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 연극 <하루>

부부의 일상, 그 속의 사랑과 상처를 그려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모든 사랑에는 ‘마지막 하루’가 찾아온다. 그 사실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잠들어 있던 사랑이 깨어나 뜨거워짐을 느낀다. (2018. 02. 01)

20170808_151116.jpg

 

 

어느 부부에게나 상처는 있지만...


무대의 한쪽 벽면에 말끔한 정장이 한 벌 걸려있다. 여자는 손을 뻗어 옷을 쓸어보지만 손길은 허공을 맴돈다. 현관을 열고 남자가 들어와 그대로 여자를 지나친다. 소파 위로 몸을 파묻은 채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 말한다. 여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고, 둘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기처럼 흩어져 버린다. 곧이어 암전이 찾아오고 ‘나에게는 3년 동안 입어보지 못한 정장과 구두가 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낮게 깔린다.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연극 <하루> 는 원철과 보영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혼 6년차, 친구처럼 유쾌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다. 그들의 일상은 평범한 부부들의 그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 보영은 묘책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도 믿는다는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그가 일러준 방법을 충실히 따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리는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보영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것은 원철과 보영, 두 사람이 간직하고 있던 상처다. 부부로 살아온 시간이 쌓였으니 상처 하나쯤 없는 것도 이상할 테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오랜 뒤에도 결코 웃으며 추억할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는 기억과 달리, 깊은 흔적으로 남아 지우기 불가능한 경험에 가깝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프지만, 두 사람은 덤덤하게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보다 더 아픈 일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6.jpg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원철과 보영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연극 <하루> 는 묻는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랑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작품 안에서 두 개의 질문은 한 몸인 듯 붙어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 사랑은 자연스레 빛을 잃는 것 같지만, 때로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빛을 낸다. 원철과 보영의 사랑이 꼭 그러하다.

 

 

11.jpg

 

 

아마 우리의 사랑도 그럴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그 사실을 잊고 지낼 뿐. 그럴 때 사랑은 뜨거움을 지나 미적지근해진 것 같고, 마치 잠 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하루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까’ 생각해 보면,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사랑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가슴이 다시 뜨거워짐을 느낀다. 연극 <하루> 를 보고 난 후, 관객에게 남을 느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랑, 언젠가 ‘마지막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될 사랑을 다시, 뜨겁게,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다.

 

연극 <하루> 에는 유쾌한 부부의 일상, 그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담겨있다. 작품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부부가 공유하는 것들-사랑과 아픔의 진한 이야기를 전한다. 관객을 웃고 울리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감성적인 음악이 함께한다. 재즈 작곡가 김인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발라드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다. 배우 전청일, 전시후, 이섭정은 남편 원철 역을, 배우 박민서, 김수민, 전지선, 김가현은 아내 보영 역을 맡아 열연한다. 작품은 2월 28일까지 대학로 낙산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기사와 관련된 공연

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