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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단골 가게에 갑니다

자주 보아야 따스하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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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도시에서의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단골 가게가 대안적 공동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뿐더러 느슨한 관계의 한계도 잘 안다. (2019. 01. 04)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에서 혜원이 고향집에 내려오자, 일찍이 내려와 살던 친구 재하가 강아지를 데려와서 건넨 말이다. 인적 드문 시골 밤을 뜬눈으로 지샌 혜원의 불안을 짐작했던 걸까. 혜원이 강아지를 오구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비로소 혜원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극에 몰입하게 된다. 강아지 오구가 듬직해서라기보다 강아지 오구를 통해 혜원을 돌보는 친구 재하와 은숙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사진 1.jpg

          영화 <리틀 포레스트>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현실보다는 환상적 이야기에 가깝다. 주인공 혜원의 얼굴이 김태리라서 또는 혜원이 별다른 돈벌이 없이 직접 막걸리를 빚고 떡을 쪄 먹고 있어서가 아니라 고향 동네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혜원과 같은 선택을 하면 고향에 친척은 남아있을지 몰라도 마음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은 다른 도시로 나가 살 가능성이 높다. 취업이나 공부 등등 나름의 이유로. 떠날 수 없는 생명만 남고 온기와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다.

 

급격한 도시화로 대가족과 고향 마을이 붕괴되기 전에는 엄마만이 아니라 더 큰 엄마인 대가족과 마을공동체가 있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너무도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인간이 수백만 년간 사회적 동물로서 익숙해진 공동체가 한순간에 빙하가 녹듯 녹아 이들이 디딜 안전판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했다』  252쪽

나 또한 취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친구 관계가 넓지 않은 데다 언니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낸 탓에 단짝 친구와 멀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살면서 아주 작은 좌절에도 쉽게 털고 일어서지 못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정서적 안전망이 사라져 회복 탄력성이 낮아진 것이다. "친구는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라는 표현이 사무쳤다.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라는 멋진 표현을 우리는 곧잘 되뇐다. 앞으로의 인생은 또 예측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 이 친구들과 멀어지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생은 누군가와 조금씩 기대어 살 때 더 살 만해진다는 것.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24쪽

 

 

실제로 하버드 대학이 1938년부터 79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적ㆍ정신적 건강과 행복은 인간관계의 친밀함과의 상관관계가 상당하다고 한다. 가족과 친구 같은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다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건강했고, 더 장수했다고.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이고, 사람을 죽음에 내모는 것은 외로움이었다는 것이다. (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261쪽)

 

사실 이를 몰라서 안 한다기보다는 여유가 없거나 조건이 안 맞아 못 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에야 어쩔 도리 없이 모이게 되는 장소인 학교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었지만 졸업과 함께 마음을 맞춰온 친구들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지방으로 발령이 나거나 외국에서 공부하게 된 탓이다. 외로웠다. 메시지나 전화로 전하는 따뜻한 말도 눈물 나게 고마웠지만 등을 토닥여줄 온기가 절실하기도 했다.

 

처음엔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살아보고자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 거리, 마음이 모두 맞는 친구를 찾기란 비전, 사람, 연봉이 모두 맞는 직장을 찾는 일만큼 어렵더라. (게다가 부동산의 벽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특정 거점을 중심으로 새로이 친밀한 관계를 쌓기 시작했다. 때마침 친한 사장님이 가게를 집 근처로 옮긴 덕이었다.

 

 

사진 2.jpg

             카페 서양미술사
 


왠지 허전한 날이면 나는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진 단골 카페에 간다. 자주 가니 익숙해지는 얼굴들이 있다. 바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사장님과 수다를 떨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섞게 되고, 그러다 서로 이름을 묻고, 하는 일과 관심사를 물으며 요즘 고민까지 털어놓게 된다. 다음에 만나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안부를 묻는다. 카페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근처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이라서 근처 또다른 공간을 소개해주었고, 소개해준 공간에 들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연쇄적으로 관계가 넓어졌다. 그러고 나니 집에서 슬리퍼를 끌고 나와 갈 수 있는 거리의 카페 사장님과 말을 트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가끔 맛있는 빵을 사면 카페에 가서 나누었다. 동네 친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느슨한 이웃이 생겼다.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경비원이 있는 성벽을 두른 아파트가 아니라 마을이고, 소비를 과시하기 위한 이웃이 아니라 상호호혜적 관계를 맺어가는 이웃의 형성이다. (중략)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가지 않고 가게도 자주 망하지 않아 단골이 되는 그런 마을이 후기 근대적 주거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조한혜정,  『다시, 마을이다』  143-144쪽
 
아직 도시에서의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단골 가게가 대안적 공동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뿐더러 느슨한 관계의 한계도 잘 안다. 하지만 일단은 내 정서적 안전망인 단골 카페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다 자주 들르고, 보다 널리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당신은 은근하고자 했으나 노골적이고 긴 홍보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 단골 카페에 간다. 마음에 기름칠 하러.


 

사진 3.jpg

               영화 <리틀 포레스트>

집에 안 가고 술집에 모여든 친구들
모두 하하 호호 웃음 지었네
웃음 소리에 칵테일 만들던 사장님도
일 벗어 던지고 함께 웃었네
 
웃는 표정이 다들 닮아서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었네
여태 비밀처럼 간직했던
꼭꼭 숨겨둔 웃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술술 풀어놨네
 
농담을 들은 푸석푸석한 마음들
모두 윤기가 좌르르 흘렀네
 
- 김제형, <다정한술집>, 앨범 <곡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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