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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산행 더 재밌게 하고 싶다면

『사람의 산 산의 인문학』으로 읽어내는 산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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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야 취미로 등산하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요즘 사람들 대부분 취미가 등산이다. 당연하다. 한국은 2/3가 산으로 이루어진 곳이니. 좀 더 등산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읽어 볼 만한 책이 있다. 바로 『사람의 산 산의 인문학』. 다소 무거우니, 산에 올라서 읽는 건 무리고 읽고 나서 산행에 나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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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데, 생각만큼 나를 알기가 쉽지 않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세계관이라는 면에서만 봐도 그렇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아주 대략 이런 구성일 테다. 그리스철학과 로마법 그리고 그리스도교 문화에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이루어진 서구 모더니티 80%, 서구가 들어오기 이전의 전통적인 면모 20%. 그 20%는 다시 유불도와 무속적인 세계관으로 쪼개질 텐데. 말이 이렇지, 이런 다양한 세계관을 무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는 노릇. 어쨌거나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세계관이 섞인 정체성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만 복잡한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니다. 산도 똑같다. 중국 종교 관련해서 수업을 들을 때였다.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중국 종교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의 세계관은 무속에서 불교 그리고 유교를 거쳐 서구 모더니티가 주도했다는 내용.

 

“이런 사실을 주위를 보면 확인할 수 있어요. 한국 산 이름 중에 ‘백(白)’이 들어간 게 많아요. 대표적인 게 백두산이죠. 태백산, 소백산, 함백산, 기백산 등도 그렇고요. 희다는 의미가, 무속적인 세계관에서는 하늘과 닿은 초월적인 공간을 상징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눈이 녹는 초봄에도 희게 보이는 곳은 굉장히 높은 산이죠. 이게 사람이 볼 때는 신성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불교와 관련한 산 이름도 많죠. 불암산, 두타산, 원효산(지금 천성산) 등이 그래요. 특히 예전 사람들은 이 땅을 불국토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의 일환으로 산에도 그런 이름을 붙인 거죠. 그런데 유교로 오면, 이름을 붙일 산이 안 남아요. 그래서 정말 일부 산에만 유교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간 나의 산행 패턴은 이랬다. 유명한 산을 골라서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가려고 애쓰고, 정상에서 잠시 쉬다, 또 잽싸게 내려와서, 슈퍼에서 막걸리 사서 마시고, 끝. 다른 사람도 비슷한 사정일 텐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산의 인문학’이 있다면 꽤 재밌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3가 산인 이 사회에서 산으로 할 이야기가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사실. 이런 이야기를 안다면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즐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 뒤로 7년 만에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을 발견했다. 반가웠다! 바로 책 읽기 위한 단계를 밟는다. 예스24 방문, 로그인, 검색, 카트 담기, 결재, 배송, 독서, 끝. 아, 아직 끝난 게 아니군. 리뷰를 쓰지 않았다... 어쨌거나.

 

저자인 최원석 교수는 지리학자다. 지리학을 연구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통 지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풍수도 함께 공부했다. 풍수는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유기체로 본다. 풍수에서는 책 속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은 산을 닮고 산도 인간을 닮는다. 이를 사람의 산격화로 부를 수도 있을 테고, 산의 인격화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산의 인격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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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산은 용을 닮았다

 

최원석 교수는 천산에서 용산으로, 용산에서 인격화로의 변화를 산 이름으로 관찰 가능하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던 ‘백’이 들어간 산은 천산 계열이다. 한자 문명권에서 천(天)은 지(地)와 인(人)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인데, 이 중에서 가장 초월적이고 신성한 존재다. 산을 향한 인간의 시선이 변화하는 모습은 용산 계열에서 관찰된다. 산 이름 중에서 용(龍)이 들어간 게 많은데, 산줄기가 뻗은 모습에서 용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살아 움직이는 ‘용’을 산에 부여했다는 점인데, 이로써 용산 계열은 천산 계열에는 없던 생명을 획득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산의 인격화는 완성된다.

 

천산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 사신사, 오성을 거치면서 산을 용으로 보게 되자 산 관념에 큰 변화와 발전이 생겼다. 산의 형상을 용의 몸(龍身)으로 보아 각 부분을 구별하게 되었다. 산맥을 용맥으로 보니 체계적 인식이 가능해져, 조산에서 입수, 곧 산의 맥이 명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머리 부분까지의 흐름을 살피게 되고, 용의 가지와 줄기를 구별하여 인식하게 되었으며, 지맥의 맑고 탁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주는 의미도 달라졌다. 즉 이전과는 달리 산룡이 자체의 고유한 성격과 기운으로 인간의 길흉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87쪽)

 

한국은 이런 산의 인격화가 유달랐다는 점에서 중국과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게 진산(鎭山)이다. 보통 명산에 가 보면 대구의 진산, 부산의 진산, 이런 식으로 산 입구에 산을 설명해놓은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아, 크거나 높거나 아름다우면 진산이라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진산은 아무나 정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정해져 내려왔단다. 


진산은 지역을 대표하는 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 규모가 크면 유리하겠지만 진산으로 정해진 산 중에서는 전주의 진산인 건지산처럼 해발고도가 100m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진산은 지역의 북쪽 산을 정하는데, 이 역시도 예외가 많아 남쪽에 위치하면서도 진산인 게 있다. 어쨌든 기억할 만한 사실은 중국은 영토가 광활함에도 특정 지역에만 진산을 지정했으며 고을과도 멀리 떨어졌던 반면, 한국은 조선 중기 전국의 331개 고을 중 255개 고을에 진산이 존재했을 정도로 숫자가 많았다. 고을과 거리도 가까웠다. 그만큼 산을 가깝게 여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개념이 ‘조산’이다. 최원석 교수는 조산이야말로 한국 산 문화 전통에서 가장 정체성이 뚜렷하면서 특징적인 요소라고 한다. 저자는 “조산이란 흙ㆍ돌ㆍ숲 등을 마치 산처럼 조성하여 취락이 입지하고 있는 지형ㆍ지세의 부족한 부분을 메움으로써 보완하는 것”(165쪽)이라고 설명한다. 조산의 목적은 비보였다. 비보란 자연조건을 인간이 보완해서 환경을 개선하여 이상적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행위다. 이때 풍수적인 조화가 주요한 고려 사안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북쪽에는 산이 있으나 남쪽에 산이 없어 기가 허하다고 느껴질 때, 우리 선조들은 그곳에 숲을 조성한다거나 돌탑을 쌓는 식으로 기를 보완하고자 했다. 가끔 시골을 걷다 보면 펼쳐진 논 사이로 엉뚱하게 튀어나온 언덕이나 숲이 있던데, 책을 읽고 보니 하나의 조산이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다소 주술적인 느낌도 들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시멘트로 물길을 막아버리는 식의 무지막지한 토목공사보다는 정겹게 다가온다.


책에는 그밖에도 시대마다 달리 정의한 명산의 조건, 산을 점유했던 각 종교의 변천, 세계의 명산 등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가 담겨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미처 못해본 덕유산 종주를 향한 욕망이 샘솟았다. 왠지 이 책 읽고 가면 더 많은 게 보이고 더 아름답게 느껴질 듯하다. 한데, 덕유산 종주는 진짜 힘들다고 하던데……


일단. 계단부터 걸어서 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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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최원석 저 | 한길사
오랫동안 지리학과 풍수를 연구해온 최원석 경상대 교수가 산의 인문학을 집대성했다. 산은 인간을 닮고, 인간도 산을 닮는다. 우리가 쌓아온 역사는 산이 인간화되는 세월이었다. 어떻게 산의 인격화가 진행되었는지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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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최원석> 저19,800원(10% + 1%)

높이 올라가 시원한 기분만 느끼고 끝나는 산행, 아쉽지 않으셨나요? 이제 이 땅의 우리 산을 인문학적으로 체험하고 이야기할 때가 왔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산을 보는 당신의 눈이 달라집니다. 더 가치 있는 산행, 더 의미 있는 산행을 위해. 사람과 산의 오랜 연애담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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