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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콘서트보다 황홀했고 낭독회보다 뜨거웠던 현장 - 김연수 ‘로큰롤 파티’ with 더 문샤이너스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생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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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화가 왔습니다. 김연수의 소설을, 그리고 문샤이너스의 앨범을 끼고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자마자, “어땠어?”를 속사포로 세 번 외칩니다. “좋았지.” “뭐가 좋았어? 어떻게 좋았어? 얼마나 좋았어?” “음, 누구누구가 나와서 이 곡 저 곡을 불렀지.”라고 대답했더니 “그런 것 말고.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말해봐. 어땠냐구?”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화가 왔습니다. 김연수의 소설을, 그리고 문샤이너스의 앨범을 끼고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자마자, “어땠어?”를 속사포로 세 번 외칩니다. “좋았지.” “뭐가 좋았어? 어떻게 좋았어? 얼마나 좋았어?” “음, 누구누구가 나와서 이 곡 저 곡을 불렀지.”라고 대답했더니 “그런 것 말고.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말해봐. 어땠냐구?”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날 미처 전화 통화로 다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 엄청나게 수다스럽고 믿을 수 없게 주관적인 파티의 현장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로큰롤 파티에 온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로큰롤 파티’라고 발음하기만 해도 들썩들썩 어딘가 흔들어야 할 것 같은, 이 매력적인 파티가 12월 8일 저녁,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렸습니다. 그 라이브홀은 처음이었는데, 관객과 무대와의 거리가 좁아 한층 밀착되어 있는 그 공간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눈부신 조명을 쏘아대고 있었는데, 마치 제가 공연을 하러 이곳에 들어선 것처럼 떨리더군요. 무대 위에는 가지런히 놓인 기타들이 매끈한 등판을 뽐내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드럼의 심벌 위에서는 먼지마저도 파르르 떨리는 듯했지요. 네, 폭풍전야 같았어요. 공연 시간이 점점 다가왔고, 핑크빛 소설책을 무릎 위에 올려둔 몇몇 독자들은 책을 펼쳐보기도 하고, 책 표지를 쓰다듬기도 했어요. 잔잔하게 깔리던 배경음악이 조금씩 고조될수록, 사람들은 긴장감을 참기 어렵다는 듯 저마다 이야기를 뱉어내기 시작했지요. 김연수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문샤이너스에 대한,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라이브홀을 부유하고 있었어요. 언제나 최고의 순간은 바라던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이랍니다. 김연수 작가님의 말대로, 좋은 순간은 언제나 재빨리 흘러버리기 마련이니까, 정작 우리가 가장 즐거울 수 있는 때는 기다리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인 셈이지요.

이날 사회를 맡으신 음악평론가 김작가 님입니다.

1.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름을 불러봤어

드디어, 어두운 무대 위로 누군가 올라왔습니다. 그림자처럼 드러나는 그의 체격을 보아하니 작가님이나 문샤이너스는 아닌 것 같군요. 음악평론가 김작가, 사회를 맡은 그가 오늘 파티의 문을 열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앉아서 이분들 공연을 즐기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첫 무대는 공지했던 대로 ‘깜짝 놀랄 만한 게스트’,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무대였습니다. 무조건 라이브로 ‘봐야’ 한다는 그들, 한마디로 (링거 없이는 끝까지 즐기기 힘들다는) ‘탈진 로큰롤, 초우주 개라지 록그룹 싸운드!’ 문샤이너스와는 영원한 우정의 게스트인 그들이 로큰롤 파티에 빠질 수 없지요. 무대에 오른 박종현 군은 의미심장하게 첫마디를 떼었습니다. “조용하게 시작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파티는 시작부터 후끈했답니다.

라이브홀에는 엄청난 로큰롤 ‘싸운드’가 투하되었어요. 기타 줄을 튕기자마자 무대는 진동을 시작했고요. 워밍업 따윈 없었습니다. 그들의 머리는 쉴 새 없이 흔들렸고, 관객들은 조금씩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어요. ‘갤럭시 익스프레스’ 하면 퍼포먼스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그들에게 기타는 품어 장전하는 총이 되었다가, 머리 위로 넘겨 깃발이 되고, 바이올린이 되었습니다. 기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밴드, 심지어 (그 유명하다던) 이빨로 기타 줄 뜯는 광경까지, 저희는 볼 수 있었습니다. 와우, 환호는 물론이고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지요.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마치 엄청난 속도의 롤러코스터 같았어요. 저는 그리고 객석은 신나 있었어요.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솟구치는 쏘울을 표현해냈지요. 기타로, 때론 표정으로!

갤럭시 익스프레스, 소문만큼(!) 화려하고 뜨거운 무대!

오늘밤 달이 뜨면 모두 거리로 나와
적막한 이 거리에 불꽃축제를 벌이네

온통 붉은 빛이 밤하늘을 수놓네
커다란 소리가 이 거리를 뒤엎네

- 「Midnight Cremator」


음악은 곧 그들의 표정이에요. 잦아들면 잦아드는 대로, 내지르면 지르는 대로 달라지는 박종현 군과 이주현 군의 실룩실룩한 표정의 변화가 눈을 뗄 수 없게 하더이다. 이 또한 무대와 가까운 라이브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겠지요. 이주현 군의 현란한 마무리 퍼포먼스가 지나고, 서서히 무대 위에서 막이 내려오는데도 기타 소리가 멎지 않습니다. 쏴아, 한 차례 거대한 해일이 지나가고 난 다음의 풍경. 다음 무대가 준비되는 가운데, 다들 십 대 소녀들처럼 상기된 볼로 옆 사람을 부여잡고, 감탄사가 대부분인 소감을 털어놓고 있었어요. 바닥부터 열기는 점점 올라가고,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우리들은 그걸 말로 표현해낼 수밖에 없었지요. 들썩들썩. 두근두근.

2. 뭘 더 바래 눈치도 없이

“제가 음악 콘서트를 다닌 지 십 년째 됩니다. 매주에 두세 번 관람을 하는데, 이런 식의 공연 분위기는 처음이네요. 대략 언니네 이발관, 루시드 폴 공연에서나 볼 법한 객석 분위기예요. 공연이 진행될수록 호응도가 올라가고는 있지만, 아직 델리 스파이스 공연 정도랄까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갤럭시 익스프레스도 넘지 못하는 벽이 있구나 싶습니다. 로큰롤 파티보다는 로큰롤 낭독회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요? (웃음) 자, 이제 소설계의 아이돌 김연수 작가님……을 소개하기 앞서 분위기를 좀 더 띄워볼까요. 홍대 앞 레알 마드리드급 밴드죠. 더 문샤이너스입니다.”

화려한 등장으로, 시작부터 여심, 팬심 사로 잡은 문샤이너스

조명 아래, 문샤이너스. 밴드계의 패션 리더답게 ‘간지’가 잘잘 흐르는 검은 수트‘빨’ 뽐내십니다. “록 밴드로서 자기만의 이미지를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선 록 밴드로서 애티튜드를 표현해주는, 밴드만의 유니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도 차승우 씨가 이전에 말한 바 있듯 이미 ‘문샤이너스’는 다른 그룹들과 차별화된 비주얼, 선사하십니다. 무대는 금방 쏘 핫, 달아오르고, 망설일 것도 없이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띄운 오리 보트를 타고 우리는 우주로 갑니다.

화려한 무대 매너와 더불어 네 신사의 흥겨운 그루브는 마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이 환상적이었어요. 우물을 길어 올리는 듯,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기타 소리가 이곳의 밤을 녹입니다. 서정적이었다가도 폭발음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로큰롤! 관객들은 모두 각자의 리듬에 맞춰 흔들거리는 메트로놈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에 김작가, 드디어 파티 개시(?)를 선언합니다. “로큰롤 낭독회에서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됐구나 싶습니다. (웃음)” 갑자기 큰 환호성이 이어졌는데 파티 선언 때문에, 그랬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김작가의 뒤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김연수 작가님’이 등장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계의 아이돌(!), 김연수 작가님

“사실, 저는 소설가나 시인이라고 하면 폐병 앓는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요. (웃음) 김연수 작가님의 오늘 의상은 마치 런던 거리를 활보하다 막 도착하신 분 같습니다. 막 공연을 마치고 온 (로큰롤보다는) 라큰롤 스타 같으신데요. 오늘, 문샤이너스를 공연 파트너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상기된 표정의 김연수 작가님, 쑥스러운 미소, 상콤하게 날리시더이다. “집에서 입고 나온 그대로고, 항상 이렇게 입고 다닙니다. (뒤로 돌며) 등에는 이렇게 써 있어요.” 으잉? 노오란 별이 큼직하게 박혀 있는 점퍼를 입고 한 바퀴 도시는 작가님. 김작가가 “문샤이너스는요!” 재차 묻자, 김연수 작가님 왈, “네? 제가 선정을 했다구요?” 작가님 소울은 아직 런던을 활보 중인지, 엉뚱한 대답에 객석은 벌써 몇 차례 큰 웃음이 와르르 쏟아집니다. 오늘 공연. 이례적인 김연수 작가와 더 문샤이너스의 만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다시피, 문샤이너스 앨범에 실린 「눈치도 없이」 곡의 가사를 김연수 작가님이 쓰신 거죠. 30곡이 2CD로 풍성하게 담긴, 그야말로 4년간 활동했던 문샤이너스의 음악을 추수한 앨범 <모험광백서>. 각각의 곡이 로큰롤 매력 물씬 뿜어내고 있지만, 「눈치도 없이」, 독특한 가사, 후련한 리듬의 그 제목, 자꾸만 되뇌게 되네요. 보컬 차승우를 좋아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는 김연수 작가님은, “차승우 씨에게 어울리는 가사를 썼다”고 말했습니다.

바지는 벌써 젖어 버렸네
우산을 받쳐도 몰아치네
불어난 한강물엔 돼지들
한때의 굶주렸던 너와 나

넌 날 몰라 뭘 더 바래 눈치도 없이

여름도 갈 때까지 갔는데
이 비는 그칠 것 같지 않네
침수된 도로는 나의 강물
그 정돈 알고 있었어야지

넌 날 몰라 뭘 더 바래 눈치도 없이

바지를 찔러대는 검은 비
눈알을 찔러대는 검은 비

넌 날 몰라 뭘 더 바래 눈치도 없이

-
「눈치도 없이」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손을 내저어야 할 것만 같은 이 노래. 특히 후렴구의 ‘눈치도 없이~’라고 내뱉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습니다. 김작가의 평은 이렇습니다. “가사가 흥건하더라구요. 음습한 것이.” 이에 김연수 작가님 왈, “그러니까 차승우 씨에게 맞는 가사를 쓰다 보니.” (좌중 웃음) 웬만한 예능 프로 못지않게 익살스러운 토크쇼가 양념처럼 곁들여진, 그야말로 흥이 그칠 새 없는 파티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김연수 작가님은 음악 쪽에도 인연이 깊습니다. 그만큼 애정도 많고요. 실제로 글 쓸 때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도 했는데, 이번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의 말에는 작업 중에 영감을 준 음악들을 직접 소개하기도 하셨습니다. 요즘도 한창 채널예스에 연재하시는 칼럼도, 매력 있는 책과 어우러질 만한 음악을 소개하는 ‘김연수의 文音親交 프로젝트’고요!(☞보러 가기) 이거 로큰롤 파티뿐 아니라 여느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오신다고 해도 어색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평론가인 김작가도 예전에 ‘대중음악평론가 시절’의 김연수 작가님을 알고 계시더라고요.

예전에 잡지에다가 몇 번 대중음악평론을 썼더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대중음악평론가가 됩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일 두 개만 꼽으라면 방위 시절 대대장 관사당번이 돼 날마다 요리를 만든 일과 대중음악평론가가 된 일이다. 그래서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랬더니 답이 떠올랐다. 이제 내가 어떻게 대중음악평론가가 됐는지 여러분에게 가르쳐드리겠다.(『청춘의 문장들』, p.103)

워워, 여기에다 대중음악평론가가 되는 비법을 옮길 생각은 결코 없답니다.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소설과는 또 다른 감칠맛이 있는 수필, 『청춘의 문장들』 일독을 권장합니다. 무대 위에 등장하신 김연수 작가님. 로큰롤 파티의 주인공으로서 몹가 준비하신 게 있을 텐데요. 관객들의 눈동자에서 발산하는 관심의 눈빛이 조명보다 뜨겁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청춘의 문장들, 강화에 대하여

사진으로 보기에는~ 이날, 한 곡조 뽑으신 걸까요?

“그전에 설명을 해야겠어요. 제가 여기서 노래하고 싶지만, 너무 잘하는 분이 계셔서 노래를 하면 안 돼요. (웃음)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에서 소설을 한 편을 읽을 수도 없잖아요. 어젯밤에 급조해서 생각을 했는데, 제가 원래 시로 등단을 했잖아요. 등단작인 「강화에 대하여」를 낭독해볼까 합니다. 최초로 낭독하는 걸 거예요.” 네, 정말 노래 부르는 것 못지않게 설렜습니다. “어제 읽어봤는데, 장장 10분 정도 될 거예요. (웃음)” 무대 가운데로 서신 작가님, 그대로 노래를 한 곡 뽑으신대도 어색할 것 없는 포오즈로, 긴 마이크 앞에 서자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낭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강화에 대하여」 말입니다.

오래 전부터 강화에 대해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그날, 라이브홀에 모였던 ‘굉장한 경쟁률을 뚫고 파티에 초대된’ 관객들은, 그렇게 김연수의 첫 문장을 들었더랬습니다. 장장 넉 장으로 출력된 인쇄물, 그 위에 강화에 대하여 쓰여 있는 시를 응시하시는 작가님은 종종 말을 멈추었다가, 잠깐 떨리는 숨을 고르다가, 한번 북받치는 듯한 감정을 억누르셨다가 그렇게 시를 읽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강화에 대하여 들었고, 생각했습니다. 서정적인 배경음악과 더불어 진지한 작가님의 음성에 객석은 이내 젖어 들었습니다. 라이브홀은 배경음악 사이사이로 관객들의 숨죽인 소리와, 작가님이 가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으로 채워졌습니다.

전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혁명적으로 또 운명적으로

그렇게 십여 분의 숨죽인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시로 들려오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벽을 향해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며 시를 쓰고 있는 작은 등이 떠올랐습니다. 20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그때에, 시를 쓰고 있는 작은 등의 김연수를 상상해보았습니다. 비록 상상이었지만 으레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연상하기 어려운, 아주 색다른 풍경과 접속할 수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글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지.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젊었을 때는 몰랐던 일들을 깨닫게 됐으니까. 그때마다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했어. 아마도 가장 최초에 쓴 글이 그 일에 관해 가장 진실된 기록일 수 있겠지만, 그 진실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 합리적이라면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쓴 이야기가 되겠지.”(p.222)라던,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에 등장하는 리 선생의 말이 떠오른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요.

쓰레기의 섬, 눈들의 무덤, 그리고 세계의 끝

그땐 결코 예상할 수 없었겠지만, 여기 오늘의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이어져 있는 듯, 예언하는 듯한 마지막 단어가 묘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그때의 김연수가 짐작한 세계의 끝과 지금의 그가 상상하는 세계의 끝은 같은 모습일까요, 다른 모습일까요. 시 낭송은 그의 등단 시절에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관통하는, 그런 십여 분간이었습니다.

“오늘밤은 놀기 되게 좋은 밤인 것 같아요. 신나게 노시길 바라요.”라고 작가님은 조금은 달뜬 얼굴로, 예의 살인미소를 지으시며 (김작가 표현에 의하면) “가슴을 후벼 파는 시낭송”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어 더욱 특별한 게스트와의 만남이 준비되었습니다. 문샤이너스의 우정의 게스트가 갤럭시 익스프레스라면, 김연수 작가님의 우정의 게스트로는? 네, 그렇습니다. 김중혁 작가님 나오셨더랬지요. “소설 쓰는 김중혁입니다.” 객석에서 던지는 환호가 주인공 못지않았습니다. “와야 할 자리는 아닌데 (웃음), 오늘은 뜻 깊은 행사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관련해서는 마지막 행사입니다. 그동안 고생하신 문학동네 관계자 분들께 감사 드리러 나왔습니다.” (좌중 웃음) 마치 매니저라도 되는 양 ‘정중하게’ 인사하시는 작가님 포즈에 객석은 웃음이 터져 야단입니다. “시를 쓰지도 않고, 음악을 하지도 않아서, 말이나 하고 들어가려고요. 지금 밖에서 제 책 『악?들? 도서관』 만 원짜리를, 나온 지 일 년이 넘어서 40퍼센트 할인하고 있습니다. 6,000원입니다. (좌중 웃음) 사실 나와서 노래를 부를까 했는데(객석에서의 환호성!) 그러지 말자 생각했습니다. 제 책이 곧 나오니까요, 또 그때 독자와의 만남을 마련해서 부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좌중 웃음)

4. 김천의 끝, 동네 친구

이날 김중혁 작가님, 특유의 비트가 살아 날뛰는 말발 말고도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었는데요. 바로 독특한 카키색 의상이었습니다. 번쩍번쩍한 코트를 꽉 잠그고 등장했는데, 이날 작열하는 조명이 떠 있는 무대, 꽤 더웠거든요. “런던 갔을 때 비싼 파운드 주고 샀어요. 싱가폴 출신 아티스트가 만든 옷이에요.” 역시 ‘보통’ 옷이 아니었군요. “워낙 뜨거워서 입고 있는 겉옷도 벗고 싶은 지경인데, 코트까지 꽉 껴입고 나오신 작가님”의 패션 센스에 김작가가 감탄(?)하자, 김중혁 작가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이 코트 안에는 뉴욕에서 산 티셔츠가 있습니다.”

직접 ‘뉴욕’ 패션 인증해주시는 김중혁 작가님

“저 뒤에서 시 낭송 들으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음악도 직접 준비해 오신 거죠? ‘어, 으’ 경상도 발음 구분도 안 되는데 뒤에서 듣고 있으려니, (웃음)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왜 표정이, 막 거의 울 것 같지 않았어요? (좌중 폭소) 그래서 저는 문샤이너스에게 최대한 시간을 할당했으면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다는 두 분, 그 시간 속에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한껏 포진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둘이서 고딩 때 전지를 두고 시 쓰기 놀이를 했어요. ‘나무에 대해 써보도록 하자’ 하고 각자 시를 쓰고, ‘이번엔 구름에 대해 써보자’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썼으나 김연수 작가는 시인으로 데뷔를 하고, 전 못 하고 (웃음) 같은 동네 사는 커피 친구, 술친구예요. 비슷한 일을 하니까 좋죠. 같이 험담하기도 좋고. (웃음)”

소설은 작가와 닮기 마련입니다. 콕 집어 소설 속 인물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소설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는 실제 작가님의 것이 반영되어 있지요. 그래서 독자 만남이 더 설레는 게 아닐까요. 재미있게 읽은 소설 속 그 풍경이 혹은 캐릭터들이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더 생생하게, 현실감 있게 살아나는 느낌! 김연수 작가와 김중혁 작가와의 만남에도 바로 그런 묘미가 넘쳤습니다. 김연수 작가가 마음을 끄는 문장들로 읽을 때마다 설레게 하는 소설과 닮았다면, 비트를 쏟아내듯 만담을 하며 한마디로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김중혁 작가는 저자의 두 권의 소설, 그대로였답니다. 김중혁 작가님의 말들은 온갖 아이디어 넘치는 도구(소재)들이 등장하는 『펭귄뉴스』, 온갖 마니아들의 천국 『악기들의 도서관』 속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것 같고, 다음 소설책 어디에선가 읽게 될 구절 같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제가 행사 전에 아이디어를 하나 냈어요. 공연장 저 뒤 한가운데에 투명한 아크릴 박스를 하나 세워두고, 거기에 김연수를 넣어 놓는 거예요. 관객들이 무대 앞에서 문샤이너스도 보고, 고개를 돌리면 김연수도 보게 하자, 했는데 문학동네 측의 제작비 문제로 무산되었습니다.” 아크릴 상자 속의 김연수 작가님이라니, 상상이 되시나요? 어느 새 이곳은 로큰롤 토크쇼. 아쉽게도 공연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김중혁 작가님과는 작별을 고했습니다.

5. 밤은 노래한다

“김중혁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앤 원래 저런다는 (친근한) 작가님의 마무리 코멘트. 아니, 마무리라니요? 정신차려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훌쩍 흘렀습니다. “거의 다 좋은 시간은 금방 끝이 나잖아요. 전 여기 올 때 소리를 지르려고 왔어요. 근데 쑥스러워서 못 하겠어요.(잠시) ‘젊음을 불태우세요.’” 외침보다 더 큰 속삭임을 던지시고 퇴장하시는 김연수 작가님. 아쉬울 틈 없이 다시 문샤이너스가 파?쟀 ??을 향해 시동을 겁니다. “언어유희의 달인들이라, 제가 껴들 틈이 없네요. 마지막 시간인데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차차의 말에 온몸을 사로잡은 아쉬움, 외침으로 뿜어봅니다. “원래 서너 곡이 예정되어 있는데, 오늘 밤 쭉쭉 가보죠.” 차차의 달콤한 말에 관객들 쭉쭉 일어섭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 결론을 내지 않을 수가 없어 / 이 밤을 그대와 보낼 수 있다면 Oh, baby! / I'll make you hot all night long” - 「목요일의 연인」

문샤이너스의 로큰롤 파티, 2막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한밤의 히치하이커」가 되어 한목소리로 「모험광백서」를 읊고 말로만 들었던 「눈치도 없이」를 ‘떼창’해 봅니다. 반응이 좋았던 「남극의 바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위엔 파란 조명이 넘실거리고, 객석은 파도처럼 출렁거렸습니다. 이내 붉은 조명 따라 무대에는 석양이 드리워지고, 어쿠스틱 기타 소리 잦아듭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더랬습니다. “보잘것없는 청춘의 하루가 / 이렇게 저물어 가는 이 밤에도’ 저와 관객들은 ‘기분이 좋아 / 너무나 좋아 /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밤은 오로지 그대만을 위해! 아낌없이 뜨거웠던 무대, 문샤이너스

라이브홀을 벗어났는데도 한참 흥에 겨운 발바닥이 여전히 스텝을 밟고 있었고, 박수를 치고 흔들어대느라 어깻죽지에서 뻐근함이 느껴졌습니다. 행여 미처 흥도 풀지 못하고 돌아갈 관객들을 위해 문샤이너스가 한참이나 밤을 달구어줬는데도 발걸음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역시 연말엔 콘서트다!’를 외치며, “오리 보트를 타고서 우주로 가네 / 나홀로 남겨진 지구의 외로움이 / 밤이나 낮이나 가려진 시간들”을 흥얼거리며, 홍대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차차의 반짝거리며 리듬을 타던 은빛 운동화가 오늘 본 로큰롤 공연의 상징처럼 떠올랐고, 김연수 작가님의 첫 문장을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강화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강화에 대해” 그리고 이 글의 첫 문장을 고민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로큰롤 파티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로큰롤 파티에 대해. 다시 펼쳐본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펼쳐, 아래의 글을 읽으며 저는 오늘의 파티를 마무리했습니다. 문 샤이너스의 첫 앨범의 첫 곡을 들으며, 작가님의 첫 문장을 생각하며 그리고 내가 혹은 누군가가 쓰게 될 미래의 첫 문장을 떠올려보며 천천히 집에 가는 길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문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생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아마도 이런 날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시간에 늦는다고 말하며 그 교차로를 지나가던 그 순간부터”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그로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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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저10,800원(10% + 5%)

한국문학의 영토를 넓혀가는 새로운 상상력의 촉수 김연수 신작 소설집!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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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샤이너스 (The Moonshiners) - 冒險狂白書 (모험광백서)

14,900원(19% + 1%)

로큰롤이 촌스럽다는 편견은 버려라! '결성 자체가 사건'이라는 슈퍼 멤버들로 이뤄져 그 누구보다 강렬한 느낌표를 선사하는 더 문샤이너스! 압도적인 연주와 완벽한 팀워크, 화려한 무대매너로 인디라이브 씬의 독보적인 하이클래스로 자리잡은 화제의 그룹!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몸속에서 콸콸 쏟아져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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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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