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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 두려운 당신에게 - 김진세의 『스타트 신드롬』

‘이렇게 사는 게 내가 생각한 행복이었나?’ 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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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신과를 찾는 시대지만 아직까지도 대중들은 정신과의 문턱을 높게 여긴다. 그는 책을 통해 그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

정신과 의사 김진세의 진료실은 여느 병원 진료실과 다름이 없었다. 클래식 음악이 나지막하게 흐르는 진료실에는 책상과, 컴퓨터, 책장이 있고, 병원 특유의 약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흔히, 정신과 의사의 진료실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푹신하고 커다란 소파’는 없었다. 그저 딱딱한 환자용 의자가 있을 뿐이었다.

인터뷰는 하루 중 유일하게 비는 시간인 점심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는 점심도 굶은 채 인터뷰를 했다. 의사라는 본업이 충분히 바쁠 텐데 없는 시간을 내가며 책을 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정신과 의사로 오랜 시간 환자를 지켜보면서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신과를 찾는 시대지만 아직까지도 대중들은 정신과의 문턱을 높게 여긴다. 그는 책을 통해 그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

『스타트 신드롬』은 10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나왔다. 성격, 사랑, 관계, 일에서 생기는 심리적 문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사례를 중심으로 쉽게 서술하고 있다. 사람이 한 번쯤은 겪는 심리적 문제에 대해 그는 정신과 의사로 분석하고 인생의 선배로 조언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자신이 겪은 경험을 털어놓는 솔직함 때문에 평범한 심리학 책을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정신과 의사로 살기에도 바쁘실 텐데, 강연에 저술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열심히 사는 거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그것도 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워낙 일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줄인 편입니다만. 첫 책 『마흔의 심리학』(공저)을 쓰면서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삶의 쉼표와 여백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은 주로 언제 쓰시나요? 시간 내시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요.

개업의로 사는 건 정말 빡빡해요.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하루 중에 유일하게 시간이 빌 때가 점심시간일 정도로 바쁘죠. 저는 주로 주말 아침에 글을 많이 써요. 명절 같은 연휴에도 집중해서 글을 쓰고요. 착상에서 구상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편이지만 글은 굉장히 빨리 써요. 제 바쁜 일상에 맞는 글쓰기 방법을 터득한 셈이지요.

대중들을 위한 쉬운 심리학 책을 저술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 개인적으로 책을 쓰면서 제 자신이 치유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낸 세 권의 책이 내 이야기를 쓴 건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정리하다 보면 내 마음도 정리가 되더군요. 제가 40대 중반인데요. 이 나이가 되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제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기분이 많이 들어요. 그 때 이런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심정이죠. 그런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이번에 쓰신 『스타트 신드롬』도 그런 이유에서 쓰신 책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아, 이걸 예전에 알고 있었다면 출발이 훨씬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20대는 사회인으로 독립하면서 연애나 직장 생활 등 새로운 인간관계가 많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요. 그런 스트레스나 거기서 야기되는 정신적 문제에 대한 정신과 의사로의 조언과 힘들지만 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인생 선배로의 격려도 담았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아직도 사람들이 정신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편견들을 깨부수고 싶었습니다. 제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느낀 건데요,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요즘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과 문컅이 아주 높거든요. ‘내게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까지는 인정을 해도 그게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겠다.’까지 가기가 정말 힘들어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에 대해 이중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아요. 한편으로는 자기 고민을 다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따뜻한 이미지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병’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멀고 차갑게 느끼죠.


또, 그런 것도 있잖아요. 내 마음을 읽?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요.

정신과 의사가 심리 분석을 할 때는 돈을 받고 하기 때문에 아무나 간파하지 않습니다.(웃음)

사람들이 정신과에 대해 가지는 개념이 바뀌면 지금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아 훨씬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육체적인 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병도 초기에 치료하는 게 효과가 좋아요. 책에 있는 사례들을 읽고,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또, 이런 책은 일종의 계몽의 역할을 하면서 많은 정신병을 미연에 예방하는 역할도 합니다. 제가 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늘 느끼는 건, 약으로 환자를 치료해도 재활이 참 힘듭니다. 약을 먹고 나아도 또 재발을 하는 것이 반복됩니다. 치료만큼이나 예방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고, 책 집필도 하고 있습니다.


책에 있는 사례들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어떤 분들은 ‘어, 환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써도 되나?’ 하고 오해하시기도 하는데요, 책에 실린 사례들은 특정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사례별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물론, 실제로 제가 치료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기본 베이스가 되긴 하지만요. 정신과 의사와 환자간의 상담 내용은 엄격하게 비밀 유지가 됩니다. 아, 그리고 예전에는 정신과 치료를 비용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지금은 보험 적용이 많이 되어서, 어떤 경우는 영화표 값 정도로 치료를 받으실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치료받는 시간이나 방법에 따라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생각만큼 비싸지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시다 보면 이전과 비교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점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시나요?

가족 문제, 특히 형제간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많아서 갈등이 희석되었지요. 맏형하고 둘째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막내가 중재 역할을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형제 수가 줄면서 동기간의 갈등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또, 자식이 하나 아니면 둘이다 보니 경쟁 관계가 치열해지고, 부모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죠. 강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요즘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고 부를 만큼 사회인으로의 첫 스타트가 쉽지 않은데요.

변화라는 게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누구나 두렵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취업 대란이나 과거의 IMF처럼 원치 않는 변화를 강요받아야 할 때는 스타트하기가 더 힘들지요. 저희 병원에도 20대 환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각각 증세는 다르지만 원인은 다 같아요. 서른이 다 되가는데 여전히 준비만 하고 있단 말이에요.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시기에……. 안타깝죠. 시대적인 문제는 시대가 바뀌면 해결되지만 상처는 고스란히 남지요.

조금 다른 이야긴데, 요즘 20대들을 보면 ‘지연만족’에 취약한 것 같아요. 이것도 앞에서 이야기한 형제가 없이 자란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출산율이 줄면서 엄마가 아이 하나에 집중하면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들이 너무 많은 걸 빨리 해줘요. 요구만 하면 다 들어주고, 어떨 때는 요구도 하기 전에 들어주거든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장난감이 가지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바로 사주는 부모는 없었어요. 그렇게 기다린 후에 얻은 장난감에 대한 만족감과 애착은 갖고 싶을 때 바로 받은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런 경험들이 지금 20대들에겐 없어요. 그래서 좌절도 더 심하게 하고, 거절에 더 많이 상처받고, 쉽게 싫증도 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에 대한 평가도 떨어져요.


원하는 것을 쉽고 빠르게 얻는데도 자존감이 떨어지나요?

떨어져요. 왜냐하면 오래 참고 기다렸다가 뭔가를 얻은 경험을 한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했을 때 ‘다음에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항상 남들과의 관계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자룁감은 오히려 떨어지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기준은 뭔가요?

‘일하며 사랑하며 즐기며’죠. 정신병을 규정하긴 정말 힘들어요. 정신과 수업 첫날에 저는 정말 갈등을 많이 했어요. 모든 병이 다 제 얘기 같은 거예요. 왜 그러냐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정상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정상적인 사람이에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이, 예를 들면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시점을 결정하는 게 일반인들에게는 참 어려운데요. 심리학 책을 읽다 보면 거기에 있는 사례들이 다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혹시 나 정신병이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 분들도 많으시거든요.

먼저 인간에게는 자정 능력이 있어서 웬만한 정신적인 문제는 스스로 치료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너무 과신해도 안 되겠지요.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필요해요. 좋은 친구와 멘토가 필요합니다. 좋은 정신과 의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웃음)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 올 때는 이런 노력을 해도 안 될 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날들이 지속되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입니다.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내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느낄 때 치료가 필요합니다.


책에서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쓰셨는데요. ‘정신과 의사도 평범한 아빠처럼 아들과 그런 갈등을 겪고 관계가 잘 유지되지 않아 힘들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도 진료실을 나가는 순간 평범한 고민을 가진 인간이니까요. 그 부분을 쓰면서 필요한 건 노력이지 완벽함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남편이 정신과 의사니 얼마나 잘 이해해 주겠냐고 주변에서 말하면 아내는 그래요. “그 사람은 집에 들어오면 영업 끝나.” 제가 집에 가서도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래선 살 수가 없죠.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해 주시는 충고가 있으신가요?

저는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 줍니다. 강해져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고 자기 삶을 돌보는 쪽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강해지기 위해선 끊임없이 뭔가를 취해야 하지만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항상 뭔가를 버려야 하지요. 그렇게 내려놓고, 버리고, 돌아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내가 생각한 행복이었나?’ 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사회가 그런 여유를 점점 더 앗아가죠. 거기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해요. 삶을 즐기고 누리고, 그러면서도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젊었을 때부터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현대인들이 가지는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들은 해결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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