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빌리 아일리시, 고딕과 어린 자아의 경계

빌리 아일리시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과거로 느껴지지 않는 과거의 유산을 조화롭게 재해석하면서도 기성의 팝 논리를 반박했다는 데 빌리 아일리시 성공의 핵심이 있다. (2019. 04. 10)

76559232090737581_1839781601.jpg

 

 

로스앤젤레스 출신 2001년생 빌리 아일리시는 <뉴욕 타임스>의 설명처럼 ‘당신이 알 법한 17세 팝스타’가 아니다. 디지털 원주민 Z세대의 심리를 불면과 악몽으로 상징하고, 힘없이 읊조리는 보컬과 자기혐오 및 냉소의 메시지, 침잠하는 고딕과 두꺼운 베이스라인으로 이를 표현한다. 「Bellyache」의 사이코패스 성격을 증폭한 앨범은 어두운 심연의 사운드스케이프 위에서 감각적이고도 천진난만하게 10대의 위험한 상상을 노래한다. 모순적이지만, 일견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주제 아래 앨범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고무줄놀이처럼 뛰어논다. 정격적인 리듬 위 불안정한 신스와 오버 더빙 보컬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bad guy」는 ‘난 나쁜 놈이야’라 그르렁대며 다크 히어로의 선전포고를 알린다. ‘유리를 밟고 / 혀를 스테이플러로 찍어 / … / 난 나를 끝장내고 싶어’라 절규하는 침대 밑 괴물 「bury a friend」에선 원시적인 드럼 & 퍼커션 리듬과 현대 사회의 공포를 담은 - 치과 드릴과 미니 오븐 - 사운드 샘플로 형형히 빛나는 칼날을 꺼내 놓는다.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가 흥미로운 건 이런 고딕의 이미지를 가져오면서도 흔들리는 어린 자아의 자존감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할로윈 시즌 만화 영화의 주제가처럼 가벼운 터치의 피아노와 날 것의 베이스 리프로 꾸민 「all the good girls go to hell」의 가사는 제목처럼 불경하다. 

 

선명한 자기 파괴 「bury a friend」와 묘한 중독의 「my strange addiction」 역시 어두운 정체성에의 집착을 들려준다. 그런데도 ‘나에게 마약을 주지 마’라 선을 긋는 「xanny」와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ilomilo」에선 어린 사춘기의 불안이 들린다. 자기 혐오와 삶의 희망 속 혼란스러울 틴에이저의 자연스런 감정이다. 

 

「wish you were gay」는 이런 빌리 아일리시의 팝 중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인트로와 함께 TV 속 가짜 웃음이 옅게 스쳐 가고, 12부터 1까지 숫자를 활용한 재치 있는 가사는 디지털 시대의 슬픈 외사랑을 절절히 전달한다. 강한 베이스, 드럼 비트에 맞춰 빌리의 보컬도 선명하여 보다 친절한 접근을 들려준다. 진심을 전하는 데 인색하고 또 서툰 Z세대의 송가다. 

 

친오빠 피네스(Finnease)와 함께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 빌리의 재능은 팝 시장에서 확실히 번득이는 데가 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며 너른 장르 운용과 독특한 사운드 장치로 팝스타에게 요구되는 외모나 교훈적인 메시지, 유려한 가창의 고정관념을 성공적으로 거부한다. 처연한 트랩 「you should see me in a crown」부터 우쿨렐레와 음성 변조를 활용한 「8」, 후반부 발라드 「listen before i go」, 「i love you」 등을 일관된 테마로 엮어내는 것이 그 예다. 앨범 전체 멜로디를 한데 모아 갈무리하는 「goodbye」도 신선하다.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이 새로운 결과물은 아니다. 독특한 비주얼 쇼크는 나인 인치 네일스와 마릴린 맨슨에 가깝고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황폐함을 빌려왔으며 핵심 문법으로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라나 델 레이의 이름이 스쳐간다. 과거로 느껴지지 않는 과거의 유산을 조화롭게 재해석하면서도 기성의 팝 논리를 반박했다는 데 빌리 아일리시 성공의 핵심이 있다. <뉴욕 타임스>를 다시 인용하자면, ‘익숙해져야’ 한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Billie Eilish (빌리 아일리시)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Billie Eilish19,300원(19% + 1%)

전 세계가 주목하는 팝 센세이션 Billie Eilish의 2019년 정규 데뷔 앨범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Digipack]!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처음 발표한 'Ocean Eyes'가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애플 뮤직, 베보 (VE..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당신의 잠재력을 펼쳐라!

2007년 출간 이후 17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뇌과학 지식, 새로운 사례를 더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몰입』 최신판. 창의성과 사고력을 키우려는 학생부터 집중력을 잃어버린 직장인까지 몰입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에게 맞는 몰입법으로 내 안의 잠재력을 무한히 펼쳐보자.

할머니가 키운 건 다 크고 튼튼해!

『당근 유치원』 안녕달 작가의 열한 번째 그림책. 토끼 할머니와 돼지 손주의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하루를 담았다.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으로 자란 오동통한 동식물과 돼지 손주의 입에 쉴틈없이 맛있는걸 넣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할머니를 보는 것 같이 정겹다. 온 세대가 함께 읽기 좋은 그림책이다.

40년간 집을 지은 장인의 통찰

로빈 윌리엄스,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인들은 마크 엘리슨에게 집을 지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뉴욕 최고의 목수라서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최고가 된 사람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신념, 재능, 원칙, 실패, 부 등 저자가 집을 지으며 깨달은 통찰에 주목해보자.

150만 구독자가 기다렸던 빨모쌤의 첫 책

유튜브 '라이브 아카데미'를 책으로 만나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빨모쌤. 실제로 영어가 쓰이는 걸 많이 접하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키우길 바란다고 제안한다. 수많은 영어 유목민이 선택한 최고의 유튜브 영어 수업을 책으로 만나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