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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후미노리 “악(惡)으로도 인간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 『악과 가면의 룰』

소설 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는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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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공간을 넘어 반복되는 거대한 악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 『악과 가면의 룰』 출간 기념으로 한국을 찾은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를 채널예스가 만났다.


“악을 마주보는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교도관인 주인공이 열 여덟짜리 살인마를 감독하며 인간과 생명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소설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폭력에 완전히 노출된 인간의 공포를 그린 『흙 속의 아이』, 천재 소매치기와 절대 악의 화신 기자키의 승부를 다루고 있는 소설 『쓰리』까지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악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소설로 꾸준히 빚어내고 있는 일본의 젊은 작가다.

77년생 이 젊은 작가는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아냈다. 매 작품 일본의 유수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흙 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 상,『차광』으로 노마문예상, 『쓰리』로 오에겐자부로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묵직한 문제의식은 일찌감치 문단 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서스펜스가 녹아 들어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 시공간을 넘어 반복되는 거대한 악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 『악과 가면의 룰』 출간 기념으로 한국을 찾은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를 채널예스가 만났다. “한국분들 정말 따뜻하다. 무엇보다 한국 요리 때문에 올 때 마다 즐겁다. 간장게장, 비빔밥, 김치를 정말 좋아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진지한 질문에는 새카만 눈동자를 빛내며 대답하다가도, 곧잘 유머를 던지며 미소를 지었다. 소설 만큼이나 그는 얼굴에도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는 작가였다.


“이야기의 힘으로 만화를 이기고 싶다”


신작 『악과 가면의 룰』은 아버지가 만든 지옥 속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내려고 하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다. 주인공인 구키 후미히로는 ‘이 세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인 ‘사(邪)’의 계보를 잇기 위해 죽음이 가까운 아버지가 계획적으로 만든 아이였다. 구키 후미히로는 결국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악의 계보를 끊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아버지가 자식을 ‘세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로 만든다는 설정은 납득이 쉬이 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전쟁 세대, 군 산업으로 재벌이 된 가문을 배경으로,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죽여야 하는가? 어떻게 악을 끊어낼 것인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교차되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 작가는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순문학의 깊이와 서스펜스, 엔터테인먼트가 양립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소설 세계가 가진 매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순문학이더라도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재미가 있어야 하고, 이야기의 재미를 통해 만화를 이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모든 문화가 망가(일본 만화)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만큼 전 세대를 아울러 망가를 즐기는 일본 문화 환경을 떠올려본다면, 후미노리의 말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한 각오다.


“악(惡)으로도 인간을 보여줄 수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 분쟁과 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소식들을 들으며 질문이 생겼다. 단지 이 시대의 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전쟁과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9.11 이후 그런 흐름이 가속화 되었다. 세계의 룰이 악이 되면 무섭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카무라 후미노리라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 비극과 싸워보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살인자, 절대 악, 테러 집단 등 그의 소설 속에는 악과 비극이 어떤 비유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분명한 실체, 대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그 문제를 에둘러 가지 않고, 문장으로 응시한다.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그래도 역시 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세상에 의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그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가 한결같이 악에 천착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인간은 선(善)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선만으로 살 수 없고, 궁지에 몰리면 누구라도 악의 본성을 꺼낸다. 선을 통해 인간을 설명할 수 있지만, 반대로 악을 통해 인간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후자의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더불어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은 부모님 같은 윗세대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걸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었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겪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나카무라 후미노리 작가는 부모님에게서 어떤 점을 물려받았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렸을 때 좋지 않은 일이 많아서,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


“사사로운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구나”


그의 소설은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잘 녹여냈다’는 평을 받는다. 이를 위해서 후미노리는 “구상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장이 넘어갈 때마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교차된다. 대중문학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촘촘한 구성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시키려고 애쓴다.”

그는 그럼에도 순문학적인 전통을 지닌 작가다. 그가 지금의 작법을 갖게 된 것 역시 유수한 고전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리스 신화는 쉽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그리스 신화가 갖고 있는 이야기성이 우수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작품은 어렵지만 그의 소설 속에는 서스펜스가 가미되어 있어,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후쿠시마 대학에서 행정 사회학 공부를 하던 소년은 이렇게 소설의 세계에 눈을 떴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었다. 대학시절에 대해 묻자 “대학 다닐 때,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않아 행정사회학의 영향을 받은 것은 거의 없다”며 웃었다. 그는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작가의 말에서 ‘소설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도 소설은 이 청년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던 게 분명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사사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운 좋게 그런 작품을 만났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이 특히 그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세계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의문을 가졌다.” 그가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어렴풋이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그는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소설을 통해 닿고 싶은 지점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는 어떻게든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젊은 작가로 사는 삶은 국내만큼이나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젊은 작가라면 윗 세대 작가를 염두에 두지 말고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은 작품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이 좋게 의뢰도 많고, 출간도 많이 되는 편이지만, 많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후배들도 많다. 젊은 작가들은 스스로 어떻게든 결단해야만 한다.” 그 역시 작가가 되기 전에는 어려운 시절을 겪어냈고, 나름의 결단과 선택을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걸어왔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식비와 학교 강의비를 해결하는 일도 힘들었다. 가스, 수도, 전화가 전부 끊겼던 때도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그것도 프로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의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책을 좋아하기만 했지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졸업할 즈음, 더 이상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든 정해야 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체질에 잘 맞았다. 인생은 한번뿐이니까, 여기에 걸어보자고 생각했고 이렇게 지금까지 소설을 쓰고 있다.”


“방금 어깨에서 소리 난 거 들었나? 요즘에 어깨가 뭉쳐서 고민이다.” 그는 어깨를 움직여 보이며 말했다. 오랜 시간 글을 써서 어깨에 탈이 났다. “요새는 일이 많아서 자기 직전까지 일을 한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웃음)” 작가로서 ‘젊음’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나카무라 후미노리에게 YES24 독자들을 위한 인사말을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열심히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웃음)”

그는 활달한 성격은 아닌 듯 보였지만, 인터뷰 내내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믿음 같았다. 스스로 성실한 시간을 보냈음을 알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믿음 말이다. 그가 YES24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인사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또박또박 단단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영상에서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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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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