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4화 – 해야 할 일은 책장을 넘기는 것

『달콤한 인생』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여러 요건이 있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좋은 소설은 골치 아픈 고민거리를 던진다’는 것이다.

1.jpg

 

 

12. 21.

 

당연한 말이지만, 태국에 와서도 독서를 게을리할 수 없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땀 흘리며 현학적인 책과 씨름할 순 없다(한국에서 추운 날씨와 씨름하는 독자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나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떠올려 보시길). 어쩌면, 책장을 붙잡고 있는 손에도 땀이 날지 모른다. 때로는 책장 위에 땀방울이 떨어져 책이 젖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여, 재미있게 쉭쉭 넘길 수 있는 소설책을 한 권 들고 왔다. 김성한이라는 신인 작가의 첫 소설 『달콤한 인생』이다. 책 띠지에는 “카카오 페이지 동시구독자 3만명, 모두가 손꼽아 출간을 기다렸다!”라고 호기롭게 광고하고 있다. 커버 뒷장에는 이런 카피가 쓰여 있다. 


 “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았다.” 

 

 

12. 22.


프롤로그를 포함해 앞부분을 조금 읽었다. 일단, 신인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판단을 항상 유보하려는 것이 독서가의 자세다. 그런데, 앞부분에 등장한 인물들의 예의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넘어선다. 소설을 불과 두 장 넘기면 이 대목을 맞이한다. 주인공의 아내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신이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책상 위에 두고 간 휴대폰에는 일곱 통의 부재중 전화와 네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상우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고 차례대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10쪽)


이후, 소설은 아내가 메시지를 보낸 전문을 공개한다. 6시 23분에 ‘바쁘냐?’고 문자가 오고, 3분 뒤 ‘뭐 하느라 아직도 전화를 안 받느냐?’고 다시 문자가 오고, 2분 뒤 ‘주인공이 전화를 안 받아서 자신이 점점 지쳐 간다’고 연락이 온다. 이때, 이미 독자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 아내가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을까.’ 물론, 그러고 다시 4분 뒤 ‘나 임신했어’라는 메시지가 온다.

물론, 임신을 한 것은 부부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불과 10분 사이에 일곱 통의 부재 전화와 책망하는 듯한 문자를 접한 독자는 ‘이 인물이 굉장히 짜증을 내는 사람’이란 걸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 이 말은 ‘그 짜증이 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임신을 하긴 했지만, 나는 여기까지 읽고 아내가 굉장히 히스테릭한 성격의 소유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좀 더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 말은 소설 초반부에 작가가 캐릭터 묘사를 오해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비록, 책장을 덮지는 않았지만, 소설에 편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작가에게 불리한 것이다.

 

 

12. 23.


초반의 인상과 달리, 이 소설은 흡인력이 굉장히 강하다. 간만에 밤늦게까지 잔뜩 몰입하여 소설을 읽었다. 작가는 왜 초반에 등장인물을 짜증 나게 묘사했을까.

 

 

12. 24.


성탄 이브다. 숙소에서 수영을 한 뒤, 거의 종일 썬 베드에 누워 『달콤한 인생』을 계속 읽었다. 변호사인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이웃인 다운증후군 청년에게 뒤집어 씌었다. 한데, 영문을 모르는 이 청년의 부모가 주인공에게 사건 변호를 맡겼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증거를 은폐하고, 사건을 조작한다. 이 와중에 아내의 외도 사실이 밝혀졌다. 사랑이 가득해야 할 성탄 이브에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읽고 있는가. 이유는 자명하다. 이 소설은 한 번 몰입하면,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12. 26.


오랜만에 절도할 기술을 하나 발견했다. 작가가 왜 초반에 캐릭터 형성을 짜증 나게 했는지 알겠다. 작가는 일부러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비록, 성미 급한 일부 독자들은 떠났겠지만, 끝까지 참고 읽은 독자들은 적어도 이 작가의 이름과 소설 제목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83년생의 젊은 작가에게 하나 배웠다. 하지만, 위험한 방법이다.

 

 

12. 28.


『달콤한 인생』을 완독했다. 이 소설의 장점은 몰입도다. 책장이 자석처럼 시선을 붙잡아두고, 진공청소기처럼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단지 책장을 넘기는 것, 그리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두 명을 직접 살해하고, 한 명을 살인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철저한 악인의 행동을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선택과 그 그릇된 선택을 감당하기 위해, 추가로 저지르게 되는 범죄를 묘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묘한 심정인데, 심판하고 싶은 마음인지, 용서하고 싶은 마음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심판자의 심리로, 그 후에는 관찰자의 심리로, 어느 순간부터는 심판자도 관찰자도, 그렇다고 구원자도 아닌, 나조차 알 수 없는 기묘한 삼각지대에 선 채 주인공을 지켜보았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은 선도 악도 없는 회색지대로 끌어당겨 급기야 질문을 던진다. 내가 만일 실수로 저지른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다면? 홧김에 휘두른 흉기에 사람이 죽어버린다면? 그리고 누군가 ‘내 인생 최대의 실수’를 목격하고, 나를 협박하고, 일상을 죄고,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면?

늘 품고 있는 의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여러 요건이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좋은 소설은 골치 아픈 고민거리를 던진다’는 것이다. 좋은 소설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누구든지 『달콤한 인생』을 읽는다면 꽤 어려운 질문을 하나 받을 것이다. 간만에 아주 흥미로운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달콤한 인생

<김성한> 저12,420원(10% + 5%)

카카오페이지 연재 3주 만에 동시구독자 3만 명! 모바일에서 먼저 화제가 된 스릴러 소설 『달콤한 인생』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 일본 작가와 요 네스뵈, 넬레 노이하우스 등 유럽 작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스릴러물 시장에 34세의 젊은 국내 신인작가가 첫 작품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