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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정혜윤의 서재 PD

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나에게 불만족할 때부터, 나의 모습이 부끄러울 때부터라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뭔가 혼란스러운 생각이 형태를 잡아간다고 느낀 뒤로는 책을 읽지 않으면  나에게 좋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읽지 않으면 분명히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때의 초조감 같은 게 느껴집니다. 재미보다는 살 방법과 도움을 얻고자 읽었는데 사실 그것이야말로 재미였습니다. 책을 읽고 그 책이 좋으면 “이거 너무 좋은 거 아니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너무 즐거워요. 그게 아예 말버릇이 되었어요, 너무 좋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이거 진짜 참 좋구나!”, “다른 이야기 말고, 우리 좋은 거나 이야기하자!” 이런 시간이 늘어나는 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위 질문과 어느 정도 대답이 겹치는데, 제 경우는 하루에도 오만 가지 일로 감정이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세상에 나같이 옳은 사람은 없지만 그 생각은 반나절이면 틀린 것으로 판명 나요. 우리는 항상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데 결국 더 나은 선택과 판단을 하길 멈추지 말아야 하고 그래야만 발 뻗고 잘 수 있고 내적으로 떳떳하고 양심이 덜 괴로워요. 그때 책만큼 제게 도움이 된 것이 없었어요. 책은 나에게 없는 생각을 불어넣어주고 전에는 생각도 못 해본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나의 시시한 점은 덜어내고, 반복되는 단점은 갖다 버리고, 남의 신선하고 용감한 생각으로 나를 다시 채울 결심 같은 것을 책을 읽다 보면 늘 하게 됩니다.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제 관심사는 평생 똑같았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 때는 “누구의 친구가 될 것인가? 어떻게 시간을 쓸 것인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무엇을 하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까?” 등등 변주가 있지만 결국은 늘 “어떻게 살 것인가?” 였어요. 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평생 처절한 왕따, 살짝 맛이 간 사람으로 여겨졌던 외롭고 고단한 반 고흐가 서른 해를 넘기고 한 말이 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어요.


“몸을 아낀다거나 마음의 동요와 이런저런 어려움을 피해갈 생각은 없다. 좀 더 오래 사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명심하고 있는 것, 그것은 수년 내에 과업 하나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30년이나 떠돌았기 때문에 내겐 갚아야 할 부채와 완수해야 할 과업이 있으며 세상이 내게 관심을 갖는 건 내가 감사의 표시로 추억거리를 남기는 한에서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잠시 거리를 서성였습니다. 저는 빈센트 반 고흐보다는 훨씬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저에게도 꼭 해야 할 일과 꼭 증거로 남겨야 하는 감사와 사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작 『인생의 일요일들』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균형 감각에 관한 것이에요. 실망하고 피곤하고 대충 살고 싶을 때 어떻게 마음의 균형을 잡고 힘을 낼까? 나 자신부터 마음이 어두운 날 이 책을 읽으면 반드시 어느 페이지에선가는 힘이 불끈 솟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제 책을 읽고 멋진 리뷰를 해준 독자가 있었습니다. 책 속에 ‘구원은 세상에 좋은 일 하나 추가! 좋은 일 하나 늘리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은 독자의 동네에 떠돌이 개가 있었답니다.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아서 젖은 퉁퉁 불고 축 늘어져 있는데 배가 고파서 눈동자에 슬픔이 가득했대요. 독자는 그 엄마 개를 가만히 쓰다듬고 말을 걸고 ‘나를 따라 와!’ 라고 말한 다음에 달걀 반쪽을 건네줬다고 합니다. 그 독자도 형편이 어려워서 달걀 반쪽이라도 아껴야 하는 처지였는데 말이죠. 그때 책 속의 문장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개에게는 좋은 일 하나가 늘어나는 거야!’ 저는 이 독자가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평가하려는 게 아니라 어쩌면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유대감을 느끼면서 함께 살려고 읽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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