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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 같은 타인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부터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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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씨는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아동학대는 가족의 형태보다 사회적 환경과 더 깊숙이 연관돼 있다”며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2018.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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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새로운 희망 하나씩 품어보는 새해가 밝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1월에 실종신고 됐던 한 아이는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고 타살이 의심되는데, 거짓 실종신고를 했던 친부와 친부의 동거인이 유력한 용의자다. 또 한 세 남매는 엄마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고, 그 무렵 세 남매의 친부는 PC방에서 게임 중이었다. 두 사건이 서로 닮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자는 명백한 범죄 사건이고, 후자는 세 남매의 엄마가 고의로 자기 집에 불을 질렀는지 사실관계를 살펴야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사건 속 어른들은 아이들의 보호자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 밑에는 사람들의 분노가 어김없이 이어졌다. 그럴 만하다. 나 역시 있는 힘껏 그들을 비난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분노가 향한 끄트머리에서 “부모 자격”이란 말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과연 부모 자격이 있는 걸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애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애를 굶기거나 애한테 함부로 손찌검을 한 적은 없다. 내 처지를 비관해 애를 위험에 빠뜨린 적도 없다. 그렇다고 부모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할 순 없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애를 돌보는 일이 마냥 기쁘지 않았다. 심지어 애를 장애물로 여긴 적도 있다. 우는 애를 달래거나 애 기저귀를 갈면서 ‘이럴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며 속으로 신세 한탄을 아끼지 않았다. 볼일을 핑계 삼아 TV나 게임에 열중하는 애를 오랜 시간 방치하기도 했다. 피로를 감추지 못한 날도 많았고, 애 앞에서 술도 자주 먹었다. 어느 면으로 보나 나는 애한테 비교육적인 아빠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 자격은 생각보다 엄격했다. 또 그 기준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엄격했다. 가령 세 남매 사건은 담뱃불이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엄마가 담배를 피웠다며 엄마 자격이 없다고 한다. 데자뷔 같은 현상이다.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여성의 행실은 조목조목 비난 거리가 되기 일쑤니까. “비정한 모성”이란 과장된 수사도 빠지지 않는다. 반면 “비정한 부성”이란 말은 웬만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겉으로는) 성평등한 사회라지만, 집집마다 양육 주체는 주로 여성인 탓일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앞서 얘기한 사건 속 어른들의 부모 자격이나 모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 있어’라며 그들을 “인면수심”이나 “사이코패스”로 애써 분리할 때 오히려 사건의 근원과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김희경 씨는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아동학대는 가족의 형태보다 사회적 환경과 더 깊숙이 연관돼 있다”며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대 행위자 특성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양육지식 및 기술 부족’이고,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경제적 사정’이 그 다음”이며 “더 이상 집이 아이에게 안전한 곳이 아닐 때”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지만, 그런 경우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의 친권”이라고 한다.


“예컨대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긴급보호조치로 집을 떠나 시설에 살게 된 아이의 경우 국가에게서 수급자로 지정받아 의복비, 식비 등 필수적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문제는 수급비를 받기 위한 통장을 개설해야 하는데 미성년자인 아이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려면 친권자인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호주의 경우 “‘아동 최선의 이익’을 결정할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국가”인 반면, 한국에서 친권은 “천륜”으로 통하고 모성처럼 성역화 된 면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아동 복지를 법과 제도보다 전통적 가족 관계와 실체가 불분명한 모성에 의지하고 있다. 천륜이나 모성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지나친 모성 숭배 또는 모성에 대한 오해는 결국 여성의 양육 부담만 가중시킨다. 또 천륜으로 통하는 친권에 공적 개입이 주저되면서 아이의 목숨이 담보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더딘 인식의 변화를 법과 제도가 어느 정도 견인할 필요가 있다.


부모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듯이 부모를 선택하는 아이도 있을 수 없다. 대개의 부모는 자기 자식을 다 안다고 여기지만, 자식은 부모로부터 유전형질을 물려받은 타인일 뿐이다. 자식은 부모와 다르게 살 권리가 있고, 언젠가 부모는 자신과 다르게 살아보려는 자식에게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고려장이 부활하지 않는 한, 아동 복지와 노인 복지가 서로 위태롭게 맞물린 셈이고 부모와 자식 관계는 그만큼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관계는 더 이상 일방적 희생을 통해 유지될 수 없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김희경 씨가 책머리에 빌린 넬슨 만델라의 말이다. 파렴치한 부모들에게 분노와 비난을 한바탕 쏟아냈다면, 이제 그 다음을 생각했으면 한다. 매번 똑같은 분노와 비난은 반복하지 말았으면 한다. 낡은 유전형질 말고,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부터 물려주자.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저 | 동아시아
가족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담론이 사실은 사회가 만들어낸 구성물임을 밝히고 이러한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우리 일상에 반영되었는지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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