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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고미숙의 서재 평론가
“유년기 땐 영성이 충만했던 것 같아요. 어린애가 웬 영성? 하고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때 사람은 왜 죽을까? 신은 정말로 존재할까? 삶은 왜 이리도 고통스러울까? 등을 고민하느라 불면의 밤을 지샜으니 말이죠. 초등학교 1학년때 순전히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간 것도 그 때문이에요. 짐작건대, 주변에 아프고 가난한 친구들도 많았고 우리 집안도 가난과 불화가 그치지 않아서였을 것 같아요. 그때 읽은 책들은 그림성경책과 만화책이었습니다.”

“청년기는 방황의 연속이었어요.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불의 연대’라 불리는 80년대였지만 그 시절 저는 정처 없이 헤매는 한심한 청춘이었을 뿐이죠. 혁명도, 연애도, 알바도, 도무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러시아문학, 독문학, 영문학 등등 수박 겉핥기 식으로 훑다가 대학 4학년 때 국문과에서 개설한 한국고전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인생행로가 바뀌었어요. 그때 읽은 작품이 춘향전, 홍길동전, 허생전 등이었는데, 소리 내어 읽으니 그렇게 맛깔 날 수가 없더군요. 당시 그 강의를 담당했던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갈 땐 국문과로 전과를 했고, 그렇게 해서 청춘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장년기는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세상에 나온 30대 후반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와 밥과 우정’의 일치를 기획하는 공동체가 내 일상의 거처가 되었어요. 97년 ‘수유연구실’로 시작하여 ‘연구공간 수유 너머’를 거쳐 지금의 ‘남산강학원 & 감이당’에 이르기까지 숱한 변전을 겪었지요.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책을 만났고, 또 10권 정도의 책을 썼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며 삶의 지도를 그리는 장소

고전평론가 고미숙에게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그는 고전을 읽고 영감을 받아 글을 쓴다.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그리고 홍명희의 『임꺽정』 허준의 『동의보감』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고사신 편) 등이 영감을 줬고, 『홍루몽』과 『서유기』가 준 감동과 충격도 잊을 수 없다. 고전을 통해 탄생한 고미숙의 저서는 『열하일기』 3부작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 리그의 향연』 『동의보감』 3부작 등이다. 고미숙은 앞으로 루쉰과 『홍루몽』 『서유기』에 대한 작업도 시도할 계획이다.

“몸,삶,글의 일치가 공부의 화두”라고 말하는 고미숙은 의학과 역학을 하나로 관통하는 공부를 추구한다. 인류학 및 현대과학까지 공부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고, 『총균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올해 ‘감이당 대중지성 프로그램’에서 함께 읽을 책은 『어제까지의 세계』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지울 수 없는 흔적』(제리 코인) 등이다.

최근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을 펴낸 고미숙은 다산과 연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대칭적으로 연결해보았다. 그는 “이런 식의 글 쓰기에는 아주 독특한 울림이 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지도를 작성할 때의 느낌이다. 독자들에게 이 울림이 생생하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독자들도 이 대칭적 글쓰기에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고미숙의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길 없는 대지’ 혹은 ‘하늘의 별을 보며 삶의 지도를 그리는 장소’다. 그는 책을 고를 때,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인가’, ‘평생 동안 읽어도 좋은 책인가’를 질문한다.


사진/김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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