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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박총의 서재 작가
“유년기에는 도시 변두리에 살면서 논밭과 공터에서 자연을 벗 삼아 뛰놀았습니다. 사춘기는 무에 그리 독하게 앓았는지 고1 때는 헤비메탈 밴드를 한다며 기타와 LP를 끼고 살았고, 고 2땐 시인이 되겠다며 로트레아몽과 보들레르를 읊고 살았습니다. 고3 때도 심야영화를 보고 새벽에 집에 오다가 길거리 트럭 짐칸에서 잠을 자는 등 기행을 일삼았고, 밤 11시에 자율학습이 끝나면 공고를 다니면서 대학에 가려는 교회 후배들을 돕겠다며 공부를 가르치는 등 오지랖 넓은 짓을 많이 했어요(웃음). 대학교에선 학업, 교회, 선교단체 활동에 더해 주중엔 야학으로, 주말엔 보육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물론 짬을 내어 연애도 했고요.”

“고등학교 시절엔 나름 문학 소년이라 로트레아몽, 네루다, 프란시스 잠 등의 시에 심취했습니다. 성년이 된 이후론 『문익환 평전』, 마르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 『전태일 평전』, 『체 게바라 평전』 등에 깊이 매료됐지요. 『신비와 저항』, 『사회적 하나님』, 『성문 밖의 그리스도』와 같은 신학서적과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오래된 미래』, 『소비의 사회』, 『천 개의 고원』 등이 생의 방향을 바꿔 놓았습니다. 삶을 주조한 단 한 권의 책을 꼽자면 성서입니다. 소설가 남진우가 노래한 단 한 권의 책은 역시 성서이더군요.”




책을 읽으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작가 박총은 항시 책의 갈피나 삶의 갈피에서 영감과 통찰을 얻어 집필을 시작한다. 최근 출간한『내 삶을 바꾼 한 구절』은 삶에 인두 같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구절을 모은 책이다. 신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작업한 전작 『욕쟁이 예수』, 대안적인 삶과 사랑을 그려낸 데뷔작 『밀월일기』도 허다한 책들에 빚을 진 작품이다. 박총은 종종 독자들로부터 “정말 책이 삶을 바꿀 수 있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 그의 답변은 언제나 같다.

“책 한 권 또는 한 구절로 삶이 바뀐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욕이자 책에 대한 모욕이지요. 내남이 알다시피 삶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물론 실제로 생활이 바뀌는 대목도 적지 않습니다만, 아무리 관련 서적을 독파해도 복지부동인 삶의 자락도 많죠. 사실 책을 읽으며 삶이 바뀐다기보다는 삶을 대하는 우리 태도가 바뀌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나부터가 내 삶을 용납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바꾸려고 덤벼들었는데, 어느새 보듬고 쓰다듬어주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건, 그렇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 실제 삶도 바뀌기 시작한다는 거지요.”

“『내 삶을 바꾼 한 구절』은 저에게 찾아와 영혼의 떨림을 자아낸 문장들과 그에 얽힌 삶의 자락을 저 혼자 간직하기 아까워 만들어진 책이에요. 그 문장들이 독자들의 삶에도 울림을 일으킬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리하여 책 읽기의 희열을 만끽하고, 나아가 이 책에 소개된 125권의 책과 만나게 해주는 중매쟁이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거예요. 덧니를 달자면, 책을 많이 못 읽는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읽지 않은 책이 나오면 수치스럽게 여기잖아요. 이번 책에 실린 꽃 그림이 예쁘다고 야단들이신데요. 책에 소개된 125권의 책을 읽지 않은 것보다 이들 꽃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더 부끄러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란, 나를 찾아온 책들이 어우러진 한 편의 진리실험

박총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내와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오랜 시간을 알아온 만큼 위기의 시기도 적지 않았는데, 그 때마다 좋은 책들을 만나 사랑을 지킬 수 있었다. 게일 맥도날드의 저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는 그에게 있어 특별한 책이다. 또 네 아이를 안방 침대에서 낳고 손수 산후조리를 한 것은 『농부와 산과의사』의 영향이 컸다. 차상위 계층으로 살면서도 굳이 유기농 식탁을 고수하는 것은 『녹색평론』, 『소고기를 넘어서』, 『제국과 천국』, 『돌파리 잔소리』 같은 책이 힘을 주기 때문이다. 박총 작가는 “돌아보면 나의 삶이란, 질곡한 일상과 인생의 매 시기마다 저를 찾아온 책이 어우러진 한 편의 ‘진리 실험’”이라고 말한다.

박총 작가의 가훈은 “덜 벌어 덜 쓰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살면서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생존은 한결 버거워지면서. 돈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시대가 됐다. 그는 이런 시대일수록 지배적인 가치를 거스르는 것이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해줄 수 있다고 믿고, 또 경험하고 있다. 하여 ‘자발적 가난’ 내지 ‘질박한 생활’의 재발견에 큰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한 동서고금의 지혜를 모은 책을 집필하려고 한다. 모두가 꺼려하는 ‘가난’이라는 어휘가, 비단 사회부적응자들의 정신승리법이 아니라 실제로 더 풍성한 삶을 가져오는 적극적인 삶의 방식임을 드러내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전을 뒤적이는 것은 물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으로 『폰 쇤브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슈마허의 『자발적 가난』 등의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조이스 킬머의 <나무>란 시가 보여주듯 이 초록별 위에 나무만큼 아름다운 존재도 없을 겁니다. 매번 재생용지 사용을 고집합니다만, 책을 낼 적마다 나무를 벨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늘 심각하게 되묻습니다. 책을 고를 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가 기꺼이 제 살을 내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고릅니다. 그래서 요즘엔 수 백 년을 이어온 고전이나, 적어도 10, 20년 후에도 여전히 팔릴 책을 기준으로 삼아 고릅니다. 그런 책은 뻔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기존의 통념을 뒤집음으로 우리를 괴롭게 하는 책이고, 요즘 유행가보다 더 흔해진 힐링 나부랭이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실존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해주는 책이지요.“

박총 작가에게는 아직 작업실이라고 불릴만한 공간이 없다. 의외로 가장 글이 잘 써지는 장소는 버스나 지하철 안이라고. 글의 물꼬가 트이지 않으면 일부러 종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언젠가 작가에게 숲 언저리에 놓인 아담한 저술 공간이 생기면, 이름을 ‘시칠리아의 암소’라고 정하고 싶다.

“제게 있어 글쓰기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비유는 키에르케고어가 시인을 시칠리아의 소에 비유한 것인데요. 고대 시칠리아의 참주였던 팔라리스는 청동으로 만든 암소의 콧구멍에 피리를 달고 죄수를 소 안에 넣은 다음 밖에서 불로 태웠다고 합니다. 그는 죄수가 타 죽으며 내지르는 비명이 피리를 통해 음악이 되어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기뻐했다고 하는데, 이보다 작가의 운명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 없지요. 내면에는 불타는 절규가 그치지 않지만 그것이 밖으로 나와 글로 표현되면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문장을 이루니까요. 나중에 작업실이 생기고 그 앞에 ‘시칠리아의 암소’라는 현판을 붙여놓으면 거길 나들 때마다 작가로서의 초심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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