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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못 지내는 사람, 매력 없어요

<월간 채널예스>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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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2019. 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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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는 새로운 것만의 광택이 있다. 같은 옷이라 해도 새 옷에는 빛도 덜 받고 손이 안 탄 특유의 광채라는 게 있다. 몇 번 입고 걸어둔 옷과 아무도 입지 않은 채 걸려 있는 새 옷의 광채는 분명 다르다. 나는 억지스럽게도 이 차이를 혼자여서 내뿜는 광채와 혼자일 수 없어서 광채가 나지 않는 시들시들함에 비유하련다.

 

잘 자라는 화분 하나와 잘 자라지 못하는 화분은 또 어떤가. 하나는 아주 잘 자라 큰 화분으로 옮겨줘야 할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화분이 커도 너무 크다 싶을 정도로 연명하는 수준이다. 이 경우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과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에 관한 쉬운 비유겠다.


뭉근하게 끓인 음식은 어떨까. 약한 불에 오래 끊인 김치찌개와 시간을 가난하게 쓰느라 화학조미료를 넣고 간단히 끓인 김치찌개의 차이는 극명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쌓아주는 게 분명 있음을, 이 두 가지 김치찌개를 놓고 비유하기로 한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 친구 부부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살고 싶은 나라에, 그것도 시크릿 플레이스에 그 부부의 아들래미까지 동행해 데리고 갔으니.

 

그곳은 평소엔 특유의 한적함으로 빛을 내는 곳이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 같은 황금 시간대면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운하가 있는 마을이다. 나 또한 혼자 맥주 한 병을 사들고 운하 변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곤 하는 최애의 장소. 일부러 그곳을 보여주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들고 그 가족을 데리고 갔다. 시간이 되고 시적인 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그곳은 한순간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때 우리 옆에 한 청년이 앉아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의 어떤 소란과도 상관없는 옆모습이었다. 친구도 시간차를 두고 흘낏 그를 본 것 같길래 저 청년 좀 보라고 툭툭 쳤다. 그가 말했다.

 

- 쟤는 왜 저렇게 혼자 저러고 있는 거야?

 

그 청년은 단지 무릎을 모으고 운하에 앉아 수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좋아보였고 더군다나 아름답기까지 해서 나는 그 청년을 보라고 툭툭 친 것뿐이었다. 

 

그 소릴 듣자니 참 딱하고 아찔했다. 세상을 살면서 혼자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들통나버린 것이다. 단언컨대 그 친구는 아내와 아이가 자신을 떠나버리면 대책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대로에 퍼질러 앉아 울부짖을 사람이다. 가여운 사람. 혼자 세상을 살며 혼자 세상을 떠도는 친구를 옆에 두고서 그런 말을 서슴지 않다니.  

 

나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으니 혼자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끔 혼자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어딘가 도달할 점이 분명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어쭙잖은 내 밑바닥의 목소리를 스스로 듣는다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 주겠다.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얼마나 혼자 있어 보질 않았으면 혼자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또한 보통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혼자 있으면 무조건 심심할 거라며 회피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진정 하고픈 걸 할 수 있는 상태는 정말로 혼자일 때 아닌가. 세상 눈치 보는 일 없으니 행동력이 따라오는 건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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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더이상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외로움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다듬어준다. 우리의 혼자 있는 시간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특별한 의미로 사람을 빛나게 하고 사람관을 선명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이야 말로 정말이지 새로운 희망이다. 단 정말로 중요한 건 혼자서도 잘 있으되 갇히지 않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혼자일 수 없는 사람이 억지로 혼자이다 보면 망가지는 경우도 숱하게 있으니 이때 역시도 중요한 건 균형이다.

 

혼자 가면 안 될 같아서 둘이서 여행을 떠난다. 둘이는 많은 대화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이야기를 하는 데다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쓴다. 그 부분이 제일 안 좋다. 혼자 가면 안 될 것 같아서겠지만 정말이지 혼자 가면 안 되는 것일까. 혼자라서 닥치는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가 아닌 혼자서 직면하는 고독 앞에서의 자신 없음이 두려운 걸까.

 

고독을 모르면서 나이 들 수는 없다. 혼자인 채로 태어났으면서 애써 고독을 모른 체한다면 인생은 더 어렵고 점점 더 힘들다. 고독의 터널 끝에 가보고 고독의 정점과 한계점을 밟고 서서 웃는 자만이 ‘혼자를 경영’할 줄 아는 세련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외로움을 넘어 고독의 터널을 관통한다면 뭐가 어떻게 된단 말인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에 나오는 문장에서처럼 ‘결’과 ‘시선’을 품은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억지스러운 말이 되겠지만, 숙명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때나 그을음이나 비바람의 더러움이 붙어 있는 것, 내지는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색조나 광택을 사랑하고, 그런 건물이나 가구 가운데 살자면 기묘하게 마음이 풀리고 신경이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억지스러운 말이 되겠지만, 나는 집을 짓더라도 그 집에 그늘이 어떻게 사계절 다르게 내려앉는지를 계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를 쓰더라도 당신의 오래 골병 든 부위를 아물게 할 수 있는 한 줄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국수를 뽑더라도 한 그릇의 국수의 분량이라도 막일꾼의 소진된 기운과 기분을 되살려주는 반죽을 하고만 싶다. 외로움과 고독의 과거시험을 치른 처지라면 그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터. 

 

종교가 간절한 시대는 지난 것인지 사람들은 이제야 시간을 믿기 시작했다. 시간만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시간이 우리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물론이다. ‘혼자의 권력’을 갖게 된다. 그러니 혼자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 정해 두자. 그리고 혼자 가야 할 곳도 어디가 좋을지 정해 두기로 한다. 이것이 혼자의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시작이며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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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병률(시인)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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