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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북살롱] 사랑을 읊고, 밤을 노래한 김연수의 낭독유혹기 - 『밤은 노래한다』의 저자 김연수

김연수, 사랑을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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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13일의 홍대 부근, YES24와 상상마당이 마련한 <향긋한 북살롱>에 나타난 소설가 김연수가 그랬다. 그저 슬그머니, 낌새를 차릴 새도 없이, 독자들 앞에 나타난 김연수. 최근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 펴냄) 출간 이후 독자와의 첫 만남이란다.

알다시피,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가을이 익어가는 10월 13일의 홍대 부근, YES24와 상상마당이 마련한 <향긋한 북살롱>에 나타난 소설가 김연수가 그랬다. 그저 슬그머니, 낌새를 차릴 새도 없이, 독자들 앞에 나타난 김연수. 최근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 펴냄) 출간 이후 독자와의 첫 만남이란다. 3주 후면 서울 하늘이 아닌, 스페인 하늘을 마주 대한다는 김연수. 최근 <EBS 세계테마기행>에선 초원의 나라, 몽골을 헤집고 다니더니, 다시 ‘스페인이라니, 연수야’(‘사랑이라니, 선영아’를 변용해서). 거참,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 아닐쏜가. 그는 모름지기 ‘여행할 권리’를 철저히 누리고 있는 ‘유령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래, 지난여름 북콘서트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국경, 한계, 틀’을 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세계에 도달하려는 노력. 『밤은 노래한다』 또한 그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며, 낭독회를 마련한 것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것은, 김연수 혹은 『밤은 노래한다』, 아니면 ‘1930년대의 간도’라는 다른 세계를 만난 기록이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들). 낭독하는 김연수의 발견. 김연수, 밤을 노래하다.


김연수, 사랑을 읊다

앞서 『밤은 노래한다』를 간략 소개하자면, 이 소설은 1930년대 초반, 오늘날 우리가 연변이라고 부르고, 간도 혹은 동만이라고도 불린, 이름만큼이나 기막힌 사연이 많은 땅의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했다. 동지가 동지를 죽이던, 기막히고도 참담했던 사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모를 얽히고설킨 복잡함과 혼돈”(한홍구)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한.

어쨌든 이 자리는 낭독회다. 음악이 흐르고, 이야기의 일부가 낭송되며, 청중들의 귀가 열리는 시간. 어디 가서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어려웠을 마당에, ‘낭독이라니 연수야’라고 타박할 사람이 혹 있었을지 몰라도, 결론적으로 김연수는 ‘만주의 문장들’을 음악과 함께 조곤조곤 풀어냈다. 한편으로, 책을 들고 보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든 낭독시간이었음도 실토해야겠다.

처음은 그랬다. 예상했던 숙연함이 아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다며, 말을 건넨 김연수는 약간 달떠보였다. 그러나 이내 곧 낭독 시작을 알리고, 음악이 흘렀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앞으로 낭독할 부분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워밍업이 끝나고 시작된 사랑에 대한 낭독. 결에 묻어나는 김연수의 감수성, 김연수의 목소리, 밤이 노래하는 낭독의 시간. 고결한 존재,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순수한 영혼에 가까운 이정희와 사랑에 대해 알아가는 김해연의 심정(p. 30~32)이 김연수의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1932년 9월 용정에 있었던 사랑. 김연수는 이정희의 또 다른 애인이었던 일본군 경호중대 중위 나카지마의 말을 빌려, 사랑에 대해 이렇게도 말한다. 「“그러니 시시하게 죽을까 봐 온몸을 떨어대면서 겁을 내느니 사랑을 하라. 그게 매춘녀든, 성녀든.”」(p. 21)

김해연과 나카지마의 대화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는, 김연수의 사랑학.

「“그렇다면 나도 사랑이라는 걸 한번 해보죠.”
그 말에 나카지마가 한쪽 눈을 치켜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건 네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야.”」(p. 27)


고로 말하자면, 이런 것. 「사랑에 빠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렷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p. 36)

그리고 보여주는 것.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자이니 증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 사랑도 마찬가지지만, 증오 역시 감정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지. 사랑이든 증오든 오직 행동으로 실현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거야. 네 몸으로 사랑? 때, 그게 사랑이야.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어. 뭔가를 증오한다면 얼마만큼 증오하는지 네 몸으로 보여봐. 사랑한다면 사랑을 하고, 증오한다면 증오를 하란 말이야. 하지만 머릿속으로나, 그 잘난 혀가 아니라 너의 신체로 보여 달란 말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알 수 있도록.”」(pp. 88~89)

김해연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 작자였다. 김연수와 김해연, 이 비슷한 이름은 과연 무얼까, 궁금해 했던 독자를 위한 김연수의 설명. “간단하게 지은 이름입니다.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에서 끝 자를 빼고, 김연수의 중간인 ‘연’자를 붙였어요. 『꾿빠이, 이상』을 쓸 때, 하나 더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상의 분신 같은 느낌도 나고. 이 사람은 여러분이나 저처럼 만주에 대해 모르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김해연은, 우리를 끌고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가이드 같은 인물이에요. 멋진 여자가 나타나서 사랑을 하다가 우리와 함께 깊은 어둠의 핵심 속으로 들어가죠. 이 페이지는 정희란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부분입니다.”

소설 속 김해연은 그런 사람이다. 「나라가 넘어가던 경술년(1910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나는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들이 좀 시큰둥했다. (…) 천신만고 끝에 만철에 입사하고 난 뒤에는 비록 만리타향까지 가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어도 조선인으로 만철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한동안은 꽤나 우쭐했었다. 그런 내게 국가나, 민족이 구체적으로 느껴질 리가 없었다.」(p. 19)

김연수는 김해연이 “현대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며 소년인 김해연. 사랑을 하면서 소박한 삶을 원하지만, 세상은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법. 아이의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들을 직면하면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김해연. 사랑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김해연.


선명하게 남은 어떤 이미지들

김연수는 1994년부터 자신이 쓴 모든 문장들 중에 가장 야한 문장이라며, 147쪽부터 150쪽을 낭독했다. 김해연과 여옥이(김해연의 애인이 된)의 정사 장면이었다. “온 방 안으로 남해가 밀어닥치”고 “공중으로 떠가는 하얀 돛의 젖은 배들” “한데 모여 시퍼렇게 휘어지는 물방울들” 등이 정사를 묘사하고 있었다.

김연수는 주인공을 위해 여옥을 이용(?)한 셈이었다. “여옥이는 사실 연재할 때는 1회 분량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불어났어요. 해연에게 너무도 끔찍한 일이 많이 벌어져서, 잔인해지고 여옥이를 통해서 복수심 같은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미안해요. 그걸 쓰는 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여옥이의 다리를 잘랐는데, 그 부분을 보시면 가슴 아픈 얘기란 걸 아실 거예요. 제 생각에는 빨리 지나가야겠다고 해서 썼던 부분인데, 여옥이가 제일 가슴이 아파요. 마지막에 결말이 바뀌면서 같이 사는 것으로 됐지만, 여옥이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이어서 216쪽에서 226쪽에 이르는 긴 낭송이 있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을 다룬, 핵심적인 부분이다. 계간지에 연재했을 때, 맨 앞에다 썼던 부분인데, 책으로 묶으면서 전체 맥락상 지금의 위치로 돌려놓은 것이란다. 연재된 원고와 책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연재분이 단편에 가깝다면, 지금은 장편이 됐다는. 그리고 박도만의 굳은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김지하 시인의 글에서 비롯됐다. “어렸을 때, 김지하 시인이 쓴 글이 하나 있어요. 1970년대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들에 대한 글이었죠. 그때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리면 바로 집행을 했는데, 나이 많은 학생들이 사형선고를 받고 ‘죽게 되어 영광’이라고 얘기해요. (박도만의 외침은) 김지하 시인이 쓴 글에서 따온 것이지요.”

세계는 그렇게 자그만 의심에서 파탄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도만이 그토록 굳은 의지를 보인 것도,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것. “조선인 통역과 조선어로 대화하면 동세영이 그 내용을 의심하고, 조선인 통역이 동세영과 중국어로 대화하면 내가 이를 의심하고, 나? 동세영이 일본어로 대화하면 조선인 통역이 의를 의심하던 일이 어쩌면 앞으로 내가 보게 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의 가장 큰 배경일지도 모르겠다.” (p. 176)


『밤은 노래한다』는 노래를 싣고

1933년 7월의 어랑촌. 혁명(의 방법)을 둘러싼 격렬한 반목과 대립이 있다. 254쪽에서 260쪽까지의 낭독은, 그래서 치열하다. 김연수는 이 부분에서는 헤비메탈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Cantus Firmus In A Minor>(Haggard), <Utopia>(Mantus), <Facade of Reality(The Embrace that Smothers - Part V)>(Epica), <My Irreverent Pilgrimage>(Enslavement Of Beauty).

“(음악이) 주인공들이 미쳐가는, 고립되어가는 상황과 딱 맞아 떨어졌어요. 장님 서금원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부분은, 아주 우수한 성능의 깡통폭탄을 만든 사람이 있는데, 실수로 이가 터져서 장님이 되는 전설이 있는데, 그걸 떠올렸죠. 시장거리를 눈 먼 채로 돌아다니며 바이올린을 켜면서 혁명을 노래하는 열사, 장님.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그 이미지가 딱 맞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상황이에요.”


“감정적 소모가 너무 심했던 소설”

김연수는 이 소설을 쓰는 과정이 감정적으로 꽤나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정서 자체가 되게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죽고 그래서. 쓰는 동안에도 이걸 계속 써야 되나. …… ‘이걸 왜 쓰셨어요?’와 같은 질문이 되게 좋은데, 정확한 이유는 될 수 없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처럼, ‘할 수 밖에 없어서 이 글도 썼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우리가 설정한 어떤 행복의 상태를 희망이라고 할 텐데,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사람들은 그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는 상태예요. 만약 그런 상태(혁명)가 올 것이라고 믿었으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결국 모두 미쳐가는 것이지요.”

희망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 김연수는 그것에 끌렸다. 무척이나 탐난다는 소설의 제목 『사랑하라, 희망없이』(윤영수 지음/민음사 펴냄)를 예로 든 것도 그렇다. 이 소설 쓰기가 그만큼 힘들었던 것은, 희망 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 실패한 인생들의 이야기이기 때문. 김연수는 생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겐 끌리지 않는단다. 그를 끄는 것은, 온갖 고생고생만 하다가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제가 생각하는 삶이라는 것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요.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기쁘고 즐겁기도 하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제가 제 삶에 대해 이해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90%에 달했던 적도 있어요. 내 인생에 대해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하는 문제. 희망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90%인데,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 외에는 다 죽어야 하는데……. 그런데 다 죽지 않는다 말이죠. 이 사람들은 (희망 없음을) 깨달았지만, 계속 고집을 피워요. 그렇지 않고서는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김해연을 측량기사로 설정한 이유. 아마도 삶에 대한 김연수의 자세.

「측량의 세계에는 근사치만 있지, 참값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측량이란 완전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익히는 일이다.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재어보면 분명 참값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도면으로 옮길 때는 참값을 포기해야만 한다.」(p. 55)

대부분 사람이 삶에 대해, 자신에게 묻는 이 말.

「밤의 군대이자 어둠의 병사들은 나를 향해 묻는다. 살아 있는가? 나는 그들을 빤히 바라본다. 살아 있는가? 그들이 다시 묻는다. 나는 그들의 말을 따라 한다. 살아 있는가? 과연 나는 살아 있는가?」(p. 163)

그럼에도, 그 무엇이든 한다는 것. 그것은 김연수에게 생의 가장 중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붙잡고 늘어지는 것. 이 엄혹하고 잔인한 세계에, 신산한 삶을 살아야 할지라도. 고통과 질곡이 끊임없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더라도.

김해연과 박도만의 이 대화도 어쩌면, 김연수가 김연수에게 혹은 김연수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말이 아닐까.

「나는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이토록 쉽게 앗아가는 이 잔혹한 세상이 견딜 수 없었다.
“세상이 이토록 잔인한데, 과연 인간에게 무슨 힘이 남아 있는 것일까요? 죄 없는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봤는데, 인간에게 무슨 미래가 남아 있는 것일까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든 내가 ?도만에게 물었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오. 그게 힘이라오. 물론 나 역시 사람을 죽인 뒤에 톨스토이의 책을 버렸소. 결국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오. (…)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내가 죽음으로써 세계가 조금 변화한다면 그 이상 아쉬움은 없소.”」(pp. 234~235)



김연수는 감개가 무량하다고 했다. 훌륭하고 대단한 소설을 썼다는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이 생각나서. 이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에 했음에도, 준비 과정이나 쓰는 동안 자신이 이 소설을 왜 써야 하는지를 몇 번이고 물었다고 했다. 그랬던 작품이기에, ‘작품성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내게 아주 소중하다’는 고백까지 던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지구에, 세계에 발을 딛고 서 있기 위한 우리의 태도. 박도만을 통해, 김연수는 인간의 힘을 설파한다.

「“(…) 나무는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부에서는 세계와 끊임없이 투쟁하니까 저렇게 곧추 서 있을 수 있는 것이오. 인간 역시 모순에 가득 찬 세계 속에서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오. 도덕이란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만이 알 수 있는 것이오. 일단 그렇게 변화하는 인간의 도덕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잔혹한 일들을 혐오하게 될 수밖에 없소. 변화를 멈춘 죽은 자들만이 변화하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건 정말 구역질이 나는 일이오. 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힘이 더 센 존재요. 나는 잔인한 세계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잔인한 세계 속에서도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됐소. 인간이 성장하는 한, 세계도 조금씩 변하게 마련이오. 그런 인간의 힘을 나는 믿었소.”」(pp. 232~233)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

김연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무엇이든 할 것을 권한다. “가을이 되면 음악도 찾아듣고 일부러 공원에도 가고, 막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냥 지나가요. 올 가을은 뭘 했는지 단풍도 못 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내년에 할 거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무엇을 해야 해요. 나중에 그러다보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고, 아니면 그만이고. (소설 속) 사람들의 삶은, 바보들의 삶이에요. 세속의 관점에서는. 그러나 인생이 의미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했을 거예요.” 좋다. ‘가면을 가리키며 걷’는 것도 좋겠고, 당신이 ‘코미디언’이라면 ‘달로’ 가는 건 어떨까. ‘7번 국도’를 자전거를 타며 달리는 것도 좋겠지. 아, 김연수가 강추한 다큐멘터리 하나를 봐도 되겠다. 무방비 상태로 봤다가, 압도적인 감정에 짓눌렸다는, 보고 난 뒤 땅을 치면서 글을 더 잘 써야겠다고 반성하게 만들었다는, 다큐멘터리 <푸지에>. 일본인 탐험가가 자전거를 타고 몽골을 횡단하면서 만난 몽골소녀의 이야기.

‘스무 살’ 이후를 살고 있는 당신이라면(“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스무살』), 당신이 “한 줄 책에 실린 글귀에 위안을 받고, 퇴근하는 저녁 길에 머리 위로 떠오른 초승달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 불과”(p. 72)할지라도, 김연수는 어제와 다른 세계에서 위안 받을 것을 권한다. 「어쨌든 결국 우리는 어제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 이게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작가의 말, p. 345)

***

김연수의 낭독을 듣고, 스페인으로 떠난다는 그가 완전 부러워졌다. 김해연은, 그래서 김연수 안의 김연수다. 「다만 직업을 찾아 만리타향까지 나온 몸으로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시키다보니 인간은 국경보다는 조금 더 큰 룁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p. 21) 또한, 나카지마도 김연수다. 「“(…) 광야가 뭔지 알아?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들이 머무르는 곳이지.”」(p. 25) 그는 머물지 않고, 국경을 넘는다. 광야에 도달한다. 아, 그래. 오늘 만난 김연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한 욕망”이라는 공항의 새로운 뜻을 말해주며, 여행은, “내가 쳐놓은 울타리, 내 안에 있는 울타리를 넘어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돼 보는 것”이라고 건네던 지난여름의 김연수가 아니었다. 나는 또 다른 김연수를 만나고, 또 다른 세계를 엿본 셈이었다.

누군가에겐, 이 낭독회 자리가 그랬으리라. 「“사람이란 자기 인생행로에서 잊기 어려운 추억을 갖게 마련이지요. 이런 추억은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심금을 울려주면서 떠오르는 것이에요.”」(p. 23) 추억은 그렇게, 방울방울. 김연수는 더 이상 유령작가는, 아닌가보다. 추억할 거리가 있으니 유령처럼 떠돌아다니진 않을 테니.

김연수의 블로그(//larvatus.egloos.com)에 들어가면, 『밤은 노래한다』의 사운드트랙을 들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라.


[사진]향긋한 북살롱 - 김연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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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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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명의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갔다면, 그 속에는 기막힌 사연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1930년대 간도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작가 김연수가 수년에 걸쳐 '도저히 쓸 수 없다'는 생각과 '너무나 쓰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치열하게 완성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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