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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조해진의 서재 작가
“그리 외향적이지 못해서, 또 환경적인 면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와 몽상, 두 가지였죠. 저를 가장 처음으로 매료시켰던 책은 생텍쥐 페리의 『어린 왕자』였습니다.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려 깊은 여우와 친구가 되어가는 어린 왕자의 모습에서 설명할 길 없는 깊은 감동을 받았죠. 그 뒤로 세계문학전집에 속한, 이른바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필독서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어요. 조금은 의무감으로 읽은 책들도 있었지만 지금껏 잊지 못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폭풍의 언덕』 『데미안』 『이방인』 같은 소설이 그러하죠. 한국 소설에는 조금 늦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시간에 참고서 아래 당시 흠모하던 한국 작가들의 소설책을 숨겨놓고 선생님들 몰래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작가의 꿈을 키워갔던 것 같아요. 내가 읽은 그 작품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문학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겠죠. 분명,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어딘가에서 내가 스쳐간 책이나 그 책을 쓴 작가들을 만나면 마음의 모서리가 무너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뭉클해지곤 해요. 대학에 들어와서는 도스토예프스키, 프란츠 카프카, 마르그리뜨 뒤라스 등을 탐독했고 동시대 한국 작가들 한 명 한 명에게 한 번씩 빠져들기도 했어요. 작가라면 기존의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이루어야겠죠. 알고 있고 동의도 하지만, 내가 읽고 흠모했던 작가들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제 문학이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등단은 2004년에 했어요. 그러니까 스물아홉 살이 될 때까지 저는 오롯이 독자였던 셈이에요. 그토록 열망했던 작가가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렵 제 소설은 세상에 나오기에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후회를 하는 건 아니에요. 부족하고 결함이 많아서 좀처럼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오지 않았고 간혹 기회가 와도 좋은 작품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 부족함과 결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지금은 그 어떤 문학수업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과정 속에 있습니다.”

조해진 작가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작가에 대한 ‘신뢰’다. 추천을 받거나 우연히 발견한 어떤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찾아 읽는 것이 작가의 독서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작가를 신뢰하느냐가 결국 책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는데, 신뢰의 기준은 ‘깊이’다. 조해진 작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어떤 장면을 통해 진지하고도 세련된 통찰을 보여주는 깊이, 그건 삶을 한 뼘 더 넓게 보게 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그 100명 모두 쓰는 이유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저는 작가가 된 이후에야 내가 왜 쓰고 있고 써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어요. 그 해답을 몰라 긴 고통을 겪었는데 그 과정은 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 『로기완을 만났다』에 담겨 있습니다. 처음부터 작가로서의 고민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그 소설을 구상한 건 아니었지만 저처럼 글을 쓰는 인물이 주인공이어서인지 그 무렵의 제 고민이나 화두가 그 인물에게 투영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해답을 찾았느냐고 물으신다면 해답까지는 아니고 해답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하나의 단어는 찾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단어는, ‘위로’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쓰며 인물이 인물에게, 나아가 인물이 독자에게 위로를 주고받는 순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짧더라도 마음에 빛이 들어오면서 애틋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이요. 책을 덮은 뒤 소설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 심지어 그 줄거리까지 모두 잊어버린대도 가끔씩 가만히 서서 그 순간을 기억해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 힘으로 저는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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