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재
책 읽기를 가장 게을리하면서도, 책을 음미하면서 읽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천천히 읽고, 천천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이 다 꺼지고 풀벌레 소리가 밝게 들리는 시간,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시간에 스탠드만 켜 놓고 책을 읽으면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이상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한 줄 한 줄 읽으며 느끼는 모든 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들이 이리저리 나온다기보다는 내 안의 내가 느끼는 가장 즐거운 순간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읽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동시와 동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에 있는 아이들이 많은 농촌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절로 아이들의 눈과 귀 그리고 가슴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 중에 임길택 시인의 『탄광 마을 아이들』이 딱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과 맞았습니다. 둘러보면 고달프고 애달픈 아이들이 많습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최근 서랍의날씨에서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가 나왔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과부 엄니와 주고받는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아무한테도 못 하는 말을 딸에게 거리낌 없이 뱉어 내는 말 속에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아부지 돌아가시고 내내 힘들어하고 내내 아파서 병원을 집처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울 엄니도 아부지처럼 갑자기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니를 보면서 나를 보았고, 그것을 통해 나도 점점 내가 설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갈팡질팡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갈팡질팡했던 시기는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엄니와 살기 시작한 4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돌아보면 이미 손 내밀고 흔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엄마일 수도, 아빠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계신 분들께 전화라도 드리는 것은 어떨까요? 목소리만 듣고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