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그때 들었다면 좋았을 음악

빅뱅 〈loser〉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어쩌면 우리들은 너무 외롭거나 절망하지 않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 아니었나? 아님 말고.

매번 옛날 음악을 얘기하는 게 좀 지겹다. 오늘은 역으로 가본다. 과거에 들었다면 좋았을 요즘 음악 얘기다. 반응 괜찮으면 계속 역으로 가겠다. 그래도 지겨우면 강남역이라도 가고. 
 
어쩌면 우리들은 지겹지 않기 위해, 글을 쓰거나, 읽는 것 아니었나? 아님 말고.
 
2003년, 딱 요맘때 나는 배낭 메고 아테네에 있었다. 세상에, 13년 전이라니. 내가 지금 딱 스무 살이니까, 일곱 살 때인가? 농담이다. 칼럼에 개그 욕심 부리는 것도 이제 지겹다. 
 
어쨌든 그땐 네트워크 문명이 지금처럼 현란하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숙박을 예약하고 나발이고 그런 게 없었다. 숙박할 곳은 발바닥으로 구해야 했다. 못 구하면 노숙인 거고. 그 긴장감이 어드벤처 게임 같긴 했다. 옛날이 더 좋았다는 식의 너절한 얘기가 아니고, 노숙할까 봐 똥줄 타서 스릴 있었다는 얘기다. 
 
근데 뭔가 신기하다. 그때 유럽 가는 항공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오히려 잘 찾으면 지금이 더 싸다. 어째서지? 물가가 오르기만 하는 건 아니었나. 또 하나 신기한 건 당시 숙박비랑 지금 숙박비도 비슷하다는 점. 거 참 신기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못 웃기는 것도 그래서인가? 
 
그러나 전혀 비슷하지 않은 게 있다. 그땐 빅뱅이 없었다. 나는 요즘 빅뱅의 M.A.D.E 시리즈를 자주 듣는다. 다 좋지만 그 중에서 특히 <루저Loser>라는 곡을 사랑한다. 내가 루저라서가 아니다. 가사에 나오는 상처뿐인 머저리, 센 척하는 겁쟁이를 거울 속에서 매일 만나기 때문이다. 아, 그럼 루저 맞나? 

 

 

big-bang-m.jpg
 

모르겠고, 그때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도착한 나는 빅뱅의 <Loser>를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다. 배낭이 너무 무거워 택시를 타고 신타그마 광장 앞에 내렸다. 아테네 택시 기사는 몹시 터프가이였다. 나라면 전 재산을 날리고 빈대에게 오십 군데를 물린 직후에 급똥까지 마려워도 그렇게 거칠게는 운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나한테 화났어요?”


“내가 왜? 아테네는 신타그마에서 시작하면 돼. 웰컴 투 아테네!”
 
아테네도 터프했다. 이방인에게 쉽게 숙소를 허락하지 않았다. 스파르타에 잘못 온 줄 알았다. 해가 질 때까지 숙소를 못 구했다. 난 흔한 가이드북도 사오지 않았다. 문체와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바보였다. 어드벤처 게임이고 뭐고, 알파α, 베타β, 감마Γ, 시그마Σ, 말고는 생전 한 번도 못 본 그리스 글자들 천지였다. 그것은 내게 고대 페니키아 문자를 해독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파르테논장 여관, 대실 2만원 숙박 3만원’ 이라고 적혀 있어도 아예 못 읽는 거다. 
 
영어로 HOTEL이라는 간판을 건 곳은 숙소겠지, 설마 거기서 호박을 팔겠어? 싶었지만 너무 비쌀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반짝이는 로비를 가진 호텔에 용기 내어 한 번 가 보았다. 
 
“혹시 멍청한 녀석에게 주는 특별히 싼 방 없나요?”


“왜 없겠소. 70유로짜리가 하나 남았소.”
 
어마어마한 금액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부르는 걸 보니 거기서 자다간 눈을 깜빡이지 못해 뜬 눈으로 밤을 샐 것 같았다. 
 
절망할 무렵 극적으로 관광안내 센터를 발견해 숙소를 몇 군데 추천받고 지도까지 얻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간 호스텔에서 나는 계속 퇴짜를 맞았다. 
 
“침대가 한 개도 안 남았소.”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여기 방이 있댔어요.”


“난 거짓말할 이유가 없소. 당신이 너무 늦게 온 거지.”

 

어떤 호스텔은 이랬다.

 

“바깥 간판 말인가? 그건 골목 가로등이 고장 나서 켜 놓은 거야. 투숙객을 받으려는 의도는 없어.”
“이런 빌어먹을 조르바!”

 

나는 대표적인 희랍인을 욕했다. 
 
그렇다. 밤은 깊어가고, 공원에 침낭을 깔기 직전이었던 그때 빅뱅의 <Loser>를 들었어야 했다는 얘기다. 이 음악이 더욱 엄청나게 들렸을 테니까. 

 

멈출 줄 모르던 나의 위험한 질주 이젠 아무런 감흥도 재미도 없는 기분
난 벼랑 끝에 혼자 있네 I’M GOING HOME 나 다시 돌아갈래 예전의 제자리로

 

인생, 사랑 등에 제대로 지쳐버린 자의 푸념과, 절망감의 표출이 주제인 이 노랫말이 그때의 내 심정과 딱 통했을 것이다. 이 음악이 너무 좋은 건, 판에 박힌 사랑타령이나, 유치한 허세 없이 유니크한 노랫말 때문이다. 천하의 빅뱅이 이런 좌절감과 절망감을 깊숙이 잘 드러내면서 훌륭한 음악성까지 곁들여 놓다니, 감탄하면서 자주 듣는다. 빅뱅은 누가 뭐래도 훌륭한 아티스트지만 이 곡은 특히 독창적인 표현력을 자랑한다고 본다.

 

bigbang-m.jpg

 

그나저나 13년 전 노숙 위기의 루저는 결국 한밤중에 숙소를 구했다. 본 중에 제일 썩은 호텔이었다. 문을 열자 끼으으 하는 소리가 났고, 술 냄새를 풍기는, 혈색이 붉고 목소리가 큰 남자가 나타났다. 
 
“우와, 여행자로군. 신기하네. 어서 와! 우리 호텔은 시설이 정말 좋아.”

“환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여기 3일 묵을래요.”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 30유로? 내가 아직도 드라크마(그리스의 유로가입 이전 화폐단위)랑 유로를 헷갈릴 줄 알아?”


“아니 3일 밤 잘 거라고요.”


“그렇게는 안 돼. 유스 호스텔 가서 처 자라고. 여긴 호텔이야.”
 
그 말은 ‘디스 이즈 스파르타’와 같은 어조로 들렸다. 우린 서로 영어가 엉망이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마침 카운터에 탁상 달력이 있었다. 나는 날짜를 하나, 둘, 셋을 찍어가며 보디랭귀지로 자는 시늉을 했다. 
 

“아아, 삼 박? 진작 그렇게 얘기할 것이지!”

 

스파르타인 피가 많이 섞인 것 같은 그는 껄껄껄 호탕하게 웃은 뒤 1박에 30유로를 불렀다. 뭔가 허무했다. 아마 그때부터 내가 못 웃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90유로를 건네자 그는 세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열쇠를 내게 던졌다. 


“체크인 됐고, 방은 3층이야. 복도 끝이라고. 잘 자.”
 
열쇠엔 33호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방은 삼삼하진 않았다. 침대가 바나나처럼 휘어있고 가운데엔 스프링이 튀어나와 있었다. 어쨌든 그때가 지금이었다면 그 방에서 또 빅뱅을 하염없이 들었을 거라는 얘기다. 
 
어쩌면 우리들은 너무 외롭거나 절망하지 않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 아니었나? 아님 말고.

 

 

 

 


[관련 기사]


- 봄이 오면 들어야 할 노래
- 이게 봄입니까
- 기차 여행과 신해철
- 봄밤의 추억 앓이
- 비지스, AC/DC, 그리고 호주의 NEW 아티스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6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빅뱅 (Bigbang) - BIGBANG MADE SERIES [M 또는 m](랜덤발송)

12,000원(20% + 1%)

BIGBANG MADE SERIES [M] 1157일만의 완전체 컴백 MADE 시리즈와 함께 돌아온 BIGBANG 2012년 ALIVE 발매 후 1157일이 지난 2015년 5월1일, MADE의 첫번째 시리즈 [M] 과 함께 빅뱅이 우리 곁에 돌아온다. 5월 1일 공개될 [M]을 시작으로, 4개월 동..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법정 스님의 죽비 같은 말씀 모음집

입적 후 14년 만에 공개되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 스님이 그간 전국을 돌며 전한 말씀들을 묶어내었다. 책에 담아낸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의 목소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찰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전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

3년 만에 찾아온 김호연 문학의 결정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가의 신작. 2003년 대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 15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모험을 행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으면서, 우정과 꿈을 되찾게 되는 힐링 소설.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독립 리서치 회사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신간. 어떻게 내 집을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무엇이든 쉽게 성취하려는 시대. 투자의 본질에 집중한 현명한 투자법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투자 이야기.

건강히 살다 편하게 맞는 죽음

인류의 꿈은 무병장수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며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장수 의학 권위자 피터 아티아가 쓴 이 책을 집집마다 소장하자. 암과 당뇨, 혈관질환에 맞설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책.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