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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림태주의 서재 시인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성스럽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 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자에게는 책이 일생이고 역사일지 모르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장난감 같은 가벼운 유희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래야 언제라도 책을 가지고 놀 수 있으니까요. 커피 맛이 유독 좋은 집이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그 집에 가서 마시는 것이 좋겠지만, 커피 맛보다 누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느냐가 더 중요할 때도 있죠. 제가 책을 펼쳐든 곳이 공원이든, 방안이든, 사무실이든, 해변이든, 친구 같은 책이 있다면 그곳이 어딘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과 친해지려면, 관심사의 범주에 있는 괜찮은 책 한 권을 골라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틀림없이 그 책은 다른 책을 불러들일 겁니다. 만일 그 책이 당신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괜찮은 책이 아니라 정말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눈을 당신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책은 당신의 취향이 됩니다.

 

SNS가 활발해지면서 그림과 사진 같은 이미지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진작가나 화가, 그래픽 디자이너 같은 예술가들과 SNS로 교류하면서 제 관심사도 미술과 사진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 상에서 만난 친구들과 그룹을 지어 서양미술사 강독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곰 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고, 엠마누엘 아나티의 『예술의 기원』과 월터 J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미혜 박사의 『예술의 사회 경제사』를 틈틈이 탐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 저는 『이 미친 그리움』이라는 산문집을 냈습니다. 독자들의 여러 리뷰들을 찬찬히 읽어보았죠. 제목을 지을 때 ‘그리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젊은 독자들일수록 오그라들거나 낡은 감성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거라고 염려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집었다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움이 나약하고 흔해빠진 감상이 아니라는 걸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저는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그리워한다는 행위는 매우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외로움이 내 안에 네가 없는 그리움이라면, 그리움은 내 안에 네가 있는 외로움’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들어와 사는 너를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의 밥을 먹어야 하고, 또 그 에너지로 누군가를 맹렬히 그리워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실존과 너라는 이타를 담은 그리움을 살아갈수록 마음의 우주가 팽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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