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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이승우의 서재 소설가

미처 책을 챙기지 못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만나기로 한 사람이 늦을 때. 혹은 흥미있게 읽던 책의 마지막 책장을 아쉽게 덮을 때. 카페나 전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볼 때. 그러니까 책을 읽지 않고 있을 때,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일 때, 역설적으로 책 읽기가 가장 매혹적으로 느껴집니다.

 

정작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즐겁지만은 않아요. 어떤 책은 지루하고, 어떤 책 읽기는 고통스럽죠. 심지어 읽기 싫은 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읽지 않고 있을 때,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지루하게 하거나 고통을 주거나 읽기 싫은 책은 없어요. 읽지 않을 때는 언제나 읽고 싶어요. 결핍과 부재가 필요와 가치를 상기시키죠. 요즘, 저는 ‘사랑’이라기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행태와 심리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중요한 한 두 명 인물의 수직적인 서사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연인들마다의 다양하고 고유한 사랑의 모습을 수평적으로 그려 보이고 싶은데, 이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만,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는 생각을 전제합니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들과 그에 대한 에세이적 서술로 이루어질 이 소설 집필을 위해 관련 책을 읽고 있어요. 현대인들은 감각과 속도에 중독되어 있어요. 중독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중독되어 살고 있죠. 순발력도 있고 눈치도 빠르지만 깊이는 잃어갑니다. 말과 몸이 항상 먼저 나오죠. 혹은 말과 몸만 나오고요. 말도 몸의 일부입니다. 주도적 매체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감각적인 매체들이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생각을 이끌어내고 깨달음과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비능률적인 납작한 매체인 문자로 쓰인 책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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