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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손철주의 서재 평론가
“큰길 보다 골목, 안방보다 골방이 좋았던 사춘기를 보냈는데, 그 골방에 늘 책이 있었죠. 팔다리보다 머릿속이 분주했던 날들이 계속되던 중학교 2학년 시절, 여름방학 내내 골방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은 상태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전집을 몽땅 다 읽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독후감이 평생 동안 남아있습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과 이하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들의 몇몇 시에는 쉬르 레알리슴의 기미가 엿보여요. 저는 미술과 문학에서 ‘묘품(妙品)’을 높이 치는데, 귀신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 ‘신품(神品)’이고 인간이 애써 이룩한 작품이 ‘명품(名品)’이라면 묘품은 그 사이를 배회하는 작품입니다. ‘교묘하다’, ‘오묘하다’라는 말은 정체가 희미한 가운데 몰래 드러나는 진수를 잡아챘다는 뜻이 들어있지요. 이상은과 이하의 시에서 그런 징조를 찾아보는 게 재미있어요.”

“사람이 나오는 여러 옛 그림들을 모은 책이지요. 인물화, 초상화, 풍속화 등에 등장하는 남녀 모델들은 이를테면 생애 한 순간의 틀거지가 화가의 붓에 붙들린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화가는 왜 하필 그 순간을 포착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그림 속에 붙박인 그 순간의 포즈와 그 포즈에 실린 감정을 읽어보자는 게 저의 목표였지요. 관상(觀相)에서 관심(觀心)으로 나아가는 작업이 저로선 부족하나마 흥미로웠습니다.”


삶에서 좋은 것이 우리 것으로 느껴질 때가 온다

‘학고재’의 주간이자 유려한 문체로 전통미술 이해를 돕는 미술평론가인 손철주 미술평론가가 『사람 보는 눈』 을 펴냈다. 전통미술 분야 도서 애독자라면 한 번쯤은 그가 이야기하는 그림들과 그 안의 내밀한 공간 속의 사람들에게 흠뻑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러티브 측면뿐만 아니라, 그의 전통미술 이야기를 따라 서양식 채움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움의 시선을 조금씩 좇아가보자.

현대미술계에서 전통미술의 관심을 보았을 때, 대중들에게 전통미술을 옛이야기 듣듯 풀어 나가는 귀한 작업을 손철주 미술평론가는 해내고 있다. 오랫동안 문화부 기자였지만, 이렇게까지 끊임없이 전통미술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는 전통미술이 ‘블루 오션’이라는 농담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흔히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지요. 누구나 취향은 태생의 문화적 DNA로 기울게 돼있습니다. 우리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은 우리 것인 경우가 삶에서 느껴질 때가 오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전통미술을 읽어낼까? 손철주 미술평론가는 우리 옛 그림은 시각적 임팩트가 강하지 않아 ‘보는 그림’이라기보다 ‘읽는 그림’에 가깝다고 했다. 그림의 속을 뒤져보는 수고가 따르는 것 외에도 그 시대 그 정서에 지금의 내 마음을 실어야 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보고, 풀고, 읽는 이 과정들이 ‘안목’을 만든다.

“우선 그림 속의 엉킨 단서 하나라도 붙잡으십시오. 그것을 풀기 위해 또 다른 읽을거리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실천이 자기의 안목을 키우는 지름길이 됩니다. 누워있으면 감은 안 떨어집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에게 <채널예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전통미술 몇 점을 부탁했다. 짧게 설명할 수 밖에 없어 유감이라는 답변과 함께 돌아온 작품은 신윤복의 「유곽쟁웅」 과 이인상의 「설송도」 였다. 두 작품의 대조를 통해 전통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속기(俗氣)’와 ‘문기(文氣)’의 개념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잡힌다.

“속기(俗氣)와 문기(文氣)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언제나 유별나서 재미있지요. 전자는 신윤복, 후자는 이인상의 작품입니다. 신윤복이 포퓰리즘에 기댄 팝 아티스트라면 이인상은 형상 너머로 건너가고픈 엘리트 화가였지요. 신윤복의 「유곽쟁웅」 (간송미술관 소장)은 신분의 탈과 체면의 허울을 벗어 던진 세속의 민낯이 딱 맞아떨어지는 디테일로 표현되었고, 이인상의 「설송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소재에 머물지 않으려 하는 문학적 지향성을 화면 밖으로까지 이끌어냅니다.”

많은 저서를 배출했지만, 여전히 손철주 평론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전통미술을 연구한다. 그는 “자신의 공부에서 예술에 매달리다가 기술을 놓치는 사례가 많았다”며, ‘기술이 예술을 만드는 과정’에 관해 색다른 관심을 표했다.

“미술 분야에서 그런 책을 과문한 탓인지 별로 보지 못했는데, 샘플이 될 만한 조각조각을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


명백을 바라는 애매한 몸부림, 글쓰기와 독서

손철주 미술평론가의 서재는 ‘나월당(蘿月堂)’이다. ‘담쟁이덩굴(蘿) 사이로 달(月)을 보는 집(堂)’이란 뜻이다. 담쟁이는 여기 있고 달은 저기 있어서 흐릿하고 희미한 경치, 이게 그의 정서와 어울려서 멋스럽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이란 어찌 보면 ‘명백(明白)을 바라는 애매(曖昧)한 몸부림’같다는 그의 서재에는 동서를 막론한 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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