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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윤준호의 서재 카피라이터

이런 카피가 있습니다. “사람이 혼자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책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어느 신문사 출판부 광고입니다. 책의 효용성을 아주 잘 가르쳐주고 있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진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여행길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길동무’로서의 책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필시,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진부한 비유까지 함께 떠올려주길 바라는 문장일 테지요. 책이 지닌 제일의 미덕은 역시 다소곳한 ‘동행(同行)’에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하루쯤은 운전을 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길을 나섭니다. 왕복 두어 시간을 오롯이 독서에 쓸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 날, 제가 들고 나서는 책은 대개 문고본입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책 말입니다. 제 책 『고물과 보물』에 나오는 삼중당문고 같은 것들입니다. 고등학교나 대학시절에 읽던 책들을 다시 읽습니다. 주로 고전(古典)이지요. 고전에 대한 재미있는 정의가 떠오릅니다. “읽을 때마다 밑줄 긋는 곳이 달라지는 책.” 그렇습니다. 고전은 박제가 아니라 생물(生物)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기쁨. 저는 요즘 낡은 문고본이나 새롭게 출간된 고전선집에서 클래식이야말로 얼마나 좋은 길동무인가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식의 다양함입니다. 이를테면, 콜롬비아 화가 F.보텔로와 위대한 조각가 A.자코메티 사이에 얼마나 많은 관점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입니다. 한 사람은 삼라만상을 금시라도 터져나갈 것처럼 팽만감 가득한 형태로 그려내는데, 또 한 사람은 뼈대만 남은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 가지 사물이나 풍경 앞에서 얼마나 많은 발상과 표현의 방법론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2014년에 저는 도서관의 미래에 관한 정책세미나의 멤버로서 우리나라 책의 오늘에 관해 퍽 진지한 성찰을 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독서에 관한 한 지극히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담론들이 오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슬로건 몇 개를 예로 들며 대한민국 모든 도서관에 현수막으로 내걸기를 제안했습니다.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공부하자 대한민국!” “미래-답은 도서관에 있다” 그리곤 이렇게 토를 달았지요. “지나간 시간을 알고 싶으면 박물관에 가라. 지금 이 시간의 세계를 보려면 인터넷을 열어라. 다가올 시간을 만나려면 책을 펴라.” 

명사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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