오랫동안 동물학자인 형과 같은 방을 썼는데 그 방이 곧 작업실이다. 형이 정글에서 영장류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비 숲으로 떠났을 때, 작업실에서 환송회를 하며 방 이름을 ‘비 숲’이라고 지었고 작은 간판도 달았다. 김한민 작가는 작업실 ‘비 숲’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책도 본다. 그는 책을 살 때, 하나의 기준이 있는데 베스트셀러는 사지 않는다. 단 한 권도 베스트셀러를 사본 적이 없다고. 읽고 싶다면 서점에서 보거나 빌려서 본다. 김한민 작가는 “이미 잘 팔리는 책을 한 권 더 사주느니, 안 팔리는 책의 판매를 한 권이라도 돕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그림 여행을 권함』을 펴낸 작가 김한민은 여행을 떠날 때, 사진기 대신 스케치북을 들고 간다. 여행자로서 지난 10여 년 동안 틈틈이 그려 온 그림들을 소개한 『그림 여행을 권함』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여행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한민 작가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렸을 때는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대개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재미있게 그린다. 그러다 학교에서 ‘예체능’ 수업을 받게 되면서 미술, 음악, 체육 중에 유독 미술과만 점점 멀어지고 그림을 아예 놓아버리게 된다고.

“음악은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노래방에서 잘만 부르고, 체육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씩은 운동을 하지만, 십중팔구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확신하며 미술과 멀어져요. 교육이 그림을 싫어하게 만든 거죠. 그림 그리는 것의 기쁨이 무엇인지, 그걸 왜 놓치면 안 되는지, 그리고 만약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면 그릴 가장 좋은 기회는 왜 여행을 갔을 때인지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사진/김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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