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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상처는 지극히 인생에 상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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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나라는 여자”를 주제로 글을 쓰는 운동이 생기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관찰해보자는 운동 말이다. 내 상처와 내 결핍과 내 자랑과 내 특징을 잘 알아야만, 어디에 속해 있지 않아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는 완전한 개인이 탄생되는 것일 테며, 또 완전한 개인이 되어야만 완전한 사랑을 더 잘 할 수 있을 테니.

2001년 12월에 출간된 『카트린 M의 성생활』이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책은 프랑스 미술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장인 카트린 밀레가 18세부터의 자신의 성생활에 대하여 얘기한 책인데, 이 책은 바로 2001년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 되었다. 그 성생활의 스펙터클이 매우 남다르고, 섹스에 임하는 자신의 몸 상태와 느낌에 대한 정교한 묘사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 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하는 그 태도 때문이었다.

『카트린 M의 성생활』의 저자
카트린 밀레
책 속 화자는 슬퍼하지도 노여워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누구를 칭찬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성생활이라는 테마로 바라본 자신의 삶을 복기해나간다. 내가 그런 상황에 있었고, 내가 그 때 어떻게 행동했고, 그렇게 행동하니 기분은 어땠더라,의 서술을 독자를 대상으로 이어나간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최대의 관심사는 거짓없이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것인 냥, 저자는 시종일관 차분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려움 없이 자신을 관찰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기품과 지성을 느낀 부분이다. 무엇인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고 기술하려는 태도 자체가 무엇을 말하려는가와 상관없이 얼마나 읽는 이에게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가를 알게 해준 생경한 경험이기도 했다. 왜곡 없이 자기 자신을 충분히 내보이려는 저자의 모습에서, 비록 프랑스라는 한국에서 아주 먼 나라에서 사는, 나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자이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소통할 준비를 마친 건강한 정신을 만난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어 자연스럽게 든 생각. “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태도를 가진 여성을 책으로 만나고 싶다… !“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카트린 M의 성생활』의 저자가 가진 태도를 가진 한국 여성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요원한 일 중 하나였는데,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나라는 여자』를 읽고 바로 내가 만나고 싶었던 그 태도를 만난 것 같아 반갑고 기뻤다.

『나라는 여자』는 임경선 작가의 어렸을 때, 만났던 남자, 작가로 살면서 있었던 이야기다. 대단한 성공담도 실패담도 없는 그냥 자기 이야기다. “내가 그런 상황에 있었고, 내가 그 때 어떻게 행동했고, 그렇게 행동하니 기분은 어땠”더라의 이야기. 상처받은 어떤 순간, 기뻤던 어떤 순간, 난처했던 어떤 순간들. 그 순간 순간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시선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남편의 시선마저 말이다. 왜곡 없이 그 기억을 복기하는 것이 최선인 냥, 자기 자신의 관찰자로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성실한 저자는  ‘임경선’이라는 자기 이름으로만 온전히 서있을 수 것만 같은 독립성이 느껴진다. 카트린 밀레처럼.

’상처’라는 단어는 ‘나 바빠’라는 말만큼이나 내가 금기시하던 것이었다. 스스로를 과대하게 보는 자기중심성처럼 느껴져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산문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상처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마치 내 상처나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전시하거나 자랑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나의 여건상 왠지 불평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무리한 겸손도 작용했다. 하지만 내가 자신의 결핍을 정면으로 바라보거나 받아주지 않는다면 대체 이 세상에서 누가 그걸 받아줄 수 있단 말인가.
『나라는 여자』의 저자 임경선
이 책을 읽으며, “나라는 여자”를 주제로 글을 쓰는 운동이 생기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관찰해보자는 운동 말이다. 내 상처와 내 결핍과 내 자랑과 내 특징을 잘 알아야만, 어디에 속해 있지 않아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는 완전한 개인이 탄생되는 것일 테며, 또 완전한 개인이 되어야만 완전한 사랑을 더 잘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으로 완전한 개인이 된 임경선 작가를 환영하며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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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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