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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유난희의 서재 방송인

책을 읽는 속도보다 책을 구입하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행간의 의미까지 찾아가며 감동받은 문장에서는 읽기를 멈추고 문장을 곱씹고 색연필로 밑줄을 긋고 다이어리에 메모도 하죠. 그리고 문장이 주는 의미를 상상하며 음미하기에 페이지를 넘어가는 시간이 아주 더딥니다. 서점이 있는 곳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잠깐 들렀다갈까 하고 들어간 곳에서 나올 때는 새로운 책이 여러 권 제 손에 들려 있습니다. 며칠 전에 구입한 책을 아직 다 마치지 못했는데 말이죠.

 

책 욕심이 참 많아요. 책을 빌려 읽지도 않고 제 책을 빌려주지도 않습니다. 제 책을 빌려달라는 친구가 있으면 빌려주는 대신 똑같은 걸 한 권 사서 선물을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은 제 책꽂이에 있어야 하거든요. 아주 오래전 감동과 감탄 그 자체로 완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전권을 저의 책꽂이에 고이 꽂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2권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죠. 너무 놀라서 남편에게 물으니 친구에게 빌려주었다는 겁니다. 그때 남편과 처음으로 심하게 다퉜던 기억이 납니다. 제 책을 저에게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빌려줬다는 이유에서요. 남편은 저에게 그런 걸로 화를 낸다며 더 화를 냈지요. 책에 대한 저의 집착에 가까운 소유욕을 모르시는 분들은 정말 이해 못할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빌려 읽지 않고 꼭 사서 읽고, 다 읽은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는 것까지가 완벽한 독서였으니까요. 이런 이유는 저에게 책은 제가 살았던 시간에 관심을 가졌던 저의 사고와 행동 그 모든 것을 담은 ‘기억저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읽은 누렇게 바랜 시집을 꺼내면 10대 시절 아름다운 시를 읽고 가슴 아려 눈물 흘리고 꿈을 키웠던 추억까지 기억해 줍니다. 그래서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거나 잃어버리면 저의 기억까지 잃어버린 듯 상실감이 크답니다.

 

저에게 책은 ‘위로’입니다. 힘들 때는 저보다 더 힘들게 살았던 사람의 책이 저를 토닥여주고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는 현자가 쓴 책은 제 자리로 돌아오게 이끌어 줍니다.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을 때는 유머 넘치는 책이 또 저를 즐겁게 해주죠. 그래서 전 서점에 자주 가고 인터넷서점도 수시로 서핑하면서 군중 속에서 고독한 저를 위로해줄 또 누군가를 찾습니다. 독서가 즐거운 이유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알려주는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관심사는 ‘인문학’과 ‘고전’입니다. 오래전에 읽다가 멈췄던 『노자』와 『장자』에 새롭게 관심이 생겼고 중학생 때 밤을 새워 읽었던 스탕달의 ‘적과 흙’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아니더라도 조급했던 마음 한편을 서서히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책이죠. 그래서 최근에 구입한 책이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와『START!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고전과 인문학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출간한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키워드는 결국 럭셔리한 삶은 물건 그 자체이기 보다는 ‘경험’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애정을 갖게 되는 물건에 대한 경험을 향유함으로써 물건을 명품으로 재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경험이 주는 사고의 전환이 진정 럭셔리한 삶을 체험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은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다양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책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도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럭셔리한 삶은 수백만 원대가 아닌 만 원대의 책에서도 꿈틀거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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