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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법과 양심』 펴내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정진과 결단을 요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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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두 가지가 있어요. ‘법의 양심’과 ‘개인의 양심’.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법 전체의 정신에 따라서 행동해야 하고, 정 안 될 경우에 자신의 양심을 발휘해야 하지요. 그건 죽음을 각오하는 결심이에요. (2018.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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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그의 사상은 우리 문학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큰 물줄기가 되어 흘러왔다. 문학평론가로서 한국문학비평에 기여했고, 진영 논리에 휘둘리기를 거부한 채 이분법 너머의 것들을 말했다. 동서고금의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면서 치열한 이성적 사유를 거친 끝에, 그의 글들은 탄생했다. 『법과 양심』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김우창 교수가 강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엮었다. 헌법재판소, 사법정책연구원, 사법연수원 등 사법기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강연이 주를 이루는 까닭에, 자연스레 주제는 ‘법’과 ‘양심’이 됐다. 이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회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법과 양심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 하는가’ 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난해 출간된 책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난 50여 년간 저자의 사상이 녹슬지 않은 채 이어져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악인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양심의 인간은 그 양심이 이데올로기적일 때 다른 양심의 인간에 대해 잔인하다”, “좋은 사회란 진실의 사회라기보다는 인간적 현실의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룬 사회이다” 같은 말들이 그러하다. 인간사회에서 끝없이 성찰되어야 할 것들이다.

 

김우창 교수는 1965년 <청맥>지에 「엘리어트의 예」로 등단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미국문명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거쳐 고려대와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공공지식인, 문명비평가, 문화사가, 문학이론가, 철학자로서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사상적 깊이를 보여줬다. 저서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 , 『지상의 척도』 , 『심미적 이성의 탐구』, 『정의와 정의의 조건』,  『깊은 마음의 생태학』  등이 있으며, 저자의 모든 글을 모은 『김우창 전집』 이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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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 청탁’은 죄목이 될 수 있나


이번 책에는 사법 기관에서 강연하신 내용들이 실려 있습니다. 법학자나 법조인이 아닌 인문학자를 초청해서 법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법과 관련된 영역에) 객관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래서 기록을 했던 건데요. 사법정책연구원의 최송화 교수가 저를 초청해서 강연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분이 보실 때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에 저를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할 때 ‘내 편이냐, 저쪽 편이냐’,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본 분들이 굉장히 적어서 그런 말들이 가닿지 않은 것 같아요.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실 때가 많더라고요. 이론이 아닌 문학으로써 접근할 때의 이점이 있나요?


문학, 법, 정치, 철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어야지요. 그것이 사회의 문화를 이루고 있어야지, 다 분리돼 있으면 안 되지요. 법은 두 가지로 우리와 관계가 있어요. 하나는, 범법을 하지 않는 한 법은 나와 상관이 없어요. 아마 일생동안 법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예요.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니까 존재한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지요. 그러니까 법이라는 건 우리 일상생활과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법을 하는 사람들도 사람 사는 문제를 알아야지, 그것이 없이는 법이 존재할 수 없어요. 간단한 판결은 가능하겠지요.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이런 건 판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정말 깊게 생각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왜 죽이느냐’ 이런 질문도 해야 하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죽이는 게 괜찮다고 하지요. 가령 사형을 집행한다든지, 전쟁이 났을 때 적을 죽인다든지. 그러면 어떤 때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인지, 그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지요.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법 조항과 판례를 잘 아는 게 전부가 아니고요.


깊이 생각하는 법관이라면 그런 감각이 있어야지요. 그런 배경이 자신한테 없더라도 법 전체에 있어야 하고요. 시카고대학 로스쿨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교수가 있어요. 그 분의 원래 전공이 희랍 철학, 희랍에서 전파된 헬레니즘 철학이에요. 그런 분을 법과 대학에서 모셔간 거지요. 법학 교육의 배경에 철학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게 정상적인 나라이지, 법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지요. 이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사실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무엇인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이 구형됐잖아요. 실제 그 케이스를 잘 보지 않아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문에 나온 걸 보면 ‘묵시적 청탁’이 큰 죄로 되어 있어요. ‘국정농단’ 하고. 그런데 국정농단이라는 게 법에 없을 거예요. 또 묵시적 청탁이라고 하면 은근히 압력을 줬다는 건데, 그렇게 하면 죄목이 안 되지요. 실제로 판결문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법 제도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건전한 상식과 양식이 있는 사회냐는 거예요. 아마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못은 있을 거예요.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도덕적 윤리적 책임이지요. 이건 죄로 다룰 수 있지만 법으로 재판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여론이나 양식 있는 사람들한테 책임을 묻고, 거기에 대해서 본인이 답변할 수 있어야지요. 법은 어디까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지, 증거 없이 재판한다는 건 불가능하지요.

 

책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법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행동이나 언어에 의하여서만,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말하지 않는 것, 행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쓰셨죠. 법에 의한 제재나 판단, 처벌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최소한이라기보다도 정당한 근거와 절차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절차는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제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관례로써 수립이 돼 있어야지요.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요. 법관들이 다 자기 양심에 따라 재판하게 되면 법 제도라는 게 없어져 버리잖아요. 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이 없어져 버리지요. 한 사람의 양심이 절대적인 건 아니거든요. 그것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절차를 정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넘어가는 판결도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 건 드문 경우이지요.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형량을 더 늘려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특히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일 때 그렇죠. 이 또한 양심에서 나온 목소리이고, 동시에 현재의 법을 넘어서자고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시나요?


그것은 정치와 사회 운동으로 이야기해야 될 일이지, 법으로 하여금 형량을 넘어서 약자를 보호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약자라는 말 자체가 우습지요.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해요. 대통령이나 청소부나 똑같은 자격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고, ‘이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니까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건 정치, 사회, 문화의 문제이지 법으로 정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할 수는 있어요. ‘여성에 대한 범죄는 특히 강하게 처벌한다’고 법으로 정하면 그대로 해야지요.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모든 계절의 사람」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계절의 사람」은 로버트 볼트가 BBC라디오의 각본으로 쓴 작품으로 토마스 모어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후 TV 각본, 연극,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의 사나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공연됐다. - 필자 주)


정의가 무엇인지, 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상이 잘 구현되어 있지요. 그건 볼트 개인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문명사회가 다 가지고 있어야 되는 규칙들이에요. 작품에서 토마스 모어가 생각하는 것도 굉장히 정확하잖아요. 법에도 맞고, 국가에도 맞고, 내 양심에도 맞는 선택을 하려고 하지요. 접합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거예요.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서 자신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요. 비겁한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법 제도나 인간 사회에서 윤리와 법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보여줘요.

 

모어는 ‘악마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로퍼라는 인물은 그를 반박하면서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모든 법의 나무를 베어낼 용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모어가 “법의 나무가 모두 베어져 없어지고 악마의 바람이 불어닥치면, 너는 어디에 숨을 것인가”라고 묻죠. 그것이 바로 초법적인 심판과 처벌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정확하지요. 로퍼는 젊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의감, 분노 의식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데, 모어는 절차에 따라서 해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절차를 존중하면 쓸데없는 ‘절차 미신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지요. 모든 사람이 적절한 인간적인 사회에서 살려면 그래야 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말한 거예요. 그게 ‘절차 망상주의’에서 나온 건 아니지요. 우리나라에 부족한 게 그거예요. 절차라는 게 거기에 얽매인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같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데, 그런 인식이 참 부족해요.

 

“정직한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부정직한 사회에서는 부정직한 사람으로 산다”고 하셨어요. “도덕적인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정진과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라고요. 법조인도 예외가 아니겠죠. 누구보다 엄중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일 거고요.


그렇지요. 양심은 두 가지가 있어요. ‘법의 양심’과 ‘개인의 양심’.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법 전체의 정신에 따라서 행동해야 하고, 정 안 될 경우에 자신의 양심을 발휘해야 하지요. 그건 죽음을 각오하는 결심이에요. 깊이 있는 법률 교육에는 이런 것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지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사 누스바움’ 교수처럼 철학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을 법과 대학에 모셔오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것 같으세요? 도덕적으로 정직하게 사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는 곳일까요?


최근에 나온 최승호 시인의 시집 제목이 『방부제가 썩는 나라』잖아요. 굉장히 살기 어려운 사회이지요. 우리나라가 개인 소득이나 GDP가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신뢰도는 OECD 국가 중에 꼴등이에요. 서로 믿지 못하고 살기 어려운 사회인 것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거예요. 거기에 맞춰서 사회 윤리나 문화, 규범이 바뀌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요. 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뀌는데 거기에 문화적으로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그런 이유를 떠올리면 너그럽게 생각할 수는 있어요.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 정책의 근본에는 두 가지가 있어야 돼요. 하나는 사회 평화예요. 모든 사람이 날마다 싸우거나 상대가 나를 해치려고 한다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적 신뢰와 평화가 있는 사회여야 하지요.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이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들의 기본에 있는 것을 한 가지 이야기하자면, 자비심이에요. 옆에서 누가 굶어죽는데 나는 날마다 진수성찬으로 먹는다면 비인간이지요. 다른 사람이 샘을 내서 내 밥을 뺏어갈 수도 있지만, 내가 자비심에서 나누어 먹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윤리적 감각을 문화 속에서 살려야 돼요. 그런 반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모든 걸 분노로 해결하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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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대의 소산이지요


‘개인의 양심’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서로의 양심을 못 믿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나는 양심적이지만, 당신도 양심적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양심을 싸움의 수단으로 생각하니까 그렇지요. ‘나는 양심적이야’라고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거예요. 양심이라는 것도 매우 복잡한 건데, 사실은 법도 그렇지요. 어떻게 시행돼야 하는지, 어떤 때에는 시행되는 게 잘못이 되는지, 이런 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그건 굉장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질 수도 있지만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면 괜찮지요.

 

정치에 있어서도 ‘나는 윤리적이다’라고 생각하는 독단이 위험할 수 있잖아요.


정치 지도자가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 왜 그러겠어요?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정의를 위해서는 이 사람을 죽여야 된다’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고 정의라는 미명 하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법 작업에 섬세한 감각이 다 들어있어야 돼요. 그러한 판단은 훈련을 통해서도 생기지만, 정상적인 사회라면 저절로 작용돼야 해요. 그것이 어려운 사회일수록 사회 전체에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이지요.

 

강연장에서 법과 관계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잖아요. 그들이 ‘양심’에 기반해서 판결을 잘 내리고 있다고 평가하세요?


그래도 엉뚱한 법을 가지고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별로 없지요. 지금 필리핀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에 관계된 사람들을 그냥 죽여 버리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그런 건 없지요. 법 절차를 존중해야 된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건 조선조 때부터 있는 전통이지요. 그래도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해당이 돼요. 정권을 잡으면 적폐청산을 말하지만,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복수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베네수엘라나 니카라과 같지는 않잖아요. 니카라과는 오르테가(다니엘 오르테가)라는 사람이 옛날에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는데, 뉴스를 보면 부패가 심하다고 해요. 옛날 부자들이 차지했던 걸 자기들이 다 차지하려고 하는 거지요. 그런 건 우리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성이 착해서도 그렇겠지만 유교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관료는 부를 축적하면 안 된다, 민생을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 검소해야 된다, 이런 건 조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생각이거든요.

 

이제는 그런 전통이 유명무실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런 정신적 전통이 온전한 상태로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완전히 없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간혹 교수님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말을 쉽게 못해서 그런 거지요. 그래서 어렵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하나는 우리가 ‘사태의 해명’에 말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요.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스타일로 말을 하지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면서.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저 사람은 저렇게 살려고 하나 보다’ 할 텐데, 우리는 ‘나라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래야 된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지요. 거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알아듣지 못해요. 나는 신문에 칼럼을 쓸 때 제목을 ‘~해야 된다’고 안 쓰거든요. 그런데 신문사에 가져가면 다 그렇게 만들어내요. ‘~해야 된다’, ‘~하라’, ‘~이 대세다’ 하는 식으로. ‘아마 원인은 이럴 것이다, 사실은 이럴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지요.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고, 다각도에서 접근하면서 가정해보는 걸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묻는 거죠.


네, 결론을 원해요. 그렇다 보니까 그냥 사실적인 이야기를 해명해서 쓰려고 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요.

 

지금까지 교수님은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학자’로 평가받아 오셨어요. 한국 사회는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점에서 힘드실 때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출세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아요. 힘든 게 하나도 없어요. 거기에 관심이 없으니까. 지금처럼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지요.

 

‘한국 인문학의 거장’, ‘우리 사회의 지성인’으로 손꼽히시잖아요.


그건 공연히 누가 만들어낸 말이지요.

 

굉장히 무거운 수식어일 수도 있겠습니다. 거대한 존재로 인정받으셨기 때문에, 그에 따라 견디셔야 하는 것들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게 사실에 안 맞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지만, 내 작업이 그렇게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 괴로울 때도 있어요.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지금 우리 사회의 발전 단계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서 더 잘하는 건 어려운 것이지요. 그건 다음 세대와 또 다음 세대에 점점 나아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생각을 깊이 한 사람도 나오고 노벨상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시대를 비판한 나도 시대의 소산인 것이지요. 내 한계도 거기에 들어있고, 우리 시대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도 완전하지 못한 것이고... 그렇게 핑계를 대지요(웃음).


 

 

법과 양심김우창 저 | 에피파니
‘사실의 객관적 구조’가 갖고 있는 필연 안에서 비슷하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삶도, 저마다의 처지에 따른 제각각의 다른 이유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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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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