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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기 일주일 전

익숙한 일상과 잠시 이별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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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움직임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조금 아득해졌고, 이 균열로 인해 내 삶의 비포(before)는 깨지고 애프터(after)만 남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냉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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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시험을 일주일 남겨놓았을 때, 결혼 일주일 전, 남들이 점수를 올리기 위해 벼락치기를 하거나 몸매나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할 때 나는 당락이 이미 결정 난 게 아닌가 생각하며 시험이 빨리 끝나기만 고대했다. 결혼 전에는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드레스로 골라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밤이 깊도록 동생들과 수다를 떨고 야식을 먹었다.


출산을 일주일 앞둔 심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것이 과거완료와 현재진행형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오갔다.


태동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 침대에 눕자 병실 천장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검사를 하는 동안 병실 안에는 뱃속에 있는 아이의 심박수만 크게 울렸다. 규칙적으로 칙칙폭폭, 퉁퉁퉁퉁, 하다가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큰 소리로 바뀌었다.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움직임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조금 아득해졌고, 이 균열로 인해 내 삶의 비포(before)는 깨지고 애프터(after)만 남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냉정해졌다.


검사를 마치고 병원 근처 카페에서 마시는 라테 한 잔도 생생하지만 비현실적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이렇지 않을까. 이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서 먼 곳까지 여행을 가지 못한 게 아쉬웠고 앞으로 쓸 장편 소설의 초고를 만들어두지 못한 것도 후회스러웠다. 나는 그 후회를 만회하고 싶어서 일주일동안 벼락치기하듯 돌아다녔다. 낮에는 카페에 가서 원고 정리를 하고 저녁 때는 맛집투어단 멤버인 옆 사람과 단골집들을 순례했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밥집과 빵집과 카페가 건재하기를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옆 사람은 매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먹는 나를 보며 지구의 종말을 앞둔 사람 같다고 놀렸다.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벼락치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관련 기사]

 

-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
- 준비됐나요? (2)
- 누구나 자기 복을 가지고 태어난다
- 너를 만나는 방법 (1)

- 너는 자라고 나는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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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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