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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미안합니다

영화 <라스트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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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라스트 미션’이 무엇인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고 나서 그것이 마지막 임무였음을 남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 (2019.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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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미션>의 한 장면
 

 

굽은 등에 느릿하게 걷고 그러나 표정은 풍부한, 예사롭지 않은 노인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등이 구부러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하고 연출한 영화다. <라스트 미션>은 어쩌면 그의 ‘라스트 무비’일 수도 있겠다. 인생에서 얻은, 어떤 회한을 다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맛이다. 영화 속에서 막 세상을 떠나려는 아내에게 “모든 게 미안합니다”라고 한 주인공 ‘얼 스톤’의 말은 후대에게 앞선 세대가 남긴 말이라고도 생각하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어려운 시절 헤쳐 나오느라 노력했다든가, 그래도 우리는 정의로웠다든가 하는 쓸데없는 변명을 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담담한 마음. 그래서 그 회한의 고백이 더 크게 울렸다.
 
<라스트 미션>의 원제는 <더 뮬The Mule>. ‘노새’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마약 운반원’을 일컫는 용어다. 미국의 최고령 마약 운반책, 87세 ‘레오 샤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는 “운전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에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가 결국 체포되었다.
 
영화는 백합으로 시작해서 백합으로 끝났다. 화사한 시작과 끝이다. 백합 원예사인 얼 스톤은 가족을 잘 챙기지는 않았지만 백합에 관한 한 톱스타였다. 그는 전국백합경연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꽃에 관한 일이라면 누가 뭐래도 최고였다. 인터넷 발달로 경영하는 햇살농장이 망해버리기 전까지는.
 
농장이 압류되고 가족에 대한 뒤늦은 자책으로 돈이 필요했던 그가 마약 운반원으로 도로를 달리는 과정은 반복되어 나오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매번 트럭 오디오에서는 상황에 맞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바깥 자연 풍경은 무심한 듯 평화롭다. 한 번에 282Kg 배달이라는 경이로운 신기록을 달성하자 마약 조직은 더 철저한 관리에 임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체포당한 뒤, 법정에서 늙고 판단이 흐리고 어리숙한 노인을 이용한 마약 조직의 음해라고 자신을 옹호하는 변호인의 말을 가로막고 “길티guilty”라고 모든 죄를 인정한다. 그리고 감옥에서 수감자들과 함께 백합을 기르기 시작한다. 감옥의 마당에서 피어나는 백합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0년 전 명작 <그랜 토리노>에서도 감독과 연기를 병행하며, 예술적 천재 말고 연륜이 만들어 낸 뛰어난 작품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라스트 미션>에서는 다소 헐거운 듯한 연출이지만 몸으로 체화한 삶의 정수랄까 진실이랄까, 그 메시지가 정확히 와 꽂혔다. ‘가족이 제일 중요해요’라는 메시지에서도, 그것이 강박이나 보수적인 생각의 반영이 아니라 “모든 게 미안한” 회한의 정서여서, 달리 해석할 방도 없이 ‘미안함’의 대상에 가족은 언제나 포함된다는 인간적인 도리란 것을 일깨운다. 조금도 반박하고 싶지 않은, 그 정서다. 
   
재미있게도 극 중의 딸 역할은 실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딸, 배우 앨리슨 이스트우드가 맡았다. 극 중에서 겨우 화해한 둘이 나란히 서서 대화하는 장면은 현실적인 생생함이 있었다. 아버지와 딸은, 그렇게 미안하고 서운한 마음을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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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미션>의 한 장면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라스트 미션’이 무엇인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고 나서 그것이 마지막 임무였음을 남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 그러니 내가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마지막 미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섬찟하다.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지금이라는 무게감이 적나라하므로.
 
마약 운반책을 추적하는 마약단속국 요원인 베이츠가 카페에서 얼 스톤과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지만 그가 수배자임은 짐작도 못 한다. 늙고 허름한 모습의 얼이 건네는 말이라곤 결혼기념일 같은 건 잊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였으니까. 베이츠가 체포 직후 얼을 확인하고 “당신”이라고 놀라는 일은 그러니까 뭐든 확인하기 전까지 쉽게 예단할 일은 없다는 것. 인생의 미션들은 완수되기까지 삶에 귀속된다는 것.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으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인생에 대하여. 목적과 결과만이 삶이 아니라 그 과정이 모두 삶이라는 것을 새삼 알겠다.
 
하여 오늘도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90세 인생이 보여준 작품을 새기며 다시 삶을 산다. 영화에서 삶으로. 미션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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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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