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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김종대의 서재 평론가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을 집필하는 데 모티브를 제공한 책이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 : 1940년의 증언』이에요. 마르크 블로크는 프랑스의 뛰어난 역사가인데 독일이 침공하니까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어요. 군인이 되어서 보니 당시 프랑스 군의 지도부, 즉 사령부가 참 무능한 거예요. 참호 안에 앉아서 군 지도부의 무능을 고발하며 조국의 현실을 개탄한 기록을 남긴 거죠. 그가 독일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한 다음에 그의 동료들이 가족에게 원고를 전달하여 유작이 출판되었는데, 그의 기록은 오늘날까지 끊임없는 감동을 전해줍니다.”

“블로크를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어요. ‘왜 전쟁과 안보 위기를 겪은 우리는 이와 같은 통절한 자기반성이 없는가’였죠. 한국전쟁 당시에 계급장도 떼버리고 도망간 지휘관, 얼마나 급하게 도망갔으면 한국은행의 금괴도 반출하지 못해 북한군에 넘겨준 정부, 오합지졸로 작전지휘권 행사가 불가능한 군대, 그리고 양민학살 등 반성을 하려면 우리가 반성할 거리가 더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패주한 정치 지도자와 군 지휘관들은 오늘날 다 영웅이 되고 말았죠. 마찬가지로 1990년대 이후 서해에서 5번이나 남북 간에 교전이 발생했는데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책임 규명 없이 우리는 정부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공개한 부분만 알고 있어요. 왜 교전이 발생했는가도 솔직히 모릅니다. 우리 군사조직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 수 없고요. 블로크는 제게 이 일을 하라고 촉구하고 있어요.”


관점을 달리 하면 철학이 달라진다

“관점을 달리하면서 사건을 인식하다 보면 단순히 사건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건의 다른 측면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의 사상과 철학이 달라지죠. 일본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란 책이 있어요. 그 책 집필 동기가 흥미로워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우주비행사들은 아주 좋은 인터뷰 대상이죠. 1970년대에 이들에 대한 인터뷰는 대부분 우주에서 먹고 자고 입고 움직이는 일상에 대한 세간의 관심만 충족시켰어요. 여기에 다치바나 다카시는 매우 화가 났어요.”

“인간이 우주에 갔으면 무언가 놀라운 체험이 있을 것인데 이상하게도 당대 언론은 이런 건 묻지도 않았고 우주비행사도 말하지 않았어요. 이에 저자가 우주비행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우주에서의 체험을 새롭게 발굴하는데 그 중에서 아폴로 7호에 탑승했던 월터 쉬라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죠. 그는 우주에서 육안으로 베트남 전쟁을 보았습니다. 야간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불빛이 이상해서 추적해 보니 베트남전의 야간전투에서 나오는 섬광이었다는 거죠. 저렇게 아름다운 단 하나뿐인 지구에서 서로 죽이고 죽은 전투가 벌어지는 걸 본 쉬라는 한없는 충격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귀환한 그는 즉시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로 전향한다. 그가 잘 아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우주적 관점에서 보고 나면 사람의 철학이 달라지는 겁니다.”

“서해의 엄중한 안보 현실을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 때 아닌 꽃게 풍년으로 남과 북이 다 같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이 기대되던 시점에 교전에 일어났습니다. 서해에서 남과 북이 서로 적으로 대하지 않고 친구로 대했다면 함께 누릴 막대한 이익과 신뢰는 엄청났을 거예요. 그러나 남과 북의 군대는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서로를 죽이고 죽었습니다. 정치 집단들은 오히려 위기를 부채질하며 긴장과 갈등 속에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고자 했고요. 없던 NLL 논쟁이 생겨나고 보수와 진보가 갈라졌습니다. 이제 서해는 재앙과 죽음의 바다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서해의 현실을 월터 쉬라의 관점으로 보자면 어리석기 짝이 없죠. 제가 서해의 안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독자에게 촉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인생과 철학이 달라짐을 느끼게 돼죠. 그러한 혁신의 열정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성숙되도록 훈련시킬 겁니다.”


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제껏 서해에서의 군사 문제는 현실주의 관점에 의해 해석되어 왔어요. 남북한 국가의 의지가 충돌한 것이라는 관점이죠.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남과 북의 정부 말고 남과 북의 군대가 해양에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국면이 있다는 거죠. 군사조직의 행태라는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그레이엄 앨리슨과 필립 젤리코의 공저 『결정의 엣센스』라는 책에서 가져온 틀입니다. 이 책은 동일한 사건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죠.”

“서해에서 벌어진 안보 위기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국가 차원에서 거대한 비합리성입니다. 제1연평해전을 한번 살펴보죠. 굳이 교전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는데 기어이 피를 보는 상황으로 악화되었는데, 작전의 최고 단위인 합참과 2함대 사이의 극심한 이견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지상군이 주축이 된 합참은 마치 지상에서 작전을 하듯이 선을 방어하는 개념으로 NLL 문제에 접근하려고 했고, 반면 해군은 선방어가 아닌 면 통제에 작전의 주안점을 두고자 했어요.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조직이 내부에서 경쟁하고 갈등하면서 서해에서의 안보 상황이 어떻게 급격히 악화되었는지를 규명하려고 했습니다.”

“『결정의 엣센스』는 이와 더불어 정부 정치라는 관점에서 국가 차원의 비합리성이 초래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국방장관인지에 따라 지향하는 정치적 목적이 달라질 텐데, 이는 곧 위기관리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안보를 권력화, 정치화하려는 속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과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행태를 보였는가도 이 책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주된 주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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