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유리의 눈빛 : 욕망을 향해 꺼지지 않는 불꽃

사랑받고, 사랑하고, 승리하고 싶은 에너지의 향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사랑받고 싶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잘 하고 싶고, 무엇보다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민채린을 연기하는 이유리의 눈빛은,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화면 위에서 이글거린다. (2018.09.17)

캡쳐.png

 

 

MBC <숨바꼭질>을 보다 보면 전성기의 성룡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밀려온다. 고난이도 아크로바틱 액션을 구사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룡이 주연인 영화는 결국 모든 줄거리가 오로지 성룡의 액션을 정당화하기 위해 짜여 있다. 가끔 개연성에 빈 칸이 생기거나 스토리 전개가 허술해도 관객들이 크게 실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어쨌거나 화면 위에서 성룡이 끝내주는 액션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숨바꼭질>도 비슷하다. 방영 첫 주에 모든 걸 거는 최근의 방송가 트렌드를 감안하더라도, <숨바꼭질>의 첫 주는 가히 이유리 종합 선물세트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숨바꼭질> 첫 주 방영분 2시간 동안 웃는 이유리, 우는 이유리, 화내는 이유리, 싸우는 이유리, 폭탄주를 마는 이유리, 소화기를 휘두르며 상대를 제압하는 이유리, 폐쇄형 정신병동에 갇힌 이유리, 술 먹고 주정하는 이유리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숨바꼭질>에서 허술한 대목을 찾자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 모든 단점은 이유리의 폭발적인 퍼포먼스에 가려진다. 성룡 영화의 개연성은 성룡이듯, <숨바꼭질>의 개연성은 이유리인 셈이다.
 
이유리가 자신이 맡은 인물 민채린을 해석하는 방식은 사뭇 흥미롭다. “친딸이 누렸어야 할 인생을 대신 누리고 있는 입양아”라는 인물 설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유리에게 연기대상을 안겨줬던 전설적인 배역인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유리는 딱 잘라 민채린이 악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리는 민채린을 “사랑과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로 해석하며 “그냥 편안하게 살아도 될 텐데 자기 삶에 주어진 것 이상으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인물”이라 말한다. 돌이켜보면 그가 지난 몇 년간 선보였던 캐릭터들이 다 그랬다. KBS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혜영은 제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가족이든 남자친구의 어머니든 상관 없이 고개를 들어 맞서는 당당함으로 무장한 사람이었고, MBC <반짝반짝 빛나는>의 황금란 또한 응당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삶을 쟁취하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사람이었다. 연민청처럼 악행을 저지르든, 변혜영처럼 사리분별을 따져가며 싸워내든. 이유리는 원하는 것 앞에서라면 체념하는 일 없이 끝까지 돌진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세상은 제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악녀’라 레이블링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유리는 그걸 “열정과 에너지”라고 읽는다.
 
매주 한 차례 두 시간씩 이유리를 만나고 나면 눈이 얼얼하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이유리의 눈빛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잘 하고 싶고, 무엇보다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민채린을 연기하는 이유리의 눈빛은,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화면 위에서 이글거린다.


 

 

팟빵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